구름에 달 가듯이
조금 전 까지도 부산하든 집안이 다들 출근을 하고, 조용하게
텅 빈 방안에 혼자 남아 차를 마시며, 내일 토요일은 친구 큰딸
결혼식에 가야지 세월이 정말 빠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고향 사람 몇이서 친목회를 처음 만들 때만 해도, 둘째가 돌 도
채 안되었는데 어느새 대학 졸업한지가 일년이 가까웠다.
나도 사위를 봐야겠구나! 하는 걱정이 된다.
蓮岩 鄕友會를 만들 때만 해도 보릿고개의 春窮期 얘기들이 있을
때였는데 지금은 모두가 사라진 옛말이 되고말았다.
지금 농촌 인구가 국민 전체의 14%(570만명)도 채 안 되는 전국
대부분이 도시화되었지만, 당시 만해도 시골서 농사를 짓고 사는
농촌 인구가 국민의 절반이 넘는 1,700만 명에 달하는 때인지라,
좁은 땅덩어리에 논 열 마지기 이상 가진 농가는 부자 소릴 들을
정도로 대부분이 貧農이였다.
삼사월 보릿고개에 양식이 떨어진 春困期가 있고 草根木皮로 연
명해야 하는 시골사람들이 가난을 못 이겨 도시로 몰려오는 離農
현상이 이어지든 때였다.
우리 마을의 젊은이들도 오래 전부터 이곳 釜山에 와 있는 사람
들이 많았으며, 그 중에도 뜻이 맞는 사람들 몇이 모여 친목회를
만들어 타향살이의 고달픔과 외로움을 서로 달래며 가난하고 어
려웠던 시절의 고향 이야기를 추억 삼아 나누기도 하고 교통이나
통신이 요사이 같지 않은 때라 만나면 서로 고향 소식도 전하며
끈끈한 情을 나누었다.
이십 년을 넘게 지내 오는 지금까지 엄청나게 발전하고 변한 사회
생활상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옛정 그대로 서로의 정을 이어
가고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구름에 달 가듯이' 흘러간 세월 속
에는 수없이 많은 사연과 추억들이 담겨져 있어 새삼 옛 일들을
아스라히 回想케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하고 고향의 봄을 노래하며
타향살이의 시름을 달래기도하고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 가면서
힘차게 살아온 세월들.....
血盟이라고 부르든 한. 미 관계도 요즈음 U R협상에서 철저하게
자기네 이익을 위해서는 냉혹한 미국의 행동을 보면서 역시 우리
연암 향우회 같이 회원들 간의 참된 정은 쉽게 볼수없는 자랑스
러운 일이라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고향이 같을 뿐이지, 직업도 제각기 다르고 생활도, 사는 곳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언제나 뜻만은 하나가 되어 형님 동생하
며 이십여 년의 세월을 지내왔다.
항상 좋은 일만 있었으면 했지만, 好事 多摩라 하더니 짓궂은 운
명의 장난은 착하디착한 두 사람의 회원을 앗아가, 뜨거운 슬픔의
눈물을 우리 모두에게 흘리게 해 인생의 허무함을 맛보게 했고,
사람 좋기로 소문 난 회원은 사랑하는 부인을 여의고 가슴 아파
했던 너무도 슬픈 현실에 통곡을 했다.
언제까지고 살아 계실 것 같이 여겨지던 어머님들이 십 여분 돌아
가신 일 또한 한없는 슬픔이라 하겠다.
궂은일보다는 역시 좋은 일들이 훨씬 많았으니, 총각 회원이 뜨거
운 축복 속에 결혼을 하여, 아들 딸 낳아 어느덧 모두 성장을 하
였으니, 세월이 어느새 훌쩍 흘러간 것만 같은 생각마저 든다.
이십 여년 동안에 300원에서 지금의 이만 원의 會費로 어느 모임
보다도 일찍부터 장학제도 등 힘에 겹도록 많은 행사와 사업을 펼
쳐 온데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으며, 쌓이는 연륜 과 더
불어 회원 가족의 수도 늘어났지만,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그대로
일 것만 같던 회원들의 머리에도 흰 서리가 내리고 이마에는 잔주
름이 깊어만 가니......,
저 멀리 바라보이던 황혼 빛이 자꾸만 가까워지는 느낌에, 아직도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하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된다.
'구름에 달 가듯이' 한순간에 훌쩍 지나간 듯 한 그 속에 담겨진 숱한
사연들은 人生이 한없이 無常함에 나도 몰래 길게 한숨을 쉬게한다.
어느 한순간도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겠지만 앞으로 다시 함께 할
날들도 우리 모두에게 항상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이 있어서 인생의
黃金 結實과 같이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94. 7.15 팔을베고...
위의 글을 鄕友會 創立21주기 記念日에 사용하기 위해 쓴 것인데 마음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건만, 4,5년 지난 느낌이 어느새 십년이 지났다니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월이 너무나 빨리도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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