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마음의 양식
파란 하늘에 솜털같이 하얀 구름이 유난히 높게 보이는 것만
으로도 상쾌한 느낌이드는 요즘 흔히들 '가을은 독서의 계절'
이라고들 하는데, 맞는 말이다.
기나긴 무더위의 여름을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야말로 책읽기에 아주 좋은 계절이다.
그런데 도무지 집중력이 떨어져 읽었던 내용(줄)을 다시 읽게
되고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를 않을 때가 많다.
어릴 적에는 '책벌레'(공부벌레와는 다름)라는 말을 들을 정
도로 책 읽는 걸 좋아해 동화책으로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만
화책, 소설 등을 시험 때 밤늦게 공부는 안 해도 긴긴 겨울밤
을 하얗게 밝히며 읽은 적이 많았다.
책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시기여서 역사소설이나 추리소설 등
은 보이는 데로 읽게 되었는데, 심지어 머슴들의 방(草堂房)
에 굴러다니는 책표지도 떨어져 나가고 없는 옛날이야기 책
들도 빌려다 보게 된다.
가을밤에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어가며 머리맡에 찐쌀과 감
등을 놓아두고 방바닥에 배를 깔고 책을 읽는 재미는 비할
바 없이 좋았다.
찐쌀을 한 입 가득 넣고 불려가며 천천히 씹으면 구수한 그
맛에 잠도 오지 않고 책 속에 마음을 뺏겨 자신이 유불란 탐
정이 되어 루팡을 쫓아다니며 머릿속에서 아예 소설을 쓰기
도 한다.
'학원''학생계'같은 월간지에는 재가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연재만화'밀림의 왕자''삼국지''수호지'등은 지금까지도 기
억되며 정비석 김래성 같은 분들의 연재소설을 많이 읽었는
데, 한창 재미있는 대목에서 '다음호에 계속'이란 아쉽고
야속한 글을 보게 되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책 살돈이 없어 이웃친구와 함께 책값을 모아 돌려가며 읽을
때가 많았다.
특히 삼국지 등은 소설을 읽어 내용을 알고 있었어도 만화의
함축된 내용은 또 다른 묘미를 느끼게 한다.
몇 달 전 북경의 이화원 긴 회랑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서
어릴 적 만화로 보았든 삼국지외 수호지를 연상하게 하였다.
그런데 책을 빌려가서 잘 돌려주지 않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제 것 인양 또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 이러쿵저러쿵 하다보
면 다시는 볼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세월이 흘러 자식들을 키우면서 수십 권 씩 되는 아동문학
세계문학 등 전집류를 많은 비용을 들여 구입해서 진열해 두
고 보게 했는데, 그중에는 평소 아는 아르바이트 학생들의
안면 때문에 억지로 산 것도 있지만, 책을 생각처럼 읽지를
않아 몇 년씩 자리만 차지하다 끝내 없애게 되는 경우가 많
았는데, 책 읽기를 좋아하는 큰 애마저도 역시 흔하면 귀한
줄을 몰라 소흘히 여기고, 보고 싶은 책은 몇 권씩 사서 보
아야만 감명 깊게 보게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굳이 새삼스레 말하지 않아도 '책은 마음의 양식'임에도 사
회생활의 변화와 더불어 예전에 비해 독서하는 일이 줄어든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이 가을에 볼만한 책 몇 권 구해다 읽는 것도 여러
면에서 좋을 듯싶다.
다들 바쁘게 생활하다보니 원만한 것은 간단히 인터넷 검색
으로 충족하게 되니 독서의 본질이 흐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어느 한 때 여행을 자주 다닐 때만해도 서점에서 관련된 책
을 사서 여러 가지 정보를 구했는데, 지금은 해외여행마저
도 인터넷으로 어느 정도의 정보는 구할 수 있으니 시간과
비용 면에서 훨씬 이익이 되기도 하다.
그러나 약간의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과 독서의 본질과는
다른 것이다.
빠르고 편리한 것도 좋긴 하지만 책을 통해서 얻어지는 많
은 마음의 양식은 자신의 마음만 살찌게 하는 게 아니라 정
서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얻게 되는 게 아니겠는가?
바쁜 중에도 가끔은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어 읽고 싶었으나
미루어 두었던 책을 꺼내 책 속에 마음을 던져 책 속으로
빠져보기 좋은 계절이 된 것 같다.
04. 10. 05 좋은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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