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회 8차 사찰순례 석굴암. 기림사. 동축사
석굴암
경주 석굴암 입구
늦 가을인데도 석굴암암 오르는 길가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날씨가 맑아 단풍색이 더욱 고와 29기 연회회 보살님들 기분이 한껏 좋아 연이여 탄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모습이다. 매표소에서 부터 걸어서 석굴암가는 길에는 서울에서 소풍온 초등학생들의
행렬이 줄을잇고 있었는데, 불상이 모셔진 곳엔 역시 학생들로 몹씨 붐비고, 언제보아도 석굴암
부처님은 옛 모습 그대로 이다.
유리로 가려진 안쪽 불상 앞 좁은 공간에는 스님이 몇몇 불자들을 앞에두고 에불을 드리는 중이
였는데, 보기에도 민망하게 문은 자물쇠로 잠가두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라 매표소에서 우편엽서 한권을 사서, 시원한 감로수 한잔으로 목을 추
기고는 잰걸음으로 내려왔다.
석굴암을 뒤로하고...
보문단지 은행
우리 일행은 석굴암을 벗어나 보문단지의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보면서 다소 이른 점심으로 소
문난 맷돌 순두부집으로 향했다.
덕동호의 잡목단풍은 내가 퍽이나 즐겨찾았던 곳인데, 다소 늦은 관게로 단풍색이 이미 갈색을 띄
는 게 많이 보였다.
미소 달마 두부집 옆
기림사가는 길 (덕동호)
기림사(祇林寺)
기림사는 천축국(天竺國) 승려 광유(光有)가 창건, 임정사(林井寺)라고 하다가,서기643년(선덕여
왕 12년) 원효(元曉)가 확장, 중수하고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서기1863년(철종 14년) 본사(本寺)와
요사(寮舍) 113칸이 불타 없어졌다. 당시 지방관이던 송정화(宋廷和)의 혜시(惠施)로 중건한 것이
현 건물이다.
다행히 경상도 영주제명기(慶尙道營主題名記) 동도역세제자기(東都歷世諸子記) 부호장선생안(府
戶長先生案) 등의 중요한 문적(文籍)과 근세조선 역대 왕의 어필(御筆) 등이 병화(兵火)를 입지 않
고 보관되어 있다.
이 밖에 목탑지(木塔址), 3층석탑, 오백나한상(지방유형문화재 214) 등이 있고, 보물로 대적광전(大
寂光殿:보물 833),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보물 415), 삼신불(三神佛:보물 958), 복장유물(보물
959) 등이 있다.
1598년(선조25년∼선조31년) 임진왜란 당시 기림사는 지리적으로 전략요충지로서 경주 지역 승병
과 의병 활동의 중심사찰이었다.
경주에서 보문단지를 지나 불국사와 감포의 갈림길에서 감포쪽 도로를 타면 덕동호를 지나 굽이굽
이 산길을 만나게 된다. 추령터널을 지나 약 10km 내려가면 안동삼거리(기림사 입구)가 나온다.
이 갈림길에서 좌회전 해서 약 4.5km 계속 달리면 기림사가 위치해 있다.
기림사 대적광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 수행했던 승원 중에서 첫 손에 꼽히는 것이 기원정사와
죽림 정사이다. 특히 기원정사는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부처님이 23번의 하안거를 보내신 곳이다.
그 기원정사의 숲을 기림(祇林)이라 하니 경주 함월산 기림사는 그런 연유에서 붙인 이름이다.
682년 신문왕이 감포 앞바다에서 동해의 용왕으로부터 만파식적과 옥대를 선물로 받아 궁으로 귀
환하는 도중 기림사 서쪽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록과 용연폭포에서 용을 날려 보낸 기록이 삼국유사
에 나온다.
대적광전 삼존불
천수천안 관음보살
천 불전
유명한 기림사 명부전
이 절에 5종류의 샘이 있었는데, 명안수(明眼水) 오탁수(嗚啄水) 장군수(將軍水)나한전 앞 삼층석
탑 아래에 뭍혀있는 장군수물을 마시면 천하무적의 장군이 된다고 하여, 혹시 반역자가 생길까봐
우물 위에다 석탑을 세웠다한다. 지금도 고요한 밤탑 밑에 귀를 귀울리면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화정수(華井水)는 마실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이물을 마시며 정진하면 서로 화합한다고 한다.
북암에 있는 감로수(甘露水)는 물빛이 우유빛이나 일단 바가지로 뜨면 무색으로, 이 물로 차를 끓
이면 최고로 맛있는 차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감로수와 화정수만이 마실 수 있다.
골굴사
경주에서 동해안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함월산 불교 유적지 중 가장 오랜 역
사를 간직하고 있다. 6세기 무렵 신라시대 서역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약반 전산에 12개 석굴로
가람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해온 인공 석굴사원이다.
석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것으로 한국의 둔황석굴[敦煌石窟]이라 불린다.
함월산 석회암 절벽에는 석굴로 여겨지는 구멍이 곳곳에 뚫려 있는데, 맨 위쪽에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보물 제581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높이 4m, 폭 2.2m 정도의 크기로 제작 연대에 대
해서는 학계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세련되지 못한 옷주름 때문에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기도 하고,
철원 도피안사와 장흥 보림사의 불상과 비슷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법당굴은 벽을 바르고 기와를 얹은 탓에 앞에서 보면 집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도 벽
도 모두 돌로 된 석굴이다. 북쪽 벽에 감실을 파고 부처를 모셨으나 마멸 정도가 심해 비닐하우스 같
은 투명 보호막을 설치하여 보존하고 있다.
법당굴을 비롯한 다른 굴은 그 크기가 다양한데, 귀여운 동자승부터 근엄한 노승려에 이르기까지 여
러 형태의 불상을 모셔 놓았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지금 수리 중
울산 남목 동축사
573년(신라 진흥왕34)진흥왕 명으로 창건되었다. 창건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황룡사장륙조(皇
龍寺丈六條) 따르면, 573년 3월 지금의 울산 태화지방인 하곡현(河曲懸)사포(絲浦)지금의 미포에 서
역에서 온 큰 배가 닿았다.
이 배에는 인도의 아소카왕이 황금 3만 푼, 황철 5만 7천근이 실려 있었고, 편지에는 아소카왕이 석
가 삼존불을 주조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인연 있는 국토에 가서 장륙존상이 되기를 기원한
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삼국유사에는 아쇼카왕의 기원을 담은 배는 1천 3백여 년간 16大國과 5백中國, 7백小國, 1만 부락을
거쳐 신라에 닿았다고 설명되어 있다. 배에는 장륙상의 모형 불상도 함께 실려 있었다. 이에 왕은 황
금과 황철로 황룡사 장륙존상을 만들었으며, 모형 불상은 사포 동쪽 부근의 깨끗한 곳을 골라 절을 짓
고 모셨다.
이 때 모형 불상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절이 동축사라고 한다. 뒤에 모형 불상도 황룡사에 옮겨 모셨
다고 전한다.
동축사는 축(竺)의 동쪽, 즉 인도의 동쪽에 있는 절이라는 의미를 지님을 알 수 있다. 934년(경순왕
8) 중창하고, 고려 정종(재위: 1035∼1046) 때 옥인(玉仁)이 중수하였다. 1931년 완성(翫性)이 중수
하였으며, 1975년 주지 도암(道庵)이 정주영(鄭周永) 등의 시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다.
이 때 대부분의 건물을 보수하고, 600근의 범종을 주조하여 새로 지은 범종각에 두었다.
유물로는 고려 중기에 제작된 동축사 삼층석탑이 전한다. 대웅전 앞에 있었던 3층 석탑은 1977년 중
창할 때 경내에서 약 40m 서남쪽으로 옮겼는데, 이번에 갔을때는 또 다시 본래있던 제자리로 옮겨저
있었다.
동축사 오르는 가파른 게단은 에나 지금이나 숨차게 하였는데, 한 사람의 낙오자도없이 일행이 모두
올라 참배를 마치고 연화희 감사이신 大法華보살님의 소위 '주 활동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2007년 11월 13일 연화회 사찰순례 경주 석굴암. 기림사. 감은사지. 울산 동축사 등을 순례
하였는데. 이날 보문단지 입구 손두부 찌개의 맛과 석굴암 단풍이 너무 좋았다.
2007.11.14 청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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