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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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이 해체되는 모습을 보며

靑 波 2024. 7. 22. 02:12

한 가정이 해체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라인의 32층에 서울대 학장을 역임하신 오ㅇㅇ이란 교수님이 살고 있었다.
19년전 처음 신규 입주할 때부터 함께 입주했던 분이라 엘리베이터 등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도 하고 간단했지만 대화도 나누곤 했었다.
당시 나는 60세를 갓 넘은 초로였고, 그분은 77세라고 하셨던 것 같다. 

항상 웃음 끼가 가시지 않고 늘 정정해 보였다. 마나님과 함께 단지내 산책을 자주하셨고, 두 분이 손잡고 외출하는 다정한 모습도 자주 보았다.
나와 같은 교회에 다녔는데 매주 휴일 날이면, 모 대학 교수라는 사위가 찾아 와서 픽업해서 모시고 다녔다.

그런데 약 7년 전 쯤에 마나님이 돌아 가신 이후, 비교적 넓은 집에 혼자서 사시는 것 같았다.
여전히 쉬는 날이면 그 사위와 딸이 픽업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갔다.
수원에 산다는 아들은 어쩌다가 한번 찾아와 함께 외출하는 모습도 한 두번 본 것 같다.
그런데 언제 쯤인가 사위가 보이지 않기에 궁금했는데, 그 사위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혼자서 쓸쓸하게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거니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마지막 행로는 누구나 다 저런 아픈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지나 갔다.
참으로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우리 인생의 말년도 다 저렇겠지...! 그런데 한 두어달 전부터 오학장 할아버지가 눈에 띄지 않아서 가벼운 궁금증이 들기는 했지만 남의 일이라 그냥 잊고 있었는데...!
어제는 우리 아파트 라인 주차장에 책들로 가득 찬 왠 커다란 '탑차'가 보이기에 직감적으로 오교수님의 책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오늘 오전에 집사람이 쓰레기를 버리려 내려갔더니, 아주 고급스런 책장들을 비롯한 꽤나 비싸 보이는 가구들이 한살림 가득하게 나와 있더라는 거다.
값깨나 나갈 만한 서양화와 액자들...그리고 오교수의 박사학위, 학위모를 쓰고 찎은 사진들과 가족 사진들이 주차장 바닥에 널브러져 있더라는 거다.

가구들은 중고 가구점에 연락하면 헐 값에라도 얼씨구나 하고 가져 갈만한 고급품이었지만..
오교수 사진들과 가족 사진들은 모두 태워버리지 않고, 왜 저렇게 버렸는지 자식들이 욕먹을 것 같더란다.
서울농대 학장까지 지낸 분이다 보니 95세까지 아쉬움 없이 세상을 빛내며 살다가 죽었다고는 하겠지만~ 인생의 끝이란 정도의 차이는 있겠다.

 "누구나 다 저렇게 쓸쓸하고 허망하게 죽으면 아무리 값진 것도 모두 다 버리고 가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어느 노교수의 죽음이 애석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 끝의 모습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한 가정이 자연스럽게 解體되어 가는 모습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젊은 시절 나도 그랬다! 우리들 모두가 그랬다!
한참 자식들이 태어나 쑥쑥 자랄 때는 식구끼리 모여서 웃고 떠들면서 맛난 거 먹으며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것처럼 좋아했다. 집안이 시끌벅쩍 들썩거리던 기쁨. 그때의 사랑!
좀 더 고급진 가구들을 꾸며 놓고서 만족해 하던 시절, 자식이 공부 잘해 가슴 뿌듯해 하거나, 공부 못해 가슴 조리던 시절... 

세월따라 그런 오붓했던 시절은 점차 멀어지고, 자식들은 제각기 자기 가정 제 일을 찾아 뿔뿔히 흩어져서 산다.
기둥같았던 엄마 아빠는 이제 병들고 쇠잔해져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세상 떠나면, 그 가정은 허물어지듯 해체돼 버린다는 사실이다.
"中略"
젊은 시절에 읽던 책들 더러는 읽지도 않고 허영으로 모은 것도 있겠고, 내가 아껴 입던 옷들,
드라이 크리닝해서 비닐 커버를 씌워 놓고 입지도 않은 채 걸려 있는 옷들, 숫하게 찎은 사진들, 나름엔 욕심 내서 구입한 가구들...

내가 세상 떠나고 나면 나의 물욕과 함께 다 버려질 텐데, 결국 쓰레기가 되어버리고 말텐데
한낱 거품 같은, 연기 같은, 물리적인 世物에 목숨 걸고 살아온 인생들이여! 아둥바둥 아껴서 모아 놓은 재산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한다.

인생들이여!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깔끔하고 반듯하게 미리미리 정리 정돈하고 사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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