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108배, 자기 전엔 염불
이제 108번뇌와 108배의 참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08염주를 지니는 까닭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불자들 중에는 108염주를 매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이 108염주는 액세서리가 아니다. 108번의 염불과 108배를 통하여 108번뇌로써 지은 죄업들을 참회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부처님 앞에 한 번절하고 한 개 돌리기를 108번하면서 108번뇌를 끊어 나가라고 108염주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108번뇌가 완전히 소멸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최종 목적인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불자들은 매일 108배를 생활화하는 것이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108배, 저녁에 자기 전에는 108염불! 이것을 생활화하면 마음이 점차 모이고 맑아져서 언젠가는 삼매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불보살의 은근한 가피, 곧 명훈가피를 얻어 재난은 스스로 피해 가고 가정은 두루 편안해지며, 기쁨과 행복이 충만해지게 되는 것이다.
만일 집에서 108배를 할 여건이 되지 않은 경우라면 절을 찾을 때만이라도 꼭 108배를 하도록 하자. "절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찰을 절이라고 부른다."는 속설이 있듯이, 좋은 도량을 찾았을 때만이라도 법당의 부처님께 지극 정성 108배를 올리는 신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제 아침 108배, 저녁 잠들기 전의 기도를 통하여 소원을 이룬 세 고시생의 이야기를 하면서 제 2장의 '생활 속의 기도법'에 대한 글은 매듭짓고자 한다.
약 10여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재가 불자의 참선 수련 도량으로 바뀌었지만 당시 해인사 원당암은 고시생들이 많기로 유명하였다. 원당암에서 공부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10여 년 동안 50명도 넘었기 때문이다. 자연 방을 얻으려는 경쟁이 치열해지자, "돈을 2배, 3배 주겠으니 있게 해 달라."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원당암 스님들이 누구인가? 오히려 네 가지 규칙을 정하여 그 규칙을 준수하겠다는 사람들만 받아들였다.
첫째, 새벽 예불에 참석해야 한다.
둘째, 술과 담배를 먹지 못한다.
셋째, 여자 친구의 방문은 사절한다.
넷째, 주지 스님 허락 없이는 바깥출입을 금한다.
처음 이렇게 다짐하고 원당암에 있게 된 고시생 중, 3명의 학생이 몰래 해인사 관광촌으로 내려가서 한잔
먹다가 주지 스님께 들키고 말았다.
"이놈들! 당장 원당암에서 나가거라."
책보따리를 절 마당에 들어내 놓고 몽둥이를 잡은 채 호령하는 주지 스님의 서슬에 놀라 그들은 암자 밖
으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집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세 사람은 궁리 끝에 나를 찾아왔다.
"저 위의 지족암 큰스님께 찾아가 보자. 혹시 거지 있으라고 할지도 모르잖아."
그러나 방이 없는 지족암에 '있으라'고 할 수도 없는 일, 나는 잠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희들, 사법고시에 꼭 합격하고 싶지?"
"예!"
"그런데 공부는 잘 되지 않고?"
"예, 공부하기가 통 싫습니다."
"내가 공부하고 싶도록 해줄까? 공부 잘 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어떻게요?"
"너희 마음대로 안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처님의 법 아닌가! 내가 시키는 방법대로 해볼테냐?"
"예, 공부만 잘 된다면 하지요."
"첫째, 너희들이 절에 와 있으니까 부처님께 절을 해야 한다. 새벽 예불 목탁 소리가 나거든 무조건 법당
으로 달려가서 절 108배를 해라. 108배를 하면 아침에 국민 체조를 하는 것보다 더 좋다. 몸이 아주 건
강해진다. 손가락 발가락까지도 운동이 다 되고 목운동 허리 운동 발목 운동 온 전신운동이 다 되는 것
이니까. 운동 가운데 절하는 운동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다. 할 수 있겠느냐?"
"예."
"이렇게 부처님께 108배를 드리면서 '부처님, 공부 재미있게 해주십시오. 공부 재미있게 해주십시오.
시험에 꼭 붙게 해주십시오.....' 하면서 간절히 기원해야 한다."
"두 번째 잠들기 직전에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자는 것이다. 먼저 코로 심호흡을 세 번 또는 일곱 번하고,
관세음보살을 아주 빨리, 108번을 불러라. 처음에는 3-40번밖에 못 부를 것이지만 일단 한숨 동안 부
르고 나서 '관세음보살님! 꼭 시험에 되게 해주십시오. 공부 잘 됩니다.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3번 기원을 해라. 그렇게 한숨에 염불을 세 번 또는 일곱 번 정도 하여야 한다."
"스님, 왜 관세음보살을 그렇게 빨리 불러야 합니까?"
"관세음보살을 천천히 부르면 생각이 서울 갔다가 대전 갔다가 부산 갔다가, 왔다갔다하게 된다. 그럼 효
과가 없어. 관세음보살을 아주 빨리 부르면, 부르기 급한데 어디 갈 여가가 있나? 생각이 도망칠 틈이 없
게 되고 마음이 하나로 모이니까 틀림없이 힘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하다가 정신이 흐릿해지거나 마음이 풀어질 때에도 이렇게 관세음보살을 불러 보아라.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들은 아주 좋아하면서 꼭 실천하겠다고 다짐하였고, 나는 그들을 데리고 원당암으로 가서 주지 스님
에게 부탁하였다.
"학생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하니 한 번만 용서하시오."
그날부터 시험 치기 전까지 약 100일 동안 세 학생은 기도와 공부를 부지런히 하였고, 마침내 세 사람
모두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
기쁨에 넘친 그들은 법관 교육을 받기 위해 사법연수원으로 가기 직전, 커다란 케익을 사 들고 나에게로
찾아왔다. 그리고 시험장에서 있었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스님, 시험장에 앉아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가 백짓장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을 가진 사
람은 저희들뿐인 듯했습니다. 저희들은 시험지가 나오기까지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님, 막상 시험문제를 받고 보니 거기에 기적이 있었습니다. 원당암 앞길을 산책하다가 갑자기,
'아차! 그 문제 한 번 더 보아야겠다.'고하여 꼼꼼히 살펴본 문제, 부처님께 절하다가 생각이 나서 한 번 더 찾아본 문제 등, 일부러 기억하고 거듭거듭 따져 봤던 문제들만 출제되어 있었습니다. 어찌 저희들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스님, 감사합니다. 모두가 스님 덕입니다."
"나도 너희들 덕에 법문할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생겼구나. 나도 너희들에게 감사한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웃음꽃을 피웠다.
이 산승은 간곡히 당부 드린다. 지금 현재 앞에서 이야기한 일상의 기도를 하지 않고 있는 불자라면 이 기
회에 꼭 실천해 보라는 것을!
기한은 스스로의 형편에 맞게 정하라. 백일을 하나의 기한으로 삼아도 좋고, 40일을 기한으로 삼아도 좋다. 그것도 어렵다면 삼칠일[21일], 21일도 어렵다면 일주일, 아니 단 3일이라도 좋다. 꼭 한 번 해보자. 틀림없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건강도 좋아질 것이며, 소원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뒷날로 미루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한마음으로 염불하며, 신심(信心)을 이루고 뜻을 성취하기 바
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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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도 성취법
앞 의 장에서는 <생활 속의 기도법>이라는 제목으로 평소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행할 수 있는 잠들기 전
의 기도법, 108배 기도법 등에 대해 기본 원리와 방법을 상세히 이야기하였다. 여기에서는 아주 다급하고 특별한 상황에 처하였거나 특별한 경우에 행하는 기도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속성가피를 이루려면
우리 불자들은 기도를 한다. 불보살님께 마음속의 소원을 기원하면서 기도를 한다. 간절히 간절히 기도를
하고, 마침내는 '소원 성취'라는 결과를 이룩하게 된다.
간절한 기도에 소원 성취.
그러나 이것은 불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의 세계적인 종교나 각국의 민간
종교에서도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소원을 이루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심지어는 집단 최면의 효과가 있는
타종교의 '광(狂)'에 가까운 기도가 더 빠른 성취를 안겨 주는 듯이 보일 때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자. 불교의 기도와 다른 종교의 기도는 같은 것인가? 불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종교의 기도라도 똑같은 영험에 똑같은 결과가 있기 마련인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기도 성취의 근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불교의 기도는 불성(佛性),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참된 마음 자리의 영원 생명, 무한 능력을 의지하고 개발하는 것인데 비해, 타종교의 기도는 인간이 스스로 설정한 바깥의 절대적인 존재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기도를 하여 가피를 입은 사람은 자기의 참 마음 자리 개발을 위해 꾸준히 수행하는 경우가 많고, 타종교의 사람들은 자기 개발보다는 절대자를 위한 헌신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이에 이러한 사실을 바탕에 깔고, 불교의 기도 성취 원리와 옛 스님들이 수없이 절을 하면서 기도를 하도록 한 까닭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 절하는 사람과 절 받는 부처님
불교의 절은 능례(能禮)와 소례(所禮)로 이루어진다. 곧 능(能)은 주체요 소(所)는 대상으로, 능례는 절
하는 '나'를 소례는 그 절을 받는 불보살을 가리키는 것이다.
중생의 분별 세계에서는 이 능과 소가 언제나 붙어 다니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토록 중요시하는 '나'도 '너'가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너'가 없으면 '나'라는 존재도 있을 수 없다. 선악(善惡)도 마찬가지요, 사랑과 미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상대적인 것이 결코 두 몸을 가지고 있거나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처럼 항상 함께 하고 있다. 곧 예배를 하는 이와 예배를 받는 분이 완전히 별개의
존재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불이(不二)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절을 하는 사람과 절을 받는 분은 무엇에 의지하여 손의 앞, 뒷면처럼 존재하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참된 마음 자리이다. 절을 받는 부처님은 참 마음 자리를 회복해 가진 분이요, 절을 하는
우리는 참 마음 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발현을 시키지 못하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기도하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 또한 우리의 마음 자리 능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일이다. 만약 이렇게만 하면, 절을 받는 부처님과 절을 하는 우리의 마음 자리가 하나로 계합하여 어떠한
소원도 능히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참 마음 자리! 모든 것은 이 마음 자리로부터 생겨난다. 비록 이 마음 자리는 특별한 모습이나 실
체가 없지만, 인연이 화합하면 갖가지 묘한 모습과 작용을 나타내 보이게 된다.
좋고 궂은 모든 일도 바로 이 마음 자리에서 일어나고, 기도 성취의 근원적인 힘도 이 마음 자리에서 비롯
되는 것이다. 곧 기도를 제대로 하면 참된 마음 자리에서 묘한 힘이 흘러나와 기도를 이루게 하는 것일 뿐, 다른 특별한 존재가 있어서 감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불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2) 사력십증배(死力十增培)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할 때 이 마음 자리로부터 성취의 능력이 분출되는 것인가?
가장 빠른 방법은 사력(死力)을 다하는 것이다. 사력을 다할 때 참 마음 자리의 힘은 가장 힘차게 뻗어
나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중생의 마음을 연려심(緣慮心), 육단심(肉團心), 진여심(眞如心)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중
연려심은 다가온 인연 속에서 일어나는 평소의 마음상태를 가리키고, 육단심은 만용을 부려 억지로 하는
것으로 보통 때는 일어나지 않다가 큰 욕심이 일면 생겨나게 된다. 진여심은 우리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 자리로서, 아주 특별한 때만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어떤 사람은 집에 불이 나자 자기 키보다 더 큰 장 단지를 번쩍 들고 나왔는데, 나중에 아무리 생각해 보
아도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육단심이다.
옛말에 "욕심으로 하는 일은 보통 때보다 다섯 배의 힘이 생긴다(欲九五增培)."라고 하였는데, 이 마음
으로 기도하여도 보통과는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여심의 힘은 평소에는 느낄 수 없지만, 특별한 경우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힘으로, 이를 세속에서는 '사력(死力)'이라고들 한다. "죽을힘을 다하면 열 배의 힘이 생긴다(死力十增培)."는 말은 바로 이 진여심과 관련되어 있다.
옛날 활을 잘 쏘는 사람이 밤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났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는 호랑
이를 대하자 온몸의 털이 모두 곤두섰지만, 순간적으로 그는 일념 속에 빠져들었다.
'죽어서는 안된다. 저놈에게 잡아먹힐 수는 없다.'
찰나 지간에 그는 화살을 활에 메겨 활시위를 당겼다. '팍'하고 꽂히는 소리가 들려 정통으로 맞힌 줄 알
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화살을 맞은 호랑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화살을 날려 정통으로 맞
혔지만 이번에도 쓰러져야 할 호랑이는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활시위를 당겨 모두 세
방을 정통으로 맞혔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거 참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별안간 무서운 생각이 들어
'걸음아, 나 살려라'하면서 집으로 뛰었다. 그 다음날 손에 손에 무기를 든 동네 사람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가서 보니, 마땅히 죽어 있어야 할 호랑이는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는 호랑이를 꼭 닮은 바윗돌이 서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 자기가 쏜 화살 세 개가 거기에 박혀 있는 것이었다.
"야, 그것 참 이상하다. 어제 저녁 바위를 호랑이로 본 것은 내가 잘못 보았다고 치더라도 어떻게 화살이
저기에 박혔을까? 내 힘이 저렇게 세단 말인가?"
그리고는 어제처럼 다시 화살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화살이 바위에 박히기는커녕, 바위에 부딪치는 순간
화살촉만 부러졌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 마음 자리에서 나오는 '사력십증배'의 힘이다.
이를 기도에 적용시켜 생각해보라. 목숨이 달린 다급한 일이 있다면, 목숨처럼 소중한 일이 있다면 어떻게 기도를 할 것인가? 참 마음 자리의 영원한 생명력, 무한한 능력이 필요하다면 어떠한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가?
사력을 다한 기도! 바로 사력을 다한 기도를 하면 된다. '죽으면 산다.'는 말이 있듯이, 사력을 다하여 기도할 때 참 마음 자리의 무한 능력이 분출되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이를 응용하여 옛 스님들은 불전 3천배(佛前三千拜)를 수십 일 또는 수백 일 동안 행하게 하였던 것이다.
사력을 다한 기도..... 이와 관련된 기도 이야기 한 편을 함께 음미해 보도록 하자.
3) 매일 3천배를 삼칠일 동안
제 1공화국 시절 말기에 치안 국장을 지낸 이강학은 대구에서 태어났다. 공부를 열심히 하였던 그는 초창
기 경찰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곧바로 이승만 대통령의 눈에 띄어 30대의 나이에 치안 국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대덕화(大德華)보살은 불심이 지극히 돈독한 분으로 열심히 팔공산 파계사를 다녔고, 차를 타고 가다가도 먹물 옷을 입은 스님만 보면 얼른 뛰어내려 큰절을 하고, 주머니를 털어서 얼마라도 보시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었다. 대덕화 보살은 아들이 높은 권력을 쥔 치안 국장이 되자 더더욱 여러 절을 찾아다니며 불사(佛事)를 많이 도왔고, 사찰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적극 해결해 주었다.
특히 당시는 자유당 말기 시절인지라, 아부하기를 좋아했던 지방의 경찰 국장들은 치안 국장의 어머니인
대덕화보살이 움직일 때마다 친히 길 안내를 자청하였다.
하루는 팔공산의 사찰을 찾아갔더니, 경찰이 와서 주지 스님을 잡아가려 하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스님이 큰 나무 하나를 베어 절 앞의 개울에 외나무다리를 놓았는데, 그것이 산림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대덕화 보살은 길 안내를 맡은 경찰 국장에게 말했다.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나 같은 노인이 개울을 걷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소? 외나무다리를
놓아야지."
"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주지 스님 일도 잘 해결되겠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대덕화 보살은 어려운 일의 해결사 노릇을 하였다. 사찰 입구의 길을 닦는 일, 법당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는 일, 불상을 모시기 위해 돈을 모으는 일 등 당시 어렵던 절 집안을 위해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의 부정 부패를 보다 못한 학생들이 봉기하여 4,19가 일어났고, 그 와중에서 군중을
향해 '발포하라.'고 명령을 내린 죄로 내무부장관 최인규와 함께 아들 이강학이 사형을 선고받게 된 것이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된다더니, 기정 사실화된 아들의 죽음과 함께 대덕화 보살의 집안에는 온통
차압을 하겠다는 빨간딱지가 붙었다. 72세의 대덕화 보살은 울고 또 울면서 팔공산 파계사까지 50리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종수스님 앞에 엎드려 피눈물을 흘리며 하소연을 하였다.
"스님, 아들이 사형을 당하게 되면 저는 이 세상에 단 1분도 더 살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제 목숨이라도 바칠 테니 제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보살님, 아들을 꼭 살리고자 하면 부처님께 매달려 보십시오, 사람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라면 부처님께 의지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보통 기도로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드님을 30년 동안 키웠으니, 30년 키운 공만큼 부처님께 공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죽기 살기로 기도해 보십시오. 부처님의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를 할까요?"
"아들의 사형 집행은 언제쯤 있을 것 같습니까?"
"한 달 정도 있으면 처형될 것입니다."
"그럼 삼칠일[21일] 동안 매일 3천배씩 절을 하십시오."
"예, 아들만 살릴 수 있다면...."
아들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3천배씩 삼칠일을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유난히 뚱뚱한 체구의 늙은 대덕화
보살로서는 하루 3천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젊고 날렵한 사람들보다는 절 한 번 하는데 2-3배의
시간이 걸렸던 대덕화 보살. 첫날 1천배를 했을 때 그녀는 이미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아이구 죽겠다. 그놈이 죽을 팔자라면 죽고, 살 팔자라면 살겠지. 나는 못하겠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
그녀는 10여 분을 누워 있다가 '내 아들이 죽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일어나서 절하고 또 절하고.. 이렇게 3천배를 거의 하루종일 걸려서 끝마쳤다. 둘째 날도 셋째 날도 그녀는 첫날과 같이 고달픈 몸과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의 싸움을 하며 정말 지루하게 절을 하였다.
그러다가 4일째 되는 날, 대덕화 보살은 마음을 굳혔다.
"죽을 목숨 살리기가 어찌 쉬운 일이랴. 나는 지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살리고자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
고 있다. 일념으로 빌고 또 빌어도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인데, 몸 고달픈 것을 핑계삼아 절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불평 불만까지 하다니.... 내 목숨을 걸어 놓고 정성껏 절을 해보자.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 길밖에 없다."
이렇게 결심한 그녀는 3일째부터 이를 악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발가락이 부르트더니 짓물러
터졌고, 무릎은 다 벗겨져 피멍이 들었으며, 나중에는 손톱 밑에까지 멍이 들어 한 배 한 배 절을 드릴 때
마다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대덕화 보살은 절을 멈추지 않았다. 삼칠일이 거의 다 되었을 때는 기운조차 탈진되어 한 번 엎드리면 머리가 무거워서 일어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한 번 엎드리면 한참을 쉬었다 일어나고, 한 번 엎드리면 또 한참을 쉬고..... 이렇게 하다가 그만 순간적으로 깜빡 졸게 되었다.
순간, 불단 위에 앉아 계시던 부처님께서 일어나시더니, 탁자를 밟고 내려와 앞에 서시는 것이었다. 대덕화 보살이 고개를 들어보니 조금 전까지 분명히 서 계셨던 부처님은 보이지 않고 웬 스님 한 분이 동냥 그릇을 든 채 손을 내밀고 계셨다. 본래부터 보시 정신이 강했던 대덕화 보살은 평소의 버릇대로 주머니를 뒤졌다.
"돈이 있는지 모르겠네."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주머니를 뒤적이자 돈 한 뭉치가 잡히는 것이었다. 꺼내어 보니 돈은 돈인데 빨간 색의 돈이었고, 감촉이 쥐 껍질을 벗겨 놓은 것처럼 물컹한 것이 아주 기분이 나빴다. 액수를 세어 볼 것도 없이 몽땅 드렸더니, 스님이 그것을 받고는 품속에서 하얀 카드 한 장을 꺼내 주는 것이었다. 대덕화 보살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것을 받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꿈이었다.
그리고 다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절을 계속하였는데, 마지막 3천배가 끝나 갈 무렵 법당 밖에서 스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
"보살님! 살았습니다. 아드님이 살게 되었어요."
"예? 살았다구요?"
"방금 내무부장관을 지낸 최인규는 사형이 확정되고, 아드님은 15년 징역으로 감해졌다는 라디오 방송이
있었습니다."
그 뒤 이강학은 몇 년형을 살다가 특별사면이 되었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만약 대덕화 보살의 이러한 기도가 없었다면 이강학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곧 사력을 다한 어머니의
기도가 아들을 살렸던 것이다. 이처럼 지극한 기도는 나의 업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업까지도 능히 녹일 수
있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살인 등의 큰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불보살님 전에 지극히 기도를 하여 서상(瑞相)
을 입으면 죄가 다 소멸된다.'고 하셨다. 기도를 지극히 하면 어떠한 업장도 소멸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일이란 낮과 밤의 원리와 같은 것이다. 어둠이 다하면 밝음이 오고, 밝음이 다하면 어둠이 오게
되어 있다. 이를 기도에 적용시켜 보면 어둠은 업장이요, 밝음은 가피이다. 업장이 두터워 뜻과 같이 되지
않을 때 일월과 같은 부처님의 자비에 의지해 보라. 틀림없이 어두운 것이 사라지고 밝음이 오게 되어 있다.
문제는 오직 나의 정성이니, 만약 업장이 두텁다면 사력을 다해 목숨을 걸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의 방법인 3천배 기도법은 과거 장엄겁(莊嚴劫)의 1천 부처님, 현재 현겁(賢劫)의 부처님, 미래
성숙겁(星宿劫)의 1천 부처님, 이렇게 3대겁(三大劫) 동안에 출현하는 3천 부처님께 각각 한 번씩의 절
을 올리는 참회 법이다.
만약 지금 우리에게 비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비상한 기도, 비상한 참회가 뒤따라야 한다. 참으로 큰일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3천배를 3일 또는 7일, 나아가 21일 정도는 하여야 한다.
지금, 큰일이 눈앞에 이르렀다면 크게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께 매달려 보라. 이것만은 꼭 소원 성취하게 해 달라고, 잘못했으니 살려 달라고 하라. 부처님께 매달려 온 힘을 다해 기도하면 부처님의 밝은 가피는 나에게 이르기 마련이고, 가피력이 나에게 이르면 어두운 업장이 녹아들어 모든 일이 원만하게 풀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 일타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