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凌霄花 Chinese trumpet creeper]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이원규 시인의 <능소화>에서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 송이 사이렌을 울리는 능소화가 요즘 도심
속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개하여 담장 너머까지 흐드러지게 피어 마치 눈웃음을 흘리는 듯한 능소화는
그저 눈에 보이는 풍경들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꽃이다.
중국이 원산지로 ‘금등화(金藤花)’ 라고도 한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양반집 정원에만 심을 수 있었고,
일반 상민이 자신의 집에 이 꽃을 심으면 관가에서 잡아다 곤장을 때리고 심은 꽃은 뽑아버리고 두 번
다시 심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여 ‘양반꽃’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늘 화려한 자태로 요염함을 자랑하며 마지막까지 그 모습 그대로 떨어지기 때문에 ‘기생꽃’ 이나 ‘요화
(妖花)’ 라고도 불렸다. 꽃말은 ‘명예’이다.
꽃잎은 다섯 갈래로 되어 있다. 꽃부리는 나팔모양이고, 꽃차례는 원뿔 모양이다. 능소화의 특징은 덩굴
의 길이가 자그마치 10m에 달하고 줄기 마디마디에서 뿌리가 생겨 다른 사물에 잘 달라붙는 성질이 있다.
능소화엔 벌레가 달리 붙지 않으나 벌들은 즐겨 찾는다. 그만큼 꿀(蜜源)이 풍부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꽃잎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도 능소화의 특별함이다. 꽃술이 눈에 들어가면 따갑고 고통스럽다. 누군
가 능소화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꽃을 따거나, 떨어진 꽃을 줍기만 해도 능소화의 충이 눈에 들어가 실
명까지도 할 줄 모른다고 한다.
꽃은 약용으로도 쓰여 핏줄이 터져 어혈(瘀血)이 생겼을 때 쓰면 효능이 있다고 한다.
능소화 전설
작은 시골마을에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화'는 아주 어여쁜 아가씨였습니다. 얼마나 어여쁜지 근방의
총각들의 마음을 다 빼앗아 가버릴 정도였습니다. 그 소문은 소문을 타고 궁궐에까지 들어갔고, 임금은
소화를 궁녀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소화는 태어날 때부터 듣지 못했으니 자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던 소
화, 그래서 그는 누가 자기를 바라보면 그저 웃어주었던 것이죠. 그렇게 웃는 모습만 보아도 너무 아름다
웠기에 사람들은 소화가 벙어리라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단지 수줍음을 많이 타서 그런가 했던 것이죠.
소화의 어머니는 소화가 평범하게 살아가길 원했습니다. 듣지도 못하고, 말 못하는 벙어리인데 아무리 예
뻐도 평탄한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때로 산신에게 '저보다 딸이 먼저 죽게 해 주십시오'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소화가 궁녀로 뽑혀 가자 경사가 났다고 했지만, 두 모녀에게 그 소식은 청천
벽력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두 모녀는 밤 새워 서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던 것이죠.
"소화야, 그 곳에 가서도 잘 지내야 한다."
소화는 궁궐에 들어가자 곧 임금의 눈에 들어 빈(嬪)이 되었지만 소화가 벙어리라는 것을 안 임금은 그
이후로 소화를 찾는 일이 없었습니다. 다른 궁녀들은 그를 시기하였고 소화는 가장 깊은 곳, 구석진 곳
에 살게 되었고. 그렇게 임금에게 잊혀져 살아가던 소화는 어머니가 너무도 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보고 싶어요.'
한편 소화를 궁궐로 보낸 뒤 어머니의 하루하루는 바늘방석에서 지내는 것만 같았습니다. 소화를 팔아
자기가 편한 생활을 하는 것 같아 죄의식도 느꼈고. 궁궐로부터 좋은 소식이 있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딸의 소식은 빈이 되었지만 벙어리란 것이 알려진 후에 궁궐의 가장 깊고, 구석진 곳에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이후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앓아 누을 즈음 소화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다시 찾지 않는 임금에 대한 원망과 궁녀들과 다른 빈들의 시기와 질투 등으로 앓아 누웠습니다.
"하나님, 단 한 번만이라도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요."
"하나님, 단 한 번만이라도 소화를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두 모녀의 간절한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고 마침내 어머니는 소화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울다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궁궐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소화는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집을
찾았습니다. 동네사람들마다 혀를 차며 두 모녀의 기구한 운명을 슬퍼하였습니다.
소하는 어머니의 무덤에 엎드려 한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소하야, 울지 마라. 에미가 네 귀가 되어줄게."
소하는 깜짝 놀라. 난생 처음 생생하게 귀로 듣는 소리였습니다. 어머니와 수많은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였습니다.
"어머니, 아니에요. 편히 쉬세요."
무덤가에서 소화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벙어리라더니 저렇게 또박또박 말을 하잖아!"
"그럼, 그게 헛소문이었단 말인가?"
소화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사람들이 두런두런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분명히 남의 목소리가 아닌 자기의
목소리를 들었으니까요.
"어머니!"
"그랴, 여름날이면 너가 있는 궁궐 담을 끼고 피어나마. 그래서 우리 소화가 임금님에게 사랑받는 것도 봐
야지. 내 무덤가에 있는 흙 한 줌을 가져다 네가 거하는 궁궐 담에 뿌리려무나."
장례식을 마치고 궁궐에 들어간 소화를 임금님이 불렀습니다.
"빈은 그동안 왜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는가?"
"사실은 그동안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였습니다."
"그래? 짐은 빈이 나를 못마땅하게 여겨 그런다고 생각했었소."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목숨을 거둘 수도 있었으나 너무 아름다워 차마 그럴 수가 없었소."
소화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무덤에서 가져온 흙을 궁궐의 담에 뿌렸습니다. 임금의 사랑을 듬뿍 받을수록
소화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져만 갔습니다. 이른 봄부터 어머니 무덤가의 흙이 뿌려진 궁궐담에
는 푸릇푸릇 싹이 나오며 담장을 기며 이파리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여름 날, 귀 모양을 닮은 꽃이 피었습
니다.
'아, 어머니! 어머니!'
그 이후로 능소화는 아주 오랫동안 궁궐을 출입하는 양반들 집에 심기워져 사랑을 받아 '양반꽃'이라는 이
름을 얻기도 했답니다. 아무리 거센 폭풍우가 몰아쳐도 끝내 다시 피어나는 강인한 꽃이 된 이유는 어머니
의 마음을 담아 피어났기 때문이랍니다. 글 : 옮겨옴
사진 : 靑 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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