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多笑 즐거움 /神奇. 감동

며느리를 시집보내신 어머니

靑 波 2010. 9. 19. 04:21
 
    며느리를 시집보내신 어머니 언제였던가, 누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어머니의 그 옛이야기가 가슴 저려온 다. 그러니까 일제 그 어수선한 때, 큰형님을 징용에 보낸 부모님은 남은 아들들이 걱정이 되어, 벼공출 보리공출 진저리가 나서 차라리 먼 이국땅 북만주로 가신 거다. 가서 그 이듬해에 호열자라는 돌림병으로 단란하던 집안이 쑥대밭이 돼버 린 거란다. 날벼락같이 아들 둘과 손주 둘을 잃은 어머니와, 그리고 남편 과 어린 남매마저 잃게 된 형수님과의 한많은 사연이 대략 이러했다. 축 늘어진 모습으로 서로 부둥켜안고 울어 쌓다,그런 날들이 얼마나 지났 을까. 어머니는 새로운 각오라도 한 듯 어딘가를 며칠 드나드시더니, 하루는 조용히 며늘아가에게 타이르셨단다. “아가, 윗마을에 좋은 신랑감이 있는데, 너도 이제 새사람 만나 정붙이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저는 어무이하고 살 겁니다. 제가 지금 어무이마저 이별하고 어찌 사랍 니껴?” “아니다. 가야 한다. 어린것 하나라도 남았다면 네가 그걸 보고 ”산다고 하지만, 가서 아들딸 낳고 살다보면 차츰 잊혀지게 되는 법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눈물을 훔치며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어서 가라 손짓을 하며 그렇게 떠나보내시고 나서 어머니는 더 여위신 것 같았다. 그래도 세월은 흘러 가을이 오고 병아리도 자라 큰닭이 되어 있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큰 장닭 한 마리와 찹쌀 두어 되, 질금 한 되를 싸들고 윗마을로 향하셨다. 골목길에서 얼마를 기다려, 지나가는 사람한테 부탁 하여 서러운 해후를 하고 돌아오셨다고 한다. 지금은 연로하실 형수님, 어디서 부디 행복하게 사시는지 안부라도 한번 들어 보고 싶다. 어머니의 거룩한 임종 어느 해 가을 저물녘, 낙산사에 며칠을 묵으면서 문득 ‘이제 어머니 사실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그 동안의 불효를 다소나마 씻어내며 어머니 곁에 꼭 한 달만 있다 와야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기로 거의 마음을 굳히고 있는데, 느닷없이 아는 도반 스님들이 서넛 들이닥쳐 버렸다. 그래도 나는 그런 각오를 전하고 떠나오려 하는데, “중이 무슨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느냐”며 붙들려 버렸던 것이다. 낙지도 사먹고 감기 걸린 사람을 해수욕한다며 물에까지 끌고 들어가서 꽤나 오랫동안 참 많이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겨울을 어딘선가 지내고, 이른 봄에 고향집에 들러 빈소가 차려진 어머니 방에서 하루를 묵고 왔다. 지난 겨울이었단다. 한 3일을 감기 비슷한 증세로 계속 주무셨는데, 그 전 날은 ‘돼지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시는 것을 큰형님이 해롭다며 해드리지 못하게 했었나 보다. 한동네에 살고 있던 누님이 나중에사 듣고서 “오빠는 그런 말씀 마시소, 그랬다가 만약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걸려서 어쩔라고 그럽니까?“ 하며 돼지고기 반근을 사다가 볶아드렸더니 맛있게 다 드셨단다. 그러고서 편안히 주무시고 일어나서 아침밥도 다 드시고, 화장실에 갔다 가 손 씻고 방에 들어와 누우셨나 보다. 누님은 옆에서 친구랑 같이 얘기하고 앉아 있는데, 친구가 “엄마 좀 이상 하지 않니?” 한다. “엄마!” “와!” “대답도 잘 하는데 뭐가 이상해“ 하며 누님은 계속 친구랑 천연스레 얘기 하고 앉았느라고 잠이 들 듯 조용히 어머니 먼 길 떠나신 줄도 몰랐던 모 양이다. 진지 한 끼니 거르시지 않고 ‘아야’ 소리 한번 하신 적 없이 그렇게도 거룩한 임종을 하신 거란다.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라’ 했던가, 허허로운 정이야 더할 데 없었 으나,부처님의 세계로 가셨으리라는 안도의 마음이 태산처럼 든든했다. - 옮긴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