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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 科擧制度

靑 波 2015. 9. 19. 06:15





              朝鮮時代 科擧制度


    식년시가 처음 실시된 것은 1084년(고려 선종 1)이지만 1393년(태조 2)에 가서
    비로소 제도적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국가적 변고나 국상(國喪), 또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식년시를 연기하거나 시행하지 않기도 하였다.
    식년시(科擧)의 종류로는 文科(문관), 武科(무관), 잡과(기술직)로 크게 나뉜다.
    12支 中 子, 卯, 午, 酉가 드는 해를 式年이라고 칭하고, 3년마다 과거시험을 실
    시했다.
    式年試(식년시)외에 부정기적으로 보는시험으로는 증광시(增廣試,임금의 즉위시
    실시했으나 점차 확대함) 별시(別試,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때도 과거시험 치룸)
    알성시(謁聖試, 임금 이 문묘를 참배할 때 성균관에서 실시) 등이 있었다. 

     

    生員(小科):조선시대 生員式年試(생원식년시)초시(初試)와 복시(覆試)의 2단계)
    에 合格한 사람. 이들에게는 進士와 더불어 성균관에 입학 자격부여. 보통은 성
    균관에서 일정기간 수학한 뒤 大科인 文科를 거쳐 관직에 나아가는게 正常이나.
    兩班들이 試驗없는 蔭敍(음서 : 2품이상, 고위관직 나아갈 수 없음)나 取才(취재
    : 하급실무직)를 통해 참봉. 훈도 등으로 출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선발인원은 100人. 조선시대를 통틀어 1894년 과거제가 폐지될 때까지 500여년
    동안 식년시 162회, 증광시(增廣試) 別試, 알성시(謁聖試) 67회로 총 229회 小科
    施行되었으며, 조선시대에 배출된 生員 총수는 조선 후기 특히 고종연간에는 한
    번에 100명 이상 생원을 뽑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2만 4천여 명 정도 된다.

    이들 중 문과(大科)에 진출한 수는 3천 명 未滿, 절대 다수의 생원이 관직으로 나
    가지 못하고 향촌사회에서 지식인으로 행세한 셈이된다.이들은 벼슬은 없었지만
    군역이나 잡역을 면제받는 특권층이었고, 서원에 원생으로 공부하려면 우선권을
    갖고 있었다.
    생원과 진사와의 관계는 법제적으로는 우열이 없으나, 조선 초기는 생원이 進士
    보다 우대를 받았다(初期 進士試 없었음 1438년(세종20) 문예(文藝 :詩. 賦.頌. 策)
    후기에 내려오면 경학(經學 儒敎)보다 사장(詞章 文藝)을 重視하는 풍조따라 생
    원의 사회적 尊敬은 進士보다 下位에 놓이게 되었다.

     

    文科(大科):조선시대 大科는 총 3단계로 初試(초시), 覆試(복시), 殿試(전시).
    初試는 관시50명(성균관 출신) 한성시40명, 향시150명(각도 지방) 240명 선발.
    복시 초시 합격자 대상으로 이듬해 서울서 치러지는 2차시험으로 33명을 선발.
    전시는 국왕의 입회하에 치러지는 최종시험 甲科3명, 1등은 壯元종6품 성적순
    서대로 2명 정7품, 乙科7명 정8품, 丙科23명 정9품의 품계 복시 합격자 33명의
    등급이 정함.

    武科(무과):도 3단계 시험을 거쳐 28명을 선발하였다. 文. 武 합격자에게는 합격
    증서(홍패)를 주고 관직을 내렸다. 雜科(역과 : 譯科. 의과 : 醫科. 음양과:陰陽科.
    율과 : 律科)는 초시와 복시(식년)만을 실시하였다. 역과 19명, 의과 1명, 음양과
    9명, 율과 9명 등 총 38명을 뽑았다. 조선 후기(17세기)에 개설하여 3년에 한 번
    씩 실시하던 '대비과'도 후에 식년시로 바뀌었다. 

                    資料 :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