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靑波 作品/追億의 蔚山

고려 개국1등공신 배현경(裵玄慶)

靑 波 2014. 2. 7. 17:06

 고려 개국1등공신 배현경(裵玄慶)

【자료1】고려사 열전(高麗史列傳)

玄慶 初名白玉衫 慶州人 膽力過人 起行伍累進大匡 太祖以 靑州人 玄律爲徇軍 郞中 玄慶 與 崇謙駁 曰 往者 林春吉 爲 徇軍吏 圖爲不軌泄伏辜此乃典兵權而 恃本州故也 今又以玄律 爲徇軍郞中臣等 竊惑之太祖善之改授 兵部郞中  太祖 征討四方 玄慶功居多 十九年(註:936年)疾篤 太祖羍 其第執手 曰嗟乎 命而夫卿 子孫在 予其敢忘 太祖出門而 玄慶卒 遂駐駕命 官庀葬事而後 還諡 武烈 子 殷祐

현경의 첫 이름은 백옥삼으로 경주인이다. 담력이 뛰어나 사병에서 시작하여 여러 번 승진하여 대광에 이르렀다. 태조가 청주사람 현율을 순군랑중을 삼고자 함에 현경이 신숭겸과 반박하기를, 지난날 임춘길을 순군리로 삼으니 반역을 꾀하였으나 일이 누설되어 처형되었다. 이는 병권을 쥐고 본주(中央)에 있었던 까닭이다. 이제 또 현율로서 순군랑중을 삼으니 신들은 의혹 합니다 하니, 태조가 알았다고 하시고 병부랑중을 바꾸어 버렸다.

태조가 사방을 정토할 때 현경의 공이 많았다. 태조 19년(註:936年)에 공의 병이 위독하자 태조가 그 집에 행차하여 그 손을 잡고 이르기를 아, 명이로구나 경의 자손이 있으니 내 어찌 감히 잊으랴, 태조가 문을 나서자 현경이 졸 하였다. 드디어 어가를 멈추게 하고 관에 명하여 장사를 돕게 하고 돌아갔다. 시호는 무열(武烈), 아들은 은우(殷祐)이다.


【자료2】무열공본전(武烈公本傳)

公姓裵氏諱玄慶初名白玉衫慶州人唐乾符元年甲午(註:874年)生家在太白山麓... 공(公)의 성(姓)은 배씨(裵氏)이며, 휘는 현경(玄慶)이다. 처음 이름은 백옥삼(白玉衫)이며 관(貫)은 경주(慶州)라, 唐나라 乾符元年 甲午(註:874年)에 태백산록(太白山麓: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으며, 고려 태조 19년(註:936年)에 향수 63세로 졸하였다.

담력이 크고 용맹하며 지략이 뛰어나, 궁예(弓裔)에게 부속(註:895年) 하여, 솔오(率伍)에서 출발하여 기장에 이르렀다. 그러나 궁예가 즉위한지 몇 년 만에 처자식을 살해하고 백성을 혹사하는 등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공은 서기 918年 에 당시 동료 기장이었던 삼능산(三能山,뒷날=申崇謙), 사귀(沙貴,뒷날=卜智謙), 홍술(弘述,뒷날=洪儒) 등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기로 하고 왕건(王建)에게 왕창근, 송함홍 등 점술가의 예언을 설명하면서, 거사를 권하여 왕건을 고려 태조(太祖)로 옹립하였고, 고려 개국1등공신에 올랐으며 뒷날 태사(太師)의 위에 올랐다.

【참고자료】 裵玄慶(初名:白玉衫) 연표(年表)

    ○서기 874년 甲午(신라 경문왕14),  황해도 평산(平山) 태백산자락에서 태어나다.
    ○서기 895년 乙卯. 왕건과 함깨 궁예에게 부속하여 솔오(率伍)에 임명되었다.
    ○서기 898년 戊午. 궁예가 왕건을 대장으로 삼고 公을 선봉장(先鋒將)을 삼았다.
    ○서기 900년 庚申. 궁예, 公을 아찬에 임명하고 마군장군(馬軍將軍)을 삼았다.
    ○서기 904년 甲子. 궁예가 국호를 '마진'으로 하고 公을 대장(大將)으로 삼았다.
    ○서기 906년 丙寅. 궁예, 국호를 '태봉'으로 고치고 公을 표기장군을 삼았다.

    ○서기 918년 戊寅 6월, 왕건을 王으로 추대하여 고려(高麗) 건국에 공헌하였다.
    ○이 해(태조원년) 8월, 公은 개국공신(開國功臣) 제1등(第一等)에 지정되었다.
    ○서기 919년 己卯(태조 2) 2월, 공을 대상(大相)으로 임명하였다.
    ○서기 927년 丁亥(태조 10) 春正日에, 公을 삼중대광 진무도총장 (三重大匡鎭撫都總將)으로 임명하다.
    ○서기 936년 丙申(태조 19)12월 13일,<六十三>으로 졸(卒)하였으며, 시호(諡號)는 무열(武烈)이다.
    ○서기 940년 庚子(태조 23), 신흥사에 공신당을 설치하고 公을 머리(首)에 모셨다.
    ○서기 994년 甲午(고려 성종 18) <死後 59年> 4월 23일, 公을 태조묘(太祖廟)에 배향(配享)하였다.
      - 武烈公本傳에서-


 [자료3]배씨종사보감(裵氏宗史寶鑑)

고려 태조 왕건은, 개국 초에 건국에 공을 세운 많은 공신과 호족들에게 성명과 본관을 하사하였다.
옛날에는 나라에 공을 세워 공신에 녹훈된 사람이나, 다른 나라에서 귀화해 온 사람에게 포상의 표시로서 왕이 성씨(姓氏), 또는 이름을 하사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사성(賜姓), 또는 사명(賜名)이라 하였다. 이는 삼국시대초기부터 있었으며, 특히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가장 성행하였다.

[참고자료] 배씨종사보감의 사성(賜姓) 일람표.

현재의 성씨(姓氏)  사성조(始祖?)   원래의 성, 또는 이름  사성한 왕  비고 
경주배씨(慶州裵氏)  현경(玄慶)  본명:백옥삼(白玉衫)  고려 태조  고려 개국공신 
면천복씨(沔川卜氏) 지겸(智謙) 본명:복사귀(卜沙貴) 고려 태조 고려 개국공신 
의성홍씨(義城洪氏) 유(儒) 본명:홍술(弘述) 고려 태조  고려 개국공신 
평산신씨(平山申氏) 숭겸(崇謙) 본명:삼능산(三能山) 고려 태조 고려 개국공신 
풍양조씨(豊壤趙氏)  맹(孟)  본명:바위(巖)  고려 태조  고려 개국공신 
충주어씨(忠州魚氏)  중익(重翼)  지씨(池氏)  고려 태조   
강릉왕씨(江陵王氏)  우(又)  강릉김씨(江陵金氏)  고려 태조   
해주왕씨(海州王氏)  유(儒)  박씨(朴氏)  고려 태조   
연안차씨(延安車氏)  효전(孝全)  문화류씨(文化柳氏)  고려 태조  柳車達의 장자 
철원궁씨(鐵原弓氏)  총  경주김씨(慶州金氏)  고려 태조 
안동권씨(安東權氏)  행(幸)  경주김씨(慶州金氏)  고려 태조   
광주이씨(光州李氏)  순백(珣白)  경주김씨(慶州金氏)  고려 충숙왕   
연안인씨(延安印氏)  후(侯)  본명:홀자대  고려 충렬왕   
덕수장씨(德水張氏)  순용(舜龍)  본명:삼가(三哥)  고려 충렬왕   
정씨(鄭氏)  공(公)  본명:오십팔(五十八)  고려 충렬왕  鄭氏의 일파 
차씨(車氏)  신(信)  차홀태(車忽태)  고려 충렬왕  車氏의 일파 
수성최씨(隋城崔氏)  영규(永奎)  안동김씨(安東金氏)  고려 충렬왕   
일직손씨(一直孫氏)  응(凝)  순씨(荀氏)  고려 현종  왕의 諱와 같아서 
예천권씨(醴泉權氏)  섬(暹) 흔씨(昕氏)  고려 충목왕  왕의 諱와 같아서 
노씨(盧氏)  영(英)  본명:식독아(式篤兒)  고려 충렬왕  盧氏의 일파 
안씨(安氏)  원(瑗)  이씨(李氏)  신라 애장왕   
죽산안씨(竹山安氏)  방준(邦俊)  李瑗의 아들  신라 경문왕   
광주안씨(廣州安氏)  방걸(邦傑)  李瑗의 아들  신라 경문왕 
영양남씨(英陽南氏)  민(敏)  김충(金忠)  신라 경덕왕   
인천이씨(仁川李氏)  허겸(許謙)  태인허씨(泰仁許氏)  당조(唐朝)   
감천문씨(甘泉文氏)  세광(世光)  경주김씨(慶州金氏)  송조(宋朝)   
정선문씨(旌善文氏)  임간(林幹)  전씨(全氏)  송조(宋朝) 
청해이씨(靑海李氏)  지란(之蘭)  본명:퉁두란  조선 태조  조선 개국공신 
김해김씨(金海金氏)  충선(忠善)  본명:사야가(沙也哥)  조선 선조  임진왜란 때 귀화 


참고자료】고려 태조(왕건)현릉의 배현경 무인상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 만수산에 위치한 태조 현릉의 배현경 상.

개성 현릉(왕건릉)은, 서기 943년(태조 26) 5월에 조성. 첫째 왕후인 신혜왕후 유씨가 함께 묻혀 있다. 현릉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몇 차례 이장된 적이 있었다. 1018년(현종 9) 거란이 침입하자 부아산 향림사로 옮겼다가 다음 해 11월 다시 환장하였으며, 1217년(고종 4) 거란족이 침입하자 태조의 재궁(관)은 다시 봉은사로 옮겨졌다. 또 1232년(고종 19)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현릉은 다시 강화로 이장되었으며, 개경으로 서울을 옮긴 1270년(원종 11)에 임시로 이판동에 옮겼다가 1276년(충렬왕 2)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따라서 지금의 현릉 자리가 처음 태조가 묻혔던 바로 그 자리인지는 알 수 없다.
이곳은 또한 1906년(광무 10) 도적들에 의해 파헤쳐진 적이 있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 중에 파괴되었으나 1954년 복구한 적이 있다. 1992년 북한에서 발굴조사 후 새로 고치고, 1993년 5월 5일 한자로 쓴 "고려태조왕건왕릉개건비"를 세웠다. 이때 12지신상을 새긴 본래의 병풍석들은 무덤 안쪽에 넣어 보존하고 있다.

북한에서 발굴할 때 여러 가지 유물이 나왔는데, 그중 금동불상은 등신불로서 현재 개성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무덤안칸에는 벽화를 그렸는데, 동벽에 매화나무, 참대, 청룡이, 서벽에 소나무, 매화나무, 백호가, 북벽에 현무, 천장에는 8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列傳』
『武烈公 本傳』
『裵氏宗史 寶鑑』
 

출처 : 분성배씨 종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