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금강경 강의 究竟無我分 第 十七

靑 波 2003. 8. 17. 15:23
 
    究竟無我分 第 十七 제17분 끝까지 아가 없음 물결 떠나 물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얼어 있든 수증기가 되든 오 직 물일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반야의 세계에는 오직 반야만이 있을 뿐입니다. 반야(般若)의 세계(世界)가 무엇입니까? 바로 무상(無相)이고, 무아(無我)인 것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나(我)가 없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가든 철저하게 밝고 깨끗하여 나는 없습니다. 범부(凡夫)이든 성인(聖人)이든, 초심자이든 익숙해진 사람이든 끝까지 무아(無我)로 종(宗)을 삼아야 일체법(一切法)이 모두 불법(佛法)이 되는 것입니다. 이 分의 내용은 앞에서의 선현기청분 제2와 대승정종분 제3의 문답이 반복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경의 뜻이 불가사의하고 과보도 불가사의하니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는 것입니다. 말은 같아도 뜻은 다르다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끝까지 무아(無我)니까 색깔이 달라지는 정도의 차이로 보면 됩니다. 초심자로서의 문답과 익숙해진 사람으로서의 문답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爾時에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善男子善女人이 發阿縟多羅三藐三菩提心하니는 이시 수보리 백불언 세존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云何應住며 云何降伏其心하리잇고 운하응주 운하항복기심 그 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심을 발하였으니 어떻게 마땅히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으리까." 지금까지 계속 부처님의 말씀을 새겨 상(相)이 무너진 그 곳에 반야의 등불이 빛난다는 것을 어지간히 알았지만 행여나 하는 마음에서 또 다시 부처님께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일으킨 사람은 진정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고 마땅히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여쭈어 봅니다. 이러한 자세는 참으로 권장할 만한 자세입니다. 웬만큼 알아차렸다고 해서 중도에서 마음을 놓아 버리면 그 무엇도 되지 않습니다. 佛이 告須菩提하사되 若善男子善女人이 發阿縟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當生如是心이니 불 고수보리 약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당생여시심 我應滅度一切衆生호리라 滅度一切衆生已하야는 而無有一衆生도 實滅度者니 아응멸도일체중생 멸도일체중생이 이무유일중생 실멸도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 하였으면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낼지니, 내가 응당 일체 중생을 멸도하리라. 알체 중생을 멸도하고 나서는 한 중생도 멸도함이 없으리라." 부처님께서 일차적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였지만 사실은 한 중생 도 제도한바가 없습니다.우리들은 본래로 부처이고, 깨어 있으며, 해탈(解脫)되어 있는 우리들을 가지고 제도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맞지않는 말입니다. 본성으로 지니고 있는 이 재산, 이 보물은 부처님 같은 능력자도 털 끝만큼 손상시키지 못하고, 가져오지 못하며 또한 보태줄 수도 없습니다. 만에 하나도 결국은 자기가갖고 있는 자기재산을 자기가 썼을뿐입니다. 제 중생 제가 제도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부처님께서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오시 어 우리들에게 큰 공헌을 남기셨지만, 본질적으로 볼 때는 각자가 본래로 모든 것을 구족하고 있는 보물 창고일 뿐입니다.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菩薩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면 則非菩薩이니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 '천지는 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라 하늘, 땅, 삼라만상(參羅萬象)은 전부 다 나와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니, '너니'하고 구분지울 게 없습니다. 본래가 동일한 자리여서 평등할 뿐인데 거기에는 이리 저리 금을 긋고 비교하고 분별할 그 무엇도 없습니다.그러나 우리들은 '상견중생(相見衆生)'인지라 아직도 바깥으로 드러 난 색상(色相)에 마음을 빼앗끼고 기준으로 삼습니다.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實無有法發阿縟多羅三藐三菩提心者니라 소이지하 수보리 실무유법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수보리야, 실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것이 아니니라." 진정한 보살은 사상(四相)을 내지 않는데 깨달음의 마음을 내는 데에 있어서도 어떤 고정된 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於燃燈佛所에 有法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아 不也니이다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어연등불소 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불야 世尊하 如我解佛所說義컨댄 佛이 於燃燈佛所에 無有法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하니이다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 어연등불소 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불 처소에서 법이 있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를 얻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이 설하신 뜻을 이해하기에는 부처님 이 연등불 처소에서 법이 있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과거 연등불 머리를 풀어 지성껏 공양 올리고 발심 수행하여 수 기를 받고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마는 사실로는 '이것이 법이다' 할 무엇이 없었다는 것 입니다. 부처님의 금생의 깨달음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의 수행에 있어서도 실로 어떤 법이 있었 던 것이 아니었다는 걸 부처님이 묻고 공의 도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수보리가 답합니다. 佛言하사대 如是如是하다 불언 여시여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그렇다 그렇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떠나보낸 보살의 삶과 부처님의 금생에 있어서의 깨달음이 나 과거생에 있어서의 보리심 그 무엇도 매인 바 없이 없음을 부처님만큼이나 잘 밝히는 수보리의 높은 안목을 부처님께서흔쾌히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實無有法如來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 실무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야, 실로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이 아니니라." 우리 인류에 있어서 가장 획기적이고도 값진 사건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이라 할 것입 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있었기에 우리들의 삶이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음을 알아 정진 할 수 있고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갈 수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의 그 거대한 성도도 어떠한 고정된 법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 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에게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빠지지 말아라 하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에 게도 불상(佛相)이 없다는 것입니다.보리를 얻었다 하는 보리상(菩提相), 깨달음을 이루 었다는 각상(覺相),부처가 되었다고 하는 불상(佛相)을 모두 다 걷어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흔적이 마음에 남아 있다면 부처님은 부처가 못 되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若有法如來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 인댄 燃燈佛이 則不與我授記 하사대 수보리 약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연등불 즉불여아수기 汝於來世에 當得作佛하야 號를 釋迦牟尼라하시니라 여어래세 당즉작불 호 석가모니 以實無有法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 是故로 燃燈佛이 與我授記하사 作是言 하사대 이실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고 연등불 여아수기 작시언 汝於來世에 當得作佛하야 號를 釋迦牟尼라하시니 여어래세 당즉작불 호 석가모니 "수보리야, 만약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음인댄 연등불이 곧 나 에게 수기를 주면서 '너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를 이루리니 호를 석가모니라 하라'고 하 시지 않았으려니와, 실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므로 이 까 닭에 연등불이 나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말씀하시되 '너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를 이루리 니 호를 석가모니라 하리라'고 하시니라." 수기(授記)는 부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그대는 언제 어디서 어떠어떠한 부처가 되어 이러이러한 교화를 펼 것이다." 하고 미리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과거 연등 부처님에게서 석가모니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았습니다마는 부처님께서 과거생에 보살행을 하시고 깨달음을 얻음에 있어서 어떠한 고정된 법에 머물렀다면 연등불이 수기를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로 보리심을 얻는 데 있어서 그러한 법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리 라는 수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나는 보리심을 얻었다'하는 상을 갖고 있엇다면 부처님이 되지 못 했을 것이지만 실로 그러한 마음의 상이 없음으로 해서 부처를 이루어 우리 인류의 너무 나도 큰 스승이 된 것입니다. 何以故오 如來者는 卽諸法如義니라 하이고 여래자 즉제법여의 "무슨 까닭인가하면 여래라 함은 곧 모든 법이 여여하다는 뜻이니라."여(如)는'그대로 이다', '같다', '진리이다', '평등하다'는 불교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냥 진리라고 하는 것보다 여(如)라고 하는 것이 더 구체적입니다. 그러니 모든 법이 여여하다는 것은 모든 법이 진리이다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여래 라고도 하는데 여(如)에서 왔다는 뜻입니다. 즉, 진리에서 왔다, 진리 그 자체이다 하는 뜻이 됩니다.부처는 진리 그 자체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이것이 부처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若有人이 약부인 言如來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라하면 須菩提야 實無有法佛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 언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실무유법붇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길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릴르 얻었다'고 하면 수보리야, 실 로 법이 있어서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이 아니니라." 부처님께서는 설산에서의 육년간의 고행을 떠나 보리수 아래에서 납월 팔일 견명성오도 (見明星悟道)를 이루었습니다. 생사의 근원적인 의문과 문제가 풀리고 모든 집착을 끊고 광대무변하고도 영원한 진리를 얻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위대하고 획기적인 깨달음도 어떤 고정된 법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게서 증득한 보리심은 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기준이나 선악시비를 떠나 서 두루두루 걸쳐 있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如來所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는 於是中에 無實無虛하니라 수보리 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시중 무실무허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이 가운데는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 느니라." 위대한 부처님의 깨달음은 진정 어떠한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실다움이 있다고 하면 어떤 고정된 실체가 되니 상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면 『금강경』의 도리에 맞지 않게 됩니다. 어디에 기준하여 부처님이 환하게 밝아졌다고 하면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디에 기준하였다 하면 그곳에는 반야의 빛이 갈 수 없을 테니까 오도(悟道)를 이뤘다 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헛된 것은 더욱 더 아닙니다. 부처님이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 것은 더욱 더 아닌 것입니다. 온 우주 전체가 깨달음 그 자체뿐이니까 실(實)이니 허(虛)니 하는 말 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의식과 분별이 끊어지고 말로써 나타낼 수 없는 언어 도단 (言語 道斷)'의 자리인 것입니다. 是故로 如來가 說一切法이 皆是佛法이라 하나니 시고 여래 설일체법 개시불법 "그러므로여래가 다 불법이라'하시니." "일체법이 모두 다 불법이다."라는 말은 널리 알 려진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맥이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쉽게 불법(佛法)이 손에 잡힐 것 같기도 합니다. 불법을 뭔가 굉장히 거창하고 뼈를 깎는 듯한 고행을 거쳐야 비로소 도달될 수 있을 것이 라 생각해 온 사람은 뒷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어떤 특정한 장소나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사람이 살아가는 그 일 자체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을 떠나 불교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다 불법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활과 같이 둥글게 말씀하시고 선사는 활줄과 같이 팽팽하게 가로질러 명쾌 하게 바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금강경』은 육조 혜능대사 이래로 선종의 소의경전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선구들의 바 탕이 될 수 있기에 여러 선사(禪師)들이 참으로 금강경을 아끼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所言一切法者는 卽非一切法일새 是故로 名一切法이니라 수보리 소언일체법자 즉비일체법 시고 명일체법 "수보리야, 말한 바 일체법이란 곧 일체법이 아님일새 그러므로 일체법이라 이름하느니라." 그러나 일체법이 개시불법이라 하니 또 일체법이이라는 법의 실체가 따로 어느 것에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는 우리들 중생이 즉각적으로 빠지게 되는 일체법이라는 상을 즉시로 또 지워주시는 것입니다. 일체법이라는 상에 매일까봐 일체법이 일체법이 아니고 단지 이름 붙이기를 일체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譬如人身長大이니라 須菩提가 言하사되 世尊하 如來說人身長大가 수보리 비여인신장대 수보리 언 세존 여래설인신장대 卽爲非大身일새 是名大身이니이다 즉위비대신 시명대신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사람의 몸이 장대함과 같느니라."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한 사람 몸의 장대함도 곧 큰 몸이 아니고 그 이름이 큰 몸 입니다." "일체법이 곧 일체법이 아님일새 그러므로 일체법이라 이름하느니라."라는 이해를 돕고 자 부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갖고 와서 비유를 드십니다. 사람의 몸이 몹시 장대(長大)하여 확실하게 자리잡아 우리 눈앞에 보여주고 있어도 결국 은 시대와 오온이 잠시 인연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인연이 다하면 그 장대했던 몸도 다 흩어지고 본질자리는 텅 비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는 것도 실로 큰 몸이 되지 못하는 것이고 이름을 큰 몸이 라 붙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菩薩도 亦如是하야 若作是言호대 我當滅度無量衆生이라하면 수보리 보살 역여시 약작시언 아당멸도무량중생 卽不名菩薩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實無有法名爲菩薩이니 즉불명보살 하이고 수보리 실무유법명위보살 "수보리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약 이런 말을 하되 '내가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을 멸도하리라'한다면 곧 보살이라 이름할 수 없음이니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실로 법이 있어서 보살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보살(菩薩)이란 나니 너니 하는 상대적인 생각이 끊어져 지극히 평등한 원리를 깨친 사람이므로 없는 가운데에서 불도를 닦고 중생을 제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도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무한한 능력과 생명의 복을 자신이 캐내어 자신이 쓸 뿐이지 누가 제도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팔만 사천 법문도 부처님의 깨달음을 쏟아 놓은 것이아니고 바로 설법을 듣는 우리들의 보물 그대로를 자랑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한 기준에 근거하여 이렇게 하면 보살이다 저렇게 하면 보살이 아니다 할 것이 전 혀 없습니다. 전부 다 공을 근본으로 하여 잠시 인연을 갖고 있을 뿐인데 어떤 법이 있어 서 보살이라 하겠습니까.실로 보살이라 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是故로 佛說一切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하나이라 시고 불설일체법 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 그러므로 부처님이 설화되, "일체법은 아도 없고 인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수자도 없다." 라 하느니라. 우리들의 바깥 경계에서 벌어져 있는 모든 현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어디에다 머물러 한정지우면 일체법의 진실을 볼 수 없습니다. 일체법과 아울러 언제나 나 자신이 기준이 되고 나아가서는 남과 나머지 삼라만상 전부가 다 분별의 대상이 됩니다. 법(法)이 공하고 나도 공한 것입니다. 내가 비어 버리면 나로 인해 벌어지는 다른 모든 일체법도 공한 것입니다. 須菩提야 若菩薩이 作是言호대 我當莊嚴佛土라하면 수보리 약보살 작시언 아당장엄불토 是不名菩薩이니 何以故오 如來說莊嚴佛土者는 卽非莊嚴일새 是名莊嚴 시불명보살 하이고 여래설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이런 말을 하되 '내가 마땅히 불국토를 장엄하리라'한다면 이는 보살이라 이름할 수 없음이니 무슨 까닭인가. 여래가 설한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장엄이니라." 만약 우리들이 사는 집을 장엄한다고 한다면 그 집의 건물을 으리으리하게 짓고 호화로 운 장식물로 치장하고 값나가는 가구로 꾸미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집안에 어울려 살아가는 가족들이 신뢰를 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을 진실한 장엄이라 할 것입니다. 물론 국토를 균형있게 개발하고 편리하고 큰 건물을 높이 세우는 일도 필수적이겠지만 이같은 겉치레의 장엄이 아니고 이 국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으로써 장엄해야만 합니다. 이것을 일차적인 장엄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좀 더 발심(發心)하면 장엄하겠다는 마음의 상을 내지 않고 장엄할 국토도 없 습니다. 須菩提 若菩薩 通達無我法者 如來說名眞是菩薩 수보리 약보살 통달무아법자 여래설명진시보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무아의 법을 통달한 자이면 여래는 이를 참다운 보살이라 이름 하느니라." 나와 너라는 분별심을 떠나보내고, 나아가 중생을 제도한다는 상이나 불국토를 장엄해 야겠다는 의식을 철저하게 비운 사람은 無我法의 이치를 완전히 깨친 사람입니다. 아니 깨쳤다는 마음도 없습니다. 바다에는 오직 짠맛뿐이듯이 무아에는 오직 무아뿐입 니다. 철저하게 무아뿐입니다. 아(我)가 없으니 나 이외의 대상인 법(法)도 없고 그리하여 이 둘 또한 같이 텅 비어 없 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의 삼공(三空)이 혁혁하게 드러나는 것입 니다.이 도리를 총달한 사람은 참으로 큰 보살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