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금강경 강의 持經功德分 第 十五

靑 波 2003. 8. 15. 15:20
 
    持經功德分 第 十五 제15분 경을 가지는 공덕 이 세상의 수많은 생명 중에서 사람의 목숨을 받은 이 공덕은 한량없이 큽니다. 더욱이 무궁무진한 마음의 세계를 깨달아 가는 반야의 삶을 누리는 이 공덕은 그 어떤 보물로도 값을 매길 수가 없고, 또한 어떠한 명예와도 바꿀 수 없습니다. 진실로 '반야의 삶'은 삼천 대천 세계를 가득 채우고 여기 이 자리에있습니다. 『금강경』의 이치가 우리들 몸에 배이고 배이면 그 때엔 어둠이란 없습니다. 또한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답답함도 부자유도 없습니다. 오로지 영원히 밝고 힘차서 값진 인생길만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오직 '마음의 밭〔心田)'에 '믿음의 씨앗'을 뿌려'지혜의 쟁기'를 가지 고서 우리들의 불성(佛性)을 거두어 갈뿐입니다. 須菩提야 若有善男子善女人이 初日分에 以恒河沙等身으로 수보리 약유선남자선여인 초일분 이항하사등신 布施하며 中日分에 復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며 後日分에 보시 중일분 부이항하사등신 보시 후일분 亦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야 如是無量百千萬億劫을 以身布施어든 역이항하사등신 보시 여시무량백천만억겁 이신보시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낮에 다시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며 다시 저녁에도 또한 항하의 모래 수 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여 이와같이 무량한 백천만억 겁 동안을 몸으로 보시하더라도" 하나밖에 없는 우리들이 목숨을 한 번만이라도 보시한다는 것은천지 개벽이 아니고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목숨은 커녕, 신체의 일부만이라도 기증하기란 여간한 결심이 아니고서는 매우 어 렵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많고 많은 목숨으로 보시하고,낮에 또 보시하고 저녁에도 그러기를 백천만억 겁 동안에 하였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마냥 아득 할 뿐입니다. 겁(劫-Kalpa)은 매우 긴 시간을 말하는데 여러 가지로 나타냅니다. 대체로 일 겁은 범천(梵天)에 있어서는 하루가 되고, 인간에게는 사억삼천 이백만 년이 된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다른 여러 가지의 개념이 있습니다. 흔히 '개자겁(介子劫)'이나 '반석겁(磐石劫)'이라 말하는데, 개자겁은 둘레가 사십 리 되 는 성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 놓고 장수천인이 삼년마다 한 알씩 가지고 가서 죄다 없어 질 때까지의 시간을 일 개자겁이라 합니다. 반석겁은 역시 둘레가 사십리 되는 바위를 천인이 무게가 삼수되는 천의로써 삼 년마다 한 번씩 스쳐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의시간을 일 반석겁이라 합니다. 둘레가 팔십 리일 때에는 일 증겁, 백이십 리일 때에는 일 대겁이라 합니다. 혹은 사람의 나이가 팔만 사천 세 때부터 백 년마다 한 살씩 줄여서 십세에 이르고, 다시 백 년마다 한 살씩 늘어서 다시 본래의 나이로 될 때까지를 일 소겁이라 합니다. 우주는 성(成),주(住), 괴(壞), 공(空)의 무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가 생성되고 주하고 부숴져 허공으로 있는 시간이 일대겁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때의 공덕도 이 경의 공덕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하고있습니다. 若復有人이 聞此經典하고 信心不逆하면 其福이 勝彼하리니 약부유인 문차경전 신심불역 기복 승피 何況書寫受持讀誦하야 爲人解說이리요 하황서사수지독송 위인해설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이 거슬리지 않으면 그 복이 저 몸을 보시 한 복보다 스승하리니, 어찌 하물며 경을 받아 지니며 읽고 외워서 남을 위해 해설해 줌이 겠는가." 이『금강경』의 가르침을 듣고 마음 속에 저항이 생기지만 않는다고 해도 무수한 목숨으 로 하루에 세 번씩 오랜 세월 동안 보시한 공덕보다도 더 큰 복을 받게 되는데, 이금강경의 이치를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받아 들여서 항상 이 이치대로 살아가고 나아가 남에게까지 설명해 주고 밝혀 주는 그 사람의 공덕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해도 해도 다함이 없는 진정한 무루복(無漏福)인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금강경을 공부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설사 실망 되는일이 닥치거나 인간적 인 서운함을 느낄 일이 생겨도 조금도 낙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반야 행자들은 시방 세계와 세세생생 가득한 무진장(無盡藏)한 복을 누리고 있는데 무엇을 겁내고 무엇을 망설이며 살 것입니까. 오로지 밝고 밝은 공의 도리로써 내 삶을 자신있게 꾸려갈 뿐입니다. 須菩提야 以要言之컨댄 是經이 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하니 수보리 이요언지 시경 유불가사의불가칭량무변공덕 "수보리야, 요약해서 말할진재 이 경은 생각할 수도 없고 말 할 수도 없는 끝없는 공덕이 있느니라." 『금강경』의 뜻을 바로 알아 듣고 항상 마음에 새겨 이 진실대로 살아간다면 모든 무상 하고도 허황된 것을 날려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대긍정의 세계에서만 우리의 인생을 엮어가니 그 공덕은 한없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실제에 있어서 이러한 대초월이 세계가 단숨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일심 으로 『금강경』을 독송하는 가운데 무엇인가가 뚫리고 장애가 깨끗이 사라지는 신행담 을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如來가 爲發大乘者說이며 爲發最上乘者說이니라 여래 위발대승자설 위발최상승자설 "여래는 대승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하며 최상승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하느니라 대승(大乘)은 불도를 깨달아 저 혼자만 제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일체 중생까지 제 도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큰 수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 자신만을 제도하겠다 하는 소극적인 사람에게 이 경을 말씀하시는 것 이 아니고 남도 함께 태워가려는 큰 마음을 낸 사람에게 이 금강경을 설하신 것입니다. 상(相)을 떠난 자유자재한 나의 참다운 지혜가 바로 부처다 하는 것을 깨달아 무궁무진한 삶의 길을 중생들과 더불어 열어가는 보살들을 위하여 최고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대승에는 권교 대승(權敎大乘)과 실교 대승(實敎大乘)으로 구분합니다. 권교 대승은 방편을 가지고 있는 대승으로 유식법상종(唯識法相宗)과 중론(中論), 백론 (百論), 십이문론(十二門論)의 삼론종(三論宗)이 있습니다. 실교 대승은 방편을 배재한 가르침으로 법화사상(法華思想), 선종사상(禪宗思想)이 여기 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지금은 그러한 분별이 없어졌지만 절을 창건할 때 각자가 터득 한 가르침을펴기 위해 권교 대승의 법상종 계통의 사찰은 미륵불을 주불로 모셨습니다. 법주사, 동화사, 금산사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특히 해인사(海印寺)는 화엄 사상에 의거하여 건물을 안치하여 그 경전의 세계를 형상화 시켰습니다.『화엄경』의 주불 '비로자나불'은 아홉 번 방광(放光)을 놓고 대적광토 (大寂廣土)에 거한다고 합니다. 若有人이 能受持讀誦하야 廣爲人說하면 如來가 悉知是人하며 약유인 능수지독송 광위인설 여래 실지시인 悉見是人하야 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無有邊不可思議功德 실견시인 개득성취불가량불가칭무유변불가사의공덕 如是人等은 則爲荷擔如來阿縟多羅三藐三菩提 여시인등 즉위하담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을 받아지니고 읽고 외우며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설한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모두 알며 이 사람을 모두 보나니,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끝이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모두 성취하게 되리라. 이런 사람은 곧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짐이 되니라." 남과 더불어 함게 깨어 있는 사람,그것도 최고의 바른 법을 구해 가는사람을 부처님이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부처님뿐만 아니라 바르게 눈을 뜬 사람은 모두 그 사람을 인정해 주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참된 불자(佛子)는 절대로 회피하면서 소극적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나도 부처다'하는 마음가짐으로 어떠한 일도 굳세게 이겨가야 합니다.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樂小法者는 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일새 하이고 수보리 약요소법자 착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則於此經에 不能聽受讀誦하야 爲人解說하리라 즉어차경 불능청수독송 위인해설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만약 작은 법을 좋아하는 자는 아견, 인견,중생견, 수자견에 집착하게 되므로 곧 이 경을 능히 받아듣고 읽고 외우며 남을 위해서 해설하지 못하느 니라." 작은 법을 좋아하는 자란 자기 한 몸만 수행을 잘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겠다는 소승 (小乘)을 닦는 자입니다.소승은 대승가 대립되는 생각으로 '있다'는 관점에서 사상(四相) 에 대한 주견(主見)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경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읽고 외우지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남에게 는 더 더욱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따라서 삼천 대천 세계에 가득한 칠보로써 보시한 공덕 보다 더 큰 금강경의 공덕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在在處處에 若有此經하면 一切世間天人阿修羅의 수보리 재재처처 약유차경 일체세간천인아수라 所應供養이니 當知此處는 則爲是塔이라 皆應恭敬作禮圍繞하야 以諸華香으로 而散其處 소응공양 당지차처 즉위시탑 개응공경작례위요 이제화향 이산기처 하리라 "수보리야, 어느 곳이던지 만약 이 경이 있는 곳이면 일체 세간의 천상과 인간과 아수라 등이응당 공양하게 되리니, 마땅히 알라.이 곳은 탑이 됨이라. 모두가 공경히예배하고 돌면서 여러 가지 꽃과 향으로써 그 곳에 흩으리라." 모든 부처님 과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이 이 금강경으로부터 나오고,부처님께서는 큰 마음과 가장 높고 바른 마음을 구하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이 금강경을 설했습니다. 따라서 이 경이 있는 곳은 부처님의 정골(精骨)을 모셔 놓은 사리탑과같은 곳이 될것입니 다. 탑은 예배의 대상이 되는 곳입니다.따라서 모든 하늘 나라의 신들, 인간 세상 사람들, 아수라들이 와서공경합니다.불공의 순서로는 공손히 절을 하고 합장하여 탑 주위를 빙빙 돌면서존경의 뜻을 나타냅니다. 예배의 뜻으로 주위를 돌 때는 오른쪽 옆구리를 예배 대상으로 향하여 세 번 도는 법도가 있습니다.우리 나라의 탑돌이 행사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꽃을 올리고 향을 사룹니다.동서고금을 통해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공양을 올릴 때는 하늘에서도 천우사화(天雨四華)라 하여청(靑), 황(黃), 적(赤), 백(白)의 네가지 꽃과 향을 흩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이 분(分)에서는 『금강경』을 지니는 공덕과 금강경에 대한 예배를 가르칩니다. 경에 대한 집착과 상을 버리지 못하면 안 되지만 이 도리를 가르치는것도 바로 이 금강경 입니다.그러므로 이 금강경은 존중되고 예배의 대상도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