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靑波 作品/追億의 蔚山

변해가는 고향 산천.

靑 波 2005. 8. 2. 10:03
 
 
내고향 蔚山 蓮岩(上蓮岩)은 그 동안 내 인생의 변화만큼이나 많이 변해버렸다.
울산의 공업도시 발전에 따라 대부분의 논과 밭에는 여러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고, 마을 가운데를 가로질러 4차선 높고 큰 교량이 놓이고 산을 깎아 내려. 4차선 도로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 옛날 하루에 겨우 십여 대의 자동차가 다니던 31번 국도에는 피서 철을 맞아 자동차의 꼬리를 물고 밤낮으로 다녀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이 다닌다. 너무도 많이 변해 버린 고향의 모습뿐 만 아니라 다정하기만 했던 고향의 옛사람들의 모습은 하나 둘 사라지고, 농촌에서 도시로 변하면서 인심까지도 너무 많이 바꿔 놓았다.

마을 앞동산 정월보름날 달맞이 불꽃놀이 하던 곳(부엉등)은산 허리가 싹둑 잘려서 정자로 가는 4차선 도로공사를 하는데. 지금은 아스팔트 포장공사를 한창 하고 있는 중이다.
옛 탄광 입구 에 있는 못 위와 산과 산사이의 계곡위로는 높고 커다란 다리도 놓였다. 그 위를 걸어가니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자연도 사람의 힘 앞에서는 사정없이 파괴되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란 걸 보여주고 있다.


 
고향 마을에는 멧돼지 불고기. 오리...샤브샤브. 스카이 라운지. 무슨 가든 등등 음식점이 십여 개로 집단을 이룬지 오래며, 타지의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도시화가 되면서 고향의 인심은 예전에 비해 야박해지고 생활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작년 가을의 모습

내가 어릴 때 살았든 큰형님집,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면 마루에 앉아서 초가집 처마에 떨어지는 낙수 물을 바라보는 걸 무척 좋아했는데,
그러나 오래전에초가에서 기와집으로 바뀌었다가 몇 해 전에는 이층 양옥집으로 바뀌고, 아래층은 세를 얻은 사람이‘가마솥.....’ 음식점을 하고 있어 예전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밖에서 느꼈던 향수를 막상 고향이라고 찾아오면 전혀 찾을 길이 없다

 작년 가을의 모습
정월 보름날 새벽이면 마을의 편안을 기원하는 재를 올리던 집 뒤 '齋堂' 어릴 적 일요일이나 방학 때면 매일아침 청소하고 뛰놀던 성황당은 태풍에 큰 소나무 아래 부분 가지가 꺾여 나가 허전해 보이고, 전에 없던 정자와 운동기구가 새로 생겨났을 뿐, 옛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이제는 고목이 되어버린 벚꽃 나무는 둥지가 썩고 다시 새싹이 자라나 전 같이 높지는 않지만 예전 그 자리를 말없이 지키며 묵묵히 서있다.
추석 명절 사당 뒤쪽 큰 소나무가지에 동아줄을 묶어 그네를 탔든 가지는 보이지 않으나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상징으로 굳건히 서 있다. 아직은 예전 모습이 조금 남아있지만 이 삼년 후가되면 이마져도 자동차 부품단지와 도로 기타 공원 등의 모습으로 바뀐다하니, 고향의 흔적은 자꾸만 사라지는 것이다.
 
 
어머님 입제 일을 맞아 고향을 찾은 김에 마을 위 옥천암(일명:오봉사)을 몇 해 만에 찾아 갔다.
숨차며 힘들게 오르던 산길을 가파르긴 해도 승용차로 절 까지 오르니 옛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골짜기에는 아직도 가재는 있을 것이다.
대웅전 모습도 예전의 작고 초라함을 벗어버리고 웅장(?)한 가람으로 탈바꿈을 했다.
대웅전 확장으로 사라진 대웅전 을 마주하던 기도 처 마루에 앉아서 산새소리와 매미소리를 들으며 독서를 하면서, 여름의 한더위를 피했던 옛 시절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그런데 오십여 년 전 친구(주지 아들)녀석이 방문 닫고 침만 삼키게 하고는 같이 먹자는 한 마디 말도 없이 흰쌀밥을 혼자서 먹던 괘심한 그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법당에는 마침 7월 백중 기도 법회가 스님의 염불소리에 맞춰 한창이다.
오른쪽 처마 끝 아래 구슬같이 맑고 찬 석간수(石間水)인'玉泉'은 그대로였는데 물 한 바가지 시원하게 마시며 덧없이 흘러간 세월을 더듬기나 하듯 동편에 남아있는 예전의 작은 요사 채를 힐끗 들여다보니 스님 한분이 밖을 내다봐 합장하며 인사하고 법당 뒤쪽 삼성각으로 오르니 수리를 하긴 해도 옛 모습 그대로 작게 남아 반기듯 맞아주었다.

내려오면서 사적비를 세워둔 곳에서 비문을 읽어보니 오봉사를 처음으로 개산한 시기는 신라말기였다고 쓰여 있었다.

 

 
 
 
옥천암을 나와 어릴 적 이때쯤이면 거의 매일같이 오르내렸던 길을 천천히 구비 구비 산모퉁이를 돌아 부모님이 모셔진 산소에 도착 했다.
어릴 적 비석 하나 없이 초라하기 그지없던 아버님 산소를 더듬으며 찾아야 했는데...
십 륙 년 전 어머님께서 곁으로 가시면서 옛 모습에서 벗어나 잘 가꾸어 놓아, 아직 벌초를  하지 않았는데도 잡초 하나 없는 잔디가 푸르기만 하다.
그런데 아래쪽 에 미리 조성해둔 형님의 假墓가 서글프게 느껴진다.




나무 아미타불...관세음 보살...흐르는 歲月은 流水와 같다더니 ....
'人生無常 ' 故鄕도 人生도 모두 변해버린 곳 언제 다시 오게 될지...
옥천암 법당 안에 홀로 모셔둔 예전 부처님의 모습은 간데없고 새로운 모습의 삼존불 부처님이 장엄해 계시고, 옛 스님의 모습도 아니로다.
흐르는 세월은 부처님도 막을 수 없고 세상 무엇으로도 잡을 수 없으니 어제만 같이 생각되는 세월이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2005년 8월 2일 청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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