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靑波 作品/追億의 蔚山

義 좋은 형제들

靑 波 2005. 9. 17. 23:55

 


    義 좋은 형제들 어제 저녁 울산 작은집에서 전화가 왔다더니, 아내는 김장 배추 무 양념 등을 자동차 트렁크와 뒷좌석 가득 싣고 왔다. 형님들은 일년 내내 힘들여 농사지은 쌀이며 온갖 농산물 들을 동생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어 멀리서도 고향의 농산물을 항상 먹고 지냈다. 농사지은 곡식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나누어주려는 듯 애쓰는 모습은 참으로 의 좋은 형제들의 행복스런 광경이라 하겠다. 財産 문제로 형제간에 서로 다투는 일들을 주위에서 수없이 보아 오지만, 우리 사 형제는 형 아우 할 것 없이 조그마한 물건 하나 라도 서로 나누어주려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릴 적 둘째 형님은 '義좋은 兄弟' 얘기를 곧잘 했다. '옛 날에 가난하지만 의좋은 두 형제가 가을에 농사를 걷어 들여 놓고, 형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동생은 논이 적으니 일년 양식이 모자랄 것 같아 밤에 몰래 볏섬을 동생 집에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동생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형님은 식구가 많으니 양식 이 모자 랄 것 같아 볏섬을 밤에 몰래 형님 집에 가져다 놓았다 는 얘기다. 몇 년 전 추석 전날 우리 형제들은 큰집에 모여 앉아, 다정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 자 리에서, 둘째형이 하는 말이 "동생들은 부모님 물려준 땅 한 평 못가졌으니, 집 지을 땅을 줄 거니까, 집 지어 우리 한곳에 모여 살자!" ".........." ".........." 갑작스런 이야기에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나이 많아 고향에 모여 사는 것도 좋겠다!" 둘째형은 불쑥 나온 말 이 아니라 전부터 마음먹어 온 듯 했다. 그날 밤은 사 형제 모두 기분이 좋아, 밤중에 차를 몰아 경주를 거쳐 기림사를 지나, 바다를 끼고 亭子를 돌아오는 차안에서 많 은 정담을 나누기 도하고 기분 좋게 노래까지 불러가며 즐겼다. 어릴 적 둘째형이 나무를 팔아서 병아리를 몇 십 마리 사 와서 길렀는데, 병아리가 큰 닭이 되고, 닭은 송아지가 되고, 송아지 가 자라서 어미 소가 되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길렀다. 몇 달 동안 잘 자라든 닭들이 전염병이 돌아 우리 집 닭들도 전 염되어, 처음 한두 마리 죽을 때는 닭고기 싫건 먹게 되었지만, 제대로 내다 팔지도 못하고 모두 죽고 말아 허탈감이란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농사일 안 시키려고 애써 주던 둘째형의 소박하고 진정한 사랑 은 어려웠든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될 때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공납금을 기한이 지나도록 납부를 못해 시험을 칠 수 없다는 말 에 이리 저리 뛰어 간신히 공납금을 구해서 단숨에 교문 앞까지 달려갔던 벅찬 그 기쁨, 멋쩍은 듯 말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든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돌아서 오는 길에 나도 몰래 눈시울이 뜨거웠던... 그때의 느낌이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월급날은 언제나 빈손인 '假拂 人生'을 살아야 했던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 몇 년을 부운 적금을 타서, TV 한대사서 가든 그 즐거움이란 베 풀어 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너무나 좋아하시든 어머님과 형님의 밝은 표정은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다. 兄弟간의 友愛란 항상 理解하고, 眞實한 마음으로 베푸는 속에 더욱 다져진다고 본다. 형제라도 각기 성격과 사고방식이 다르니 서로를 위하고 조금은 손해 보는 마음으로 욕심을 버릴 때, 나누고 싶은 마음이 스스로 우러나게 되어, 의좋은 兄弟愛가 지속된다고 생각한다. 팔을베고 눈을 감으니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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