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임제록 5.지금 여기서 진행중

靑 波 2003. 2. 19. 07:54

 

    5.지금 여기서 진행중 [임제 스님이 법당(法堂)에 올라가 말했다. "붉은 고기 덩이 위에 하나의 자리 없는 참사람이 있어서, 늘 그대들의 면문(面門)으로부터 출입하니, 아직 밝히지 못한 자는 잘 살펴 보아라!" 그때 어떤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자리 없는 참사람입니까?" 임제스님이 선상(禪牀)을 내려와 그를 움켜잡고 말하였다. "말해라, 말해!" 그 스님이 머뭇거리고 있자 임제 스님이 그를 탁 놓아버리고 말했다. "자리없는 참사람이라니 이 무슨 마른똥막대기같은 소리냐?" 그리고 곧 방장(方丈)으로 돌아갔다.] 도(道)는 말이 아니지만, 말을 통하여 드러난다. 그러나 도를 이렇다거나 저렇다고 말을 하면 도는 바로 왜곡되어 버린다. 도는 본래 왜곡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니지만, 사람이 스스로 말에 사로잡히고 생각에 사로잡혀서 도를 놓치고 만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말하고 아무리 여러 가지로 생각하더라도, 실제로 도가 말이나 생각에 따라서 왜곡되거나 잘못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거나 저렇게 말하거나, 이렇게 생각하거나 저렇게 생각하거나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이 도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스스로 말과 생각을 따라가기 때문에 생긴 오해와 착각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스스로 말과 생각을 만들거나 말과 생각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도 아님이 없다. 모든 것이 도 아님이 없지만, 움직임이 없으면 도는 드러나지 않는다. 도는 움직임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다. 보고 듣고 하는 감각적 움직임, 생각하고 인식하는 의식적 움직임, 잡고 걷고 흔들고 하는 육체적 움직임 등을 통하여 도는 드러난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이 움직임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진행중인 움직임이므로 생각이나 말로써 고정될 수는 없다. 무엇을 어떻게 본다거나 듣는다거나 생각한다거나 행동한다고 말하면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살아 있는 움직임 그대로가 아니다. 오히려 움직임은 한 마디 한 마디 말하고 있는 지금의 말 소리에서 살아 있다. 그러므로 온갖 말들이 차별되고 다를지라도 움직임에서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 마찬 가지로 움직임은 지금 한 글자 한 글자 쓰고 있는 여기에서 살아 있다. 그러므로 씌여진 글자가 아무리 다르더라도 움직임은 달라지지 않는다. 달라지지 않는 이것이 바로 도이다. 드러날 때에는 움직임으로 달라지지 않고, 드러나지 않을 때에는 본래 달라짐이 있을 수가 없다. 움직임으로 말하면, 아무리 많이 말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한 마디 말일 뿐이고, 아무리 많이 행동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하나의 행동일 뿐이며, 아무리 많이 글을 쓰더라도 지금 이 순간 한 획을 긋는 것일 뿐이다. 움직임은 어떻게도 규정되거나 머물러 있을 수가없다. 규정하는 이 순간이 움직임이요, 머무는 이 순간이 움직임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리 없는 참사람이란 바로 이렇게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도를 가리킨다. 이것은 머뭄 없느 움직임일 뿐이지, 어떤 식으로든 생각하거나 말하려 하면 벌써 어긋나 있다. 그러므로 머뭄 없는 움직임이라는 말도 이미 어긋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움직임과 하나 되고 道와 하나 될 것인가? 만약 도를 찾고 움직임과 하나 되려 하는 의식적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본래 움직임에서도 도에서도 어긋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