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마음의 양식/般若로가는 길

중국의 선종1. (달마와 혜가)

靑 波 2002. 2. 24. 23:06
 
    初祖 菩提達摩(보리달마) 보리달마는 南印度 향상국 (香象國) 셋 째 왕자이며, 본명은 菩提多羅 (보리다라)이다. 어릴 적부터 매우 총명하여, 당시 中印度 고승 반야다라 (般若多羅)가 이 곳에서 전도하고 있었는데, 국왕이 궁중으로 모시어 大 乘說法을 들었으며, 국보로 전해오는 보배 구슬을 공양을 하기에까지 이 르렀다. 부왕은 총명한 보리다라를 반야다라존자에게 맡겨 불교를 수학하게 하 였고 종내는 출가를 허락받고, 27조인 반야다라 뒤를 이어 28조가 된다. 僧名을 菩提達摩로 하고 설법을 하였는데, 구름같이 제자들이 모여드는 성황을 이루었다. 40여 년을 모신 스승의 유언을 따라, 60여 년이 지난 후 동쪽인 중국 으로 가게된다. 그는 중국에 가기 전에 제자인 불타야사(佛陀耶舍)를 미리 보내 교화에 임했으나, 뜻을 펴지 못하고 불운하게 입적하고 말았다. 당시 중국의 양무제는 많은 절과 탑을 세워주고 이 만에 달하는 승려들 의 뒷바라지를 했으며, 고승들을 불러들여 경전을 간행케 하며 많은 일 을 하였기에 양무제를 佛心天子라고까지 존경을 받고있었다. 궁중으로 초대된 달마에게 무제가 말하기를, "佛事를 이렇게 많이 했는데 그 功德이 얼마나 됩니까?"이에 달마가 "공덕이 전혀 없습니다."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그 것은 人天의 상대적인 因果일뿐이고, 물체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 아서 실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참 공덕이 됩니까 ?" "세상의 법으로는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짐을 상대하여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 "모르는 일입니다." 달마와 양무제가 주고받은 일문일답은 禪의 기본적인 의미를 지니고있다. 달마는 분노한 양무제를 떠나, 위나라 崇山의 少林寺에 9년 동안 면벽좌 선(面壁坐禪=벽을 보고 참선하는 것)만 했다. 이렇게 9년 을 참선하고 있는 중에 2조 慧可를 만나게된다. 이 후 菩提達摩가 中國 禪宗의 初祖가 되었으며, 중국으로 건너온 時期에 는 위효문제10년 說과 양 대통에 이르기까지 근 100년이나 차이가 나지만 대체로 양무제 원년 서기520년 說을 많이 인정하고 있다. 二組 慧可 (2조 혜가) 慧可의 어릴적 이름은 神光이고, 崇山(숭산) 소림사(少林寺) (520년경 新羅 法興王)에서 達摩(달마)를 밤낮으로 섬겼으나, 아무런 가르침도 듣지 못했다. 눈오는 어느날밤, 혜가가 달마의 거처 앞에 꼼짝 않고 서 있으니, 새벽녘 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達摩가 물었다. "무엇을 구하는가?" "가르침을 베푸시어 중생들을 제도해 주십시오." "법을 구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바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이에 慧可는 칼을 뽑아 왼쪽 팔을 잘라 大師 앞에 놓으면서 말했다. "제 마음이 便치 못하오니 大師께서 便하게 해 주십시오." "그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편하게 해주리라." "마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미 너의 마음을 便하게 해주었다." 達摩가 中國에 온지 9년째 되던해, 大師는 印度로 돌아가려 하였다. 弟子(제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때가 되었다. 너희들이 얻은 것을 말해보라." 도부(道副)가 “文字에 執着하지도, 떠나지도 않아야 합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총지(總持)가 “아난이 아축불 (阿?佛)의 國土를 한번 보고는 다시는 보지 못한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育)이 “四大가 空하고 五蘊이 있지 아니하므로 한가지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慧可는 大師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는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옛날 釋迦世尊께서 깨달음의 眞理를 가섭 에게 傳한 후, 점점 내려와 나에게 이르렀다. 이제 그 眞理를 너에게 傳한다.”達磨大師는 慧可에게 능가경 4권을 주었다.<景德傳燈錄 3卷> 발췌 불교 길라잡이 20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