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靑波 作品/追億의 蔚山

효문동 유래 효자 송도선생

靑 波 2015. 9. 18. 12:15


  
    효자 송도선생 정려비 (孝子宋滔先生旌閭碑) 송도(宋滔)는 연안 宋氏로, 조선 초기 울산에 살았던 효자였다. 선생은 울산지역 최초의 生員으로 병든 부모를 10여 년 동안이나 정성껏 간호하였다. 모친이 병이 깊어 물고기회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가난하여 마련할 수가 없어 얼음 판을 두드리며 울었다. 그러자 붕어가 뛰어나왔다고 한다. 또한 제사를 지내려고 제수를 구하니 산의 꿩이 날아들어 왔다고 한다. 1년 사이에 부모가 잇달아 돌아가시자 몸소 흙과 돌을 져다 무덤을 만들고, 유교식 예법에 따라 사당을 세워 신주를 모시고 새벽마다 배알하고, 때에 맞추어 제사지냈다. 당시까지 불교식 장례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송도의 효행은 매우 두드러진 것이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428년(세종10) 효자로 정려되고 표창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등에 기록되어 있다. 효문동(孝門洞)이라는 마을 이름도 그러한 사실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연안 송 씨 족보에는 정려비가 본래 백련암(지금의 효문동)에 있었으나, 1737년(영조 13)에 울산 도호부서쪽 연못 인근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정려비 앞면은'효자성균생원 송도지려(孝子成均生員宋滔之閭)'라 적었으며, 뒷면 에는 송도의 효행을 기록하였다. 정려비 왼쪽의 깨어진 비석은'강희임진(康熙壬辰) 팔월(八月)'이란 구절로 보아, 1712년(숙종 38)에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中區우정 동에 있던 비석과 비각을 2006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 (1998.10.19 지정) 소 재 지 : 울산광역시 중구 북정동 350-1 연암송씨효자문회 출처 : 문화재청 어릴적'효자 송도선생'얘기를 많이 들었다. 기록에 남아있는 과거급제 연암의 책골 (冊谷)에 있는 연못에서 붕어 구했다는 얘기 등 당시는 같은 백연암이였다가 효자 가 나온 마을이라 해서 동네이름을 효문(孝門)이라 분리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조선초기 울산지역 최초 生員(科擧 小科)이자 지극한 孝子인 儒生 宋滔先生, 儒生이 유교식 제사 지내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당시 '승유억불' 정책으로 수 백년 이어 오던 불교식 제사를, 백성들에게 유교식으로 바꾸기 위한, 弘報 효과가 아주 큰 '忠 孝思想'의 본보기로 높이 평가 되었을 것이다. 儒生 송도의 효심이 대단해 칭송할만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할 정도였으니 조정에서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다. 現在 마을이름은 예전같이 쓰지만 蓮岩 孝門을 合해 행정상 孝門洞으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