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마음의 양식/좋은 글

구들 목

靑 波 2023. 2. 3. 01:18

 

                                    구들 목 

                                                                   박남규 시인

검정 이불 껍데기는 광목이었다. 무명 솜이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있었지.
온 식구가 그 이불 하나로 덮었으니 방바닥만큼 넓었다.
차가워지는 겨울이면 이불은 방바닥 온기를 지키느라 낮에도 바닥을 품고 있었다.
아랫 목은 뚜껑 덮인 밥그릇이 온기를 안고 숨어있었다.
오포 소리가 날 즈음, 밥알 거죽에 거뭇한 줄이 있는 보리밥, 그 뚜껑을 열면 반갑다는 듯 주루르 눈물을 흘렸다.

호호 불며 일하던 손이 방바닥을 쓰다듬으며 들어왔고 저녁이면 시린 일곱 식구의 발이 모여 사랑을 키웠다.
부지런히 모아 키운 사랑이 지금도 가끔 씩 이슬로 맺힌다.
차가웁던 날에도 시냇물 소리를 내며 콩나물은 자랐고, 검은 보자기 밑에서 고개 숙인
콩나물의 겸손과 배려를 배웠다.
벌겋게 익은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였다. 구들목 중심에는 책임이 있었고 때론 배려가 따뜻하게 데워졌고 사랑으로 익었다.

동짓달 긴 밤, 고구마 삶아 쭉쭉 찢은 김치로 둘둘 말아 먹으며 정을 배웠다.
하얀 눈 내리는 겨울을 맞고 싶다. 검은 광목 이불 밑에 부챗살 처럼 다리 펴고 방문 창
호지에 난 유리 구멍에 얼핏 얼핏 날리는 눈을 보며 소복이 사랑을 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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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못 살았어도 사랑과 추억이 아롱진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겨울이 되면 장작을 패서 구들 목을 대웠고 쇠죽 쑤고 그 밑불에 고구마 구워먹던 시절 말입니다.
다섯식구, 일곱식구, 열식구가 광목으로 덮힌 이불 한장 아래 발을 포개고 잠이들고 새벽이면 

구들 목 식을까 정지(부엌)에 나가 군불을 집히셨던 어머니의 사랑이 그립습니다.
그 시절를 그리며 '구들 목' 글 올리오니 그 시절 그 추억에 잠겨보세요.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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