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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임제록 20. 본래 일이 없다
靑 波
2003. 3. 15.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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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20. 본래 일이 없다
대장부라면 지금 바야흐로 본래 일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대들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각 생각 치달려 구하며, 제 머리는 버려두고 따로 머리를 찾아서 쉴 줄을 모른다. 예컨데 원돈보살이라고 하더라도 법계에 들어가 몸을 드러내고, 정토(淨土)에서 범(凡)을 싫어하고 성(聖)을 좋아한다면, 이러한 무리는 취하고 버림을 아직 잊지 못했으니 깨끗하니 더럽니 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 것이다. 선종(禪宗)의 견해라면 그렇지 않아서, 바로 지금일 뿐 다시 어떤 시절도 없다. 나의 말은 모두 한 때의 병을 치료하는 약과 같은 방편일 뿐이고, 실법(實法)은 전혀 없다. 만약 이와 같이 볼 수 있다면, 참된 출가여서 매일 만 냥의 황금이라도 쓸 자격이 있다. 법다운[如法] 입장이라면, 어떤 말도 할 수가 없고 어떤 태도도 취할 수가 없다. 법은 어떤 정해진 말이나 모습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법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법은 알고 모르고와도 상관이 없다. 법으로 말하자면 바로 지금 이렇게 명백하지만, 이렇게 명백 하다고 말하면 바로 어긋나 버린다. 그런데 범부의 경우 그 의식의 특징은, 어떤 이름이 있을 경우 그 이름에 해당하는 것을 눈으로 보거 나 귀로 듣거나 코로 맡아 보거나 입으로 맛을 보거나 손으로 만져 보거나 머리 속으로 상상해 보아서 다른 것들과는 차별되게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확인하려는 경향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모든 이름을 다른 이름과 차별되게 받아들이고 그 이름이 가리키는 것을 다른 것들과 차별되게 이해할 뿐이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이렇게 이해하는 이외에 달리 어떻게 받아 들이고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도(道)니 법(法)이니 마음이니 하는 이름이 가리키는 것은 이와 같이 익숙한 습관에 따라 차별되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차별되는 사물로 이해하려 한다면, 아무리 하여도 그 이름을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이해할 수가 없다. 그 까닭을 말하면, 도니 법이니 마음이니 하는 이름이 가리 키는 것은 이름을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되는 이름과 사물이 아직 나누어지지 않아서 둘로 차별되지 않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여러 개의 가지로 나누어지기 이전의 한 개 줄기와 같고, 온갖 그릇으로 만들어지기 이전의 한 덩이 찰흙과 같으며, 온갖 모양의 물결을 만들어내는 물과 같고, 노란 색과 빨간 색을 구분해 보기 이전의 다만 보는 그 것과 같고, 도레미파를 구분해 듣기 이전의 다만 듣는 그것과 같고, 향기와 악취를 구분하기 이전의 다만 맡아 보는 그것과 같고, 단맛과 쓴맛을 구분하기 이전의 다만 맛보는 그것과 같고, 부드러움과 꺼칠꺼칠함을 구분하기 이전의 다만 감촉하는 그 것과 같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구분하기 이전의 다만 생각 하는 그것과 같고,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누어지기 이전의 다만 작용하는 그것과 같고, 그러한 작용은 할 때와 하지 않을 때가 차별이 없으니, 이제 어떻게도 말하거나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도니 법이니 마음이니 하는 이름을 말하고 그 뜻을 헤아리 이전에 이미 도니 법이니 마음이니 하는 바로 그 자리에 있다. 따라서 이름을 말하고 그 뜻을 헤아리면 눈을 가지고 눈을 찾아보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법을 아는 자는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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