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되고 올바른 견해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인가의 도장을 받아서 "나는 선을 알고
도를 안다"라고 말하지 말라. 말재주가 강물처럼 유창하게 흐른다
하더라도 모두 지옥갈 업을 짓는 것이다. 만약 참으로 도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참되고 바른 견해를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참되고 바른 견해에 통달하여 두루 밝게 되어야 비로소 끝마치는
것이다. 참되고 바른 견해는 무엇인가? 그대들은 항상 범(凡)에
들어가고 성(聖)에 들어가며, 더러움에 들어가고 깨끗함에 들어가며,
모든 불국토에 들어가 곳곳에서 성주괴공(成住壞空)한다.
그러나 부처는 세상에 나타나 큰 법바퀴를 굴리고 열반에 들지만,
가고 오는 모양을 보지 못하고 그 생사를 찾아도 찾을 수 없으니,
곧 무생법계(無生法界)에 들어가 곳곳마다 노닐면서 화장(華藏)
세계에 들어가도, 모든 법이 공상(空相)임을 볼 뿐 실법(實法)은
전혀 없는 것이다. 오직 법을 듣는 의지함 없는 도인이 있으니,
이것이 모든 부처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부처는 의지함
없음으로부터 생겨난다. 만약 의지함 없음을 깨닫는다면 부처
또한 얻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참되고 올바른 견해이다.
범부는 아무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는 한 순간도 견디지 못한다.
범부의 의식은 그 무엇인가에 의지함으로써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참 자기는 본래 모양이 없다.
그러나 범부는 모양에 집착하므로 어떤 모양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확인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범부는 항상 어떤 생각에
몰두하거나 느낌을 추구하거나 욕망에 매달리거나 사람에
집착하거나 일거리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범부는 이런 모양들을 의지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해 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그러나
범부가 이런 모양들에 의지하여 확인하는 자신은 본래의 모양
없는 참 자기가 아니기 때문에, 비록 이런 모양들에 의지하여
자신을 확인하고자 하는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긴 하지만 늘
무언가 부족하고 허전한 불만족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마음공부란 본래 모양 없는 참 자기를 확인하는 일이다.
모양 없는 참 자기를 확인하고나면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도
늘 자기 자신으로 편안하게 존재하게 된다.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는데도 조금도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고, 도리어 더욱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므로 참 자기를 확인한 사람은 평소에
어떤 생각에 몰두하여 매여 있지도 않고, 느낌에 구속되어
추구하지도 않고 욕망이나 일거리에 매달리지도 않고 사람에게
집착하지도 않는다.
범부가 모양 없는 참 자기를 확인하려면 모양에 의지하는 바로
그 곳을 잘 살펴야 한다. 범부가 생각이나 느낌이나 욕망이나
일거리나 사람에 의지할 때, 그 의지처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항상 흘러가고 변해간다. 이 때 그 의지처를 붙잡았다
놓았다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라. 의지처가 나를 붙잡았다
놓았다 하는가? 아니면 의지처를 붙잡았다 놓았다 하는 그
무엇이 따로 있는가?
잘 살펴 보면 바로 의지처가 나를 붙잡았다 놓았다 하는 것이
아니라, 붙잡았다 놓았다 하는 그 무엇이 따로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붙잡았다 놓았다 할 줄 아는 이것은 그 모양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음도 금방 알 수가 있다. 모양으로
파악할 수는 없으나 끊임 없이 붙잡았다 놓았다 하고 있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이 명백하다. 무엇에도 의지함이 없고
모든 인연이 여기에 의지하여 나타나는 이 부정할 수 없이
명백한 것이 바로 법(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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