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임제록 22. 지금 법문을 듣는 사람

靑 波 2003. 3. 17. 08:11


  
    지금 법문을 듣는 사람 배우는 사람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이름과 말에 집착하므로, 저 범 (凡)이니 성(聖)이니 하는 이름이 장벽이 되어 도안(道眼)을 가로 막게 됨으로써 분명하지 못한 것이다. 12분교는 모두 도를 드러내는 말일 뿐인데, 배우는 자가 이를 알지 못하고 도를 드러내는 말 위 에서 알음알이를 내니, 이는 모두가 의지하는 짓이라서 인과에 떨어 져 삼계의 생사를 면하지 못한다. 그대가 살고·죽고·가고·머물고·집착하고·벗어남에서 자유롭기 를 바란다면, 바로 지금 법을 듣는 사람을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모양도 없고 뿌리도 없고 머무는 곳도 없이 활발발하게 인연에 응하여서 수만 가지 경계를 펼치지만, 작용하는 곳은 없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찾을수록 더욱 멀어지고 구할수록 더욱 어긋나 니, 이름하여 비밀이라고 한다. 승찬은 "도는 어렵지 않으니 취하고 버리고 헤아리고 선택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하였고, 마조는 "평소의 마음이 그대로 도이니 더럽혀지지만 않으면 된다"고 하였다. 마음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생각과 말이다. 말은 생각을 일으키고 생각은 말은 낳는다. 말을 통하여 생각하고 생각을 통하여 말을 한다. 그러나 말과 생각은 마치 풍경화나 정물화 같이 그 내용이 실재가 아니라 허구이다. 즉 우리는 실재의 겉모습을 그린 허구를 통하여 실재를 알려고 하는 나쁜 버릇을 어릴 때부터 길들여 왔다. 이렇게 길들인 습성 때문에 마음공부가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마음공부는 말과 생각에 의지하여서는 결코 올바른 효과를 맛볼 수 없다. 도리어 말과 생각이야말로 마음공부에 가장 큰 장애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말과 생각에 의지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마음공부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바로 지금 순간을 살아라'하고 말한다. 말과 생각이라 는 그림이 의식 속에서 완성되는 데에는 짧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 그림을 과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그림을 그려내는 손놀림에는 그림이 없듯이, 지금 말하고 생각하는 이 순간에는 말과 생각이 아직 허구의 그림이 아니다. 그림의 살아 있는 지점은 바로 그림을 그려내는 손놀림이듯이, 말과 생각의 살아 있는 지점은 바로 말하고 생각하는 행동이다. 이처럼 마음은 말과 생각이 아닌 행동을 통하여 체험함으로써 확인되는 것이다. 그 행동은 항상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아직 말과 생각으로 파악되고 통제되기 이전에 지금 이렇게 행동하고 있다. 바로 지금! 마음은 생각과 말에 포장되어 가리워지기 이전의 바로 지금 행동에서 숨김 없이 드러나고 있다. 말과 생각이라는 기억되고 고정된 허구(虛構) 위에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순간의 살아 움직임이 바로 마음이다. 지금 이 순간의 움직임 위에서 모든 느낌·관념·욕망·말· 의식 등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지금 이 순간의 움직임이야말로 이 세계와 삼라만상의 근거요 원천이다. 그러므로 오직 이 움직임만이 진실이고, 이 움직임 위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느낌· 관념·욕망·말·의식 등은 허구이다. 이 진실한 움직임을 가리켜 마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일체는 오직 마음이 만들어낼 뿐이다"라는 말이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이 움직임이란 사물의 이동을 염두에 둔 말이 아니다. 이동하여도 이 움직임이고 이동하지 않아도 이 움직임이다. 이동하고 이동하지 않고는 이 움직임 위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허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움직임은 억지로 움직임이라고 말할 뿐, 움직임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옳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