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 진리가 현전하는 보살의 자리(現前地)1
보살의 뛰어난 행을 듣고 나서 기쁨에 넘쳐 꽃비를 내리며
맑은 광명 놓고 보배 구슬 흩어 여래께 공양하며 찬탄하니라
자재천의 왕과 여러 권속들도 환희한 마음으로 공중에 머물러
보배로 구름을 이루어 공양하면서 훌륭한 법문을 찬탄하니라
법의 성품 고요하고 모양이 없어 허공이 분별하지 않는 것처럼
온갖 집착 초월하고 말길 끊어져 진실하고 평등해서 항상 청정하다
모든 법의 성품을 통달한다면 있고 없음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세상을 구제하려고 수행하나니 부처님 입에서 나온 참 불자여라
겉모양에 집착 않고 보시를 하며 모든 악을 끊고 계행 지니고
법에 해가 없으므로 항상 참으며 법의 성품 떠난 줄 알고 정진을 한다
번뇌가 다하여 선정에 들고 성품이 공한 줄 알고 법을 분별해
지혜와 힘을 갖추어 두루 건지고 모든 악을 없애니 보살이라 한다
이 같이 천만 가지 미묘한 음성으로 찬탄하고 묵묵히 부처님을 우러르니
해탈월이 금강장께 말씀하기를 어떤 행상으로 다음 자리에 듭니까.
금강장보살이 해탈월보살에게 말했다.
"불자여, 보살 마하살이 제5지를 원만히 성취하고 나서 제6 現前地에 들어가려면
다음 열 가지 평등한 법을 관찰해야 한다.
모든 법에 모양이 없으므로 평등하고, 자체가 없으므로 평등하고,
생기는 일이 없으므로 평등하고, 이루어짐이 없으므로 평등하고,
본래 청정하므로 평등하고, 戲論이 없으므로 평등하고,
취하고 버림이 없으므로 평등하고, 고요하므로 평등하다.
환상 같고 꿈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고 물 속의 달 같고
거울 속의 영상 같고 아지랑이 같고 化現 같으므로 평등하며,
있고 없음이 둘 아니므로 평등하다.
보살이 이와 같이 모든 법의 自性이 청정함을 관하고 수순하여 어김이 없으면
제6 현전지에 들어가는데, 밝고 이로운 수순인[明利隨順忍]은 얻으나 아직
無生法忍은 얻지 못했다.
이 보살 마하살이 이와 같이 관찰하고 나서 다시 大悲로써 머리를 삼고,
세간의 생멸을 관하고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모두 ’나‘에 집착하기 때문이니
만일 ’나‘에서 벗어나면 날 곳이 없으리라.’
또 이와 같이 생각한다.
‘범부는 지혜가 없어 ’나‘에 집착하고 유와 무를 구한다.
부정한 사유로 망녕된 행동을 일으켜 邪道를 행하므로 죄업이 쌓이고 늘어나
여러 행에 마음의 씨앗을 심는다. 그래서 번뇌가 있고 取함도 있으므로
다시 미래에 나고 늙고 죽음을 가져온다.
이른바 업은 밭이 되고 識은 씨앗이 되는데, 무명이 덮이고 애정의 물이
적셔 주며 我慢이 물을 대주므로 소견이 늘어나 이름과 물질[名色]의 움이 튼다.
이름과 물질이 늘어나 五根이 생기고, 여러 근이 상대하여 觸이 생기고,
촉과 상대하여 받아들임[受]이 생기고, 받아들인 뒤 희구하므로
사랑[愛]이 생긴다. 사랑이 늘어나 취함[取]이 생기고, 취함이 늘어나
有가 생기고, 유가 생기면 여러 갈래 중에 五蘊으로 된 몸을 일으키는 것을
生이라고 한다. 태어나서 변하고 쇠하는 것을 늙음이라 하고,
마침내 없어지는 것을 죽음이라 한다. 늙어서 죽기까지 온갖 熱惱가 생기고,
열뇌로 말미암아 근심 걱정과 슬픔 탄식 등 온갖 괴로움이 쌓인다.
이는 오로지 인연에 의해 쌓이는 것이지 쌓이게 하는 주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와 같이 멸하는 것이지 멸하게 하는 주체는 없다."
보살은 이와 같이 인연으로 생기는 [緣起]모양을 따라서 관한다.
보살 마하살은 또 이와 같이 생각한다.
"제일가는 이치[第一義諦]를 알지 못하므로 무명이라 하고,
지은 業果를 行이라 하고, 행에 의지한 첫마음이 識이고,
식과 함께 나는 四取蘊을 名色이라 한다. 명색이 늘어나 六處가 되고,
根과 경계[境]와 식이 화합한 것을 觸이라 하고, 촉과 함께 생기는 것을
受라 하고, 수에 물드는 것을 愛라 한다. 애가 늘어나는 것을 取라 하고,
취로 일으킨 有漏業을 有라 하고, 업에서 蘊을 일으키는 것을 生이라 한다.
蘊이 성숙함을 늙음이라 하고, 온이 무너짐을 죽음이라 한다.
죽을 때 이별을 탐착하여 가슴이 답답한 것을 걱정이라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하는 것을 탄식이라 한다.
五根에 있으면 괴로움이 되고, 뜻에 있으면 근심이 되고,
근심과 괴로움이 점점 많아지면 시달림이 된다.
이렇게 해서 괴로움이라는 나무가 자라나는데,
사실은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다.
만일 짓는 자가 있다면 짓는 일이 있을 것이고, 짓는 자가 없다면
짓는 일도 없을 것이니, 제일가는 이치에는 모두 찾아볼 수가 없다.
불자여, 無明에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중생에게 관계를 미혹하게 함이요, 둘은 行이 생겨나는 因이다.
행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미래의 과보를 내는 것이요,
둘은 識이 생겨나는 인이다. 식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여러 有를 지속하게 함이요, 둘은 名色이 생겨나는 인이다.
명색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서로 도와서 이루게 함이요,
둘은 六處가 생겨나는 인이다.
육처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저마다 제 경계를 취함이요,
둘은 觸이 생겨나는 인이다.
촉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관계를 접촉함이요,
둘은 받아들임[受]이 생겨나는 인이다.
받아들임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사랑스런 일과 미운 일을
받아들임이요, 둘은 사랑이 생겨나는 인이다.
이 가운데서 무명과 사랑과 취함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번뇌의 길이요,
행과 유가 끊어지지 않는 것은 업의 길이요, 다른 것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고통의 길이다. 앞의 것이니 뒤의 것이니 하는 분별이 사라지면 세 길이 끊어진다.
이 같은 세 길은 "나"와 "내 것"을 떠나 생멸이 있는 것이
마치 묶어 세워둔 갈대와 같다.
불자여, 보살 마하살이 이와 같이 緣起를 觀하여 '나'가 없고 사람이 없고
수명이 없고, 제 성품이 공하고 짓는 이가 없고 받는 이가 없음을 알면,
곧 공한 해탈문[空解脫門]이 앞에 나타난다.
모든 인연이 다 제 성품이 멸함을 관하고 끝까지 해탈하여 조그만 법도
서로 내는 것이 없으면, 곧 모양 없는 해탈문이 앞에 나타난다.
이와 같이 공하고 모양 없는 데 들어가 원하는 것이 없으며, 오로지 大悲가
점점 더하여 부지런히 닦나니, 아직 모자란 菩提分法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
'모든 변화 생멸하는 것이 화합하면 생겨나고, 화합하지 않으면 생기지 못하며,
연이 모이면 생겨나고 연이 모이지 않으면 생기지 못한다.
변화 생멸하는 것이 이처럼 허물이 많은 줄을 알았으니
마땅히 이 화합하는 인연을 끊어야 한다.
그러나 중생들을 성취케 하기 취해 끝까지 여러 행을 멸하지 않으리라.'
보살이 이 현전지에 머물러 다시 깨뜨릴 수 없는 마음과 결정된 마음,
순수하게 선한 마음, 심히 깊은 마음, 물러나지 않는 마음, 쉬지 않는 마음,
넓고 큰 마음, 그지없는 마음, 지혜를 구하는 마음, 방편 지혜와
서로 응하는 마음이 모두 가득 차게 된다.
보살이 이 열 가지 마음으로 부처님의 보리를 따르고 異論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지혜의 자리에 들어가 二乘을 여의고 부처님 지혜에 나아간다.
여러 번뇌의 악마가 방해하지 못하고, 보살의 지혜 광명에 머물며,
空. 無相. 無願의 법 가운데서 잘 닦아 익히며, 방편의 지혜와 서로 응하며,
보리의 부분법을 항상 행하고 버리지 않는다.
보살이 현전지에 머물러 반야 바라밀다행이 늘어나면
제3의 밝고 이로운 수순인[明利順忍]을 얻는다.
이는 모든 법의 실상과 같은 것을 따르고 어기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순금을 毘琉璃로 자주 갈고 닦으면 더욱 밝고 맑아지듯이,
이 자리에 있는 보살의 선근도 그와 같아서 방편과 지혜로 따르고 관찰하므로
더욱 밝고 맑아지고 다시 적멸해져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가 없다.
이 보살은 십바라밀 중 반야 바라밀이 더 많은데, 다른 것을 닦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을 따르고 분수를 따를 뿐이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제6현전지를 간략히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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