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팥죽의 추억
어릴 적엔 동짓날(12월22일)이 유난히도 추웠던 것 같다.
동지는 작은설이라면서 생활이 아무리 어려운 집안에도 팥죽을 쑤어 일 년의 액운을 쫓는다며
집안에 죽을 뿌리는 관습이 전해오고 있었다.
맨 먼저 끓인 죽을 액운 쫓는데 쓸 죽 한 그릇 담아두고는, 큰 그릇에 담아 이웃집에 가져다주면
같은 팥죽인데도 그 집에서도 역시 팥죽을 가져오는 따뜻한 나눔의 정이 있었다.
동지팥죽을 얼마나 많이 끓이는지 옹기 자배기(경상도에서는 사구 또는 버지기라 함) 옹기 물
동이 등 여러 곳에 담아두고 며칠씩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나이 수대로 세알을 골라
먹지만, 거의 매일같이 죽을 먹던 시절이라 결국엔 욕심을 부려 쌀로 만든 새알위주로 두세 그
릇을 먹기 일수였다.
여러 날 밖에 둔 팥죽은 맨 위쪽은 누렁지처럼 굳고, 속은 살짝 얼어있으나, 데워서 먹지 않고
밖에서 덜덜 떨면서 팥죽 속의 새알을 파먹는 맛이 참 좋았다.
시대의 변천으로 지금의 동지는 서양에서 들어온 크리스마스에 밀려, 사찰이나 일부 가정에서
만 팥죽을 끓여 먹으며 한해의 액운을 쫓는 정도로 오래도록 이어오든 전통풍습도 변해버렸다.
동지만 되면 문득 생각나는 朴注平(가명)이란 어릴 적 친구생각이 나는데, 동지가 지난 어느 날
下校길에 마을 친구 다섯이 양지바른 밭둑을 지나다 높은 둑에서 아래쪽 보리밭으로 뛰어내리
는 놀이를 하였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잘 뛰어내렸지만 주평은 혼자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도 뛰어 내릴 수 있다!"
" 너! 다리 다쳤다며....."
"이제 괜찮아 다 나았어. 나도 해보고 싶어..."
옆에서 여럿이 만류하다 고집을 꺾을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조금 낮은 곳에서 뛰어내리라했다.
주평은 좋아라하면서 다소 낮은 밭둑을 골라 뛰어내렸는데, 결국 일어나지를 못하고 아프다고
울기시작 했다. 평소에 그 아이는 별로 똑똑한 편이 아니었는데, 자기도 하고 싶은 생각에 무모
한 행동을 한 것이다.
큰일났다싶어 아이들은 주평을 번갈아가며 엎고 2키로나 되는 집까지 갔지만 어른들은 없고,
어린 여동생만 보였다.
그 아이집도 몹시 가난하여 아버지가 탄광에서 잡일을 하면서 지내는 형편인데, 뒤뜰에는 팥죽
이 여러 항아리에 담겨져 있는 게 보였다.
이튿날 학교에 오지 않은 주평이 걱정이 되어, 집에 찾아갔더니, 병원 가서 깁스를 했다며, 다리
에 온통 붕대를 감고 지팡이를 짚고 우리들을 아주 반가이 맞이했다.
인정 많은 그 애 엄마가 수고했다며 팥죽을 먹고 가라고 우리들에게 주면서, 주평은 얼마 전 감
나무에서 떨어져 다친 게 아직도 완치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주평은 고아원에 가게 되는 불행한일을 겪게 되었는데, 오래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무슨 사연인지 아버지가 죽고, 엄마는 자살을 해 두 동생과 함께 고아원
으로 보내졌으며, 집이 불탄 것도 바로 그 당시 일인 것 같다.
주평은 마음씨가 너무 곱고 인정이 많은 아이였는데,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지난 뒤 들리는 얘기
로는 형제들이 모두 불행하게 되었다는 등 좋지않은 소식뿐이였다. 내가 그 애를 마지막 본 것이
주평이 중학교 다닐 적이였으니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2009년 12월 22일 靑 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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