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靑波 海外 旅行記/조지아 애틀랜타. 워싱턴

다시 그 자리에 (2003)

靑 波 2003. 7. 11. 23:49
    다시 그 자리에 떠나오는 날 집으로 간다는 기쁨의 설렘보다 낯은 이국땅에 딸자식을 고생스레 남겨두고 가는 마음이 더없이 찹찹하고 아팠다. 지나치게 쓸데없는 잔소리들도 '자식이니까' 하는 사랑으로 녹여버리고 '내가 가고 나면 전 보다 한국이 더 그리울 텐데...' 하는 생각과 어린 두 아이들 키우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하는 생각에 미칠 때는 가슴이 답답해 애써 내색을 않으려고 베란다에 나가 그 동안 돌봐 왔던 화분들 의 채소와 꽃들을 둘러보며 마음을 가다듬으며 화재를 돌리 기도했다.

        타운하우스 게이트를 나설 때는 찹찹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게 되며 이제는 다시 못 올 곳인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언제나처럼 아이들만 집에 둘 수 없기에 함께 공항으로 가는 차 속에서 아이가"할아버지 문현동 가요?" "그래 할아버지 집에 간다" "왜요?" 하면서 천진스럽게 묻는 것이다. 부산에서 올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 갈 때도 30키로 씩 되는 수화물 가방 2개와 등산가방하나에도 짐이 무겁게 담겨졌다. 내가 좋아 보여 선물용으로 많이 산 게 무게가 나가는게 향초였다. 그 외에도 벌꿀 등 부피는 적어도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게 대부분 이였는 데, 거기다 둘째가 쨈이니 양념 책 등도 마찬가지였다. 딸애의 지인들 몇 곳에 전할 물건들까지 해서, 나를 왕복 '택배 맨'으로 만들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주차장에서 출국장까지는 육교를 건너 한참을 가야하는 데, '계속 가방 메고 다니시고 비행기 갈아탈 때 짐 옮기셔야 하는데 미리부터 지치면 안 된다'면서 사위는 무거운 가방 3개를 기어이 혼자서 메고 끌고 가는데, 뜨거운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오후에 시험이라는데 그만 가라고 몇 번을 권해도 괜찮다며 기다 리는 두 시간 동안을 공항 대기실 의자에서 시험공부를 하다 출 국장으로 들어가는 걸보고 아이들과 같이 배웅을 하는 것이었다. "장인어른 안녕히 가십시오!" "열심히 잘 살아라!" "할아버지 안녕!" "잘 있어라!"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면서 '남서방 고맙네!'를 맘속으로 몇번이고 되씹으면서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늦어도 열흘 전에는 비행기 표를 예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2주일 전에 돌아갈 날을 정하여 예약을 해 달라고 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애틀랜타공항내 대한항공 전화번호를 알아내 알려줬더니 월요일 오전에 전화로 출발시간만 알아보고는 예약은 안 했다 는거다. 토요일까지는 아직 며칠 남았으니 설마 좌석은 있겠지 했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러다 맘먹은 날 가기 힘들지도 모른다 싶어 전화를 해 봤더니 오전에 있다던 좌석이 없다는 거다. 할 수 없이 가장 가까운 날짜를 물어 3일 뒤 1시 30분에 떠나는 비행기 예약을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 매사를 미리 하는 게 드물고 한껏 미루다 바로 앞에 닥쳐야 뒤늦게 서두르는 일이 많다. 올 때도 그랬다 여권, 비자, 비행기 예약까지 손수 했는데 갈 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집에 가서 할 일도 없는데 좀 더 있다 가시면 안돼요?" 하는 둘째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한 달은 벌써 그렇게 됐나? 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지만, 막상 집에 가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나서 는 하루가 지루하게 느껴졌다. 비행기는 예정 시간을 30분 늦은 오후 2시에 애틀랜타 공항을 출발했다. 돌아가는 코스는 올 때보다 더 북쪽으로 우회해서 가고 있었는데, 인천 공항에는 한시간 이상 지연되어 당초 예정시간을 한시간 반 이상 (15시간 50분 소요) 늦게 도착해 입국장에 들어오니, 7시가 넘었다. 8시 김해행 비행기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다.
              수화물을 찾아 다시 부치고 좌석 표를 배정 받아 탑승 구 대기실 의자 에서 기다리는데,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그런데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결항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승객들은 국제선을 타고 온 사람들이라 짐들이 다들 많았다. 항공사 직원과 한 시간 이상을 실랑이를 하다 하는 수 없이 관광버스를 비싸게 대절하여 비가 오는 가운데 9시 30분에야 부산으로 향했다. 언양 휴게소에 들렸을 때는 다행스럽게 비가 그치고 있었다. 인천 공항에서 전화를 했지만, 다시 전화를 걸어 3시경에 도착할 예정 이라고 알려주었다. 문현로터리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3시20분이였는데 밖은 환하게 밝았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아, 새벽에 깜빡 잠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달리 연락할 방법도 없고 해서 등산 가방은 짊어지고, 양손으로 큰 가방 둘을 끌면서 이슬비를 맞아가며 비 탈길을 오르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한 달반 만에 방안에 들어와 창 밖을 보니 긴 장마동안 정원 손질을 하지 않은 잡초들이 제멋대로 자라 무성하고, 포도와 장미넝쿨은 장대 처럼 바람에 춤을 추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말없이 며칠동안 하나씩 정리를 하고서야 예전모습을 되찾았다. 도착했다는 소식이 없어 걱정을 하다 뒤늦게 비행기 결항 소식을 들었다는 둘째와도 전화 통화를 하여 한 동안 염려했던 일을 웃음으로 끝냈다. 오랫동안 못 봤던 아이 들이 그 동안 너무 많이 크고, 예쁘게 자란 모습 을 보니 마음이 한결 즐겁고 기분이 좋아졌다. 거기다 큰아이는 그 동안에 말이 많이 늘었고 아주 얌전하게 존재 말을 잘하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하나씩 '다시 그 자리에' 돌아가 원래의 모습으로 되어갔다. 2003년 7월 11일 청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