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靑波 海外 旅行記/조지아 애틀랜타. 워싱턴

한인 부부와 대화

靑 波 2003. 6. 20. 11:00
 
    한인 부부와 대화 워싱턴 여행을 하고 돌아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낮에 무료함을 달래려 현관 앞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바로 옆집에 살고있는 부인이 현관 밖에 나왔다 나를 보고는 인사를 건 냈다. "집에만 계시니 많이 심심하시죠?" "녜...안녕하세요?" 중년의 옆집부인은 내가 처음 오는 날도 현관 앞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터 라 그 동안 가벼운 인사만 하고 지나 쳤는데, 오늘은 그 동안 이민 온 한 인들 생활의 궁금한 점 등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눌 기회가 되었다.   지헤집 앞 한국에는 수원에 살았으며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인 8년 전에 캘리포니아 주 LA에 와서 살다 아들이 조지아주에 있는 대학에 다니게 되어 조지아로 와서 살고 있다면서, 미국 와서 무역을 해 돈을 잘 벌기도 했는데 사업실 패로 살던 집도 팔고 이 곳에 와서 건축업을 한다고 했다. 이 곳에 오기 전에 '하우스'(단독주택)에 살았는데 잔디와 나무손질 하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라 면서 잔디는 일 주일에 한번씩은 깎아야 하고 잡초와 벌레에 대한 약을 치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죽으면 황토 흙을 덮어 주는데 그래도 살아나지 않으면 종류가 많아 잔디를 뽑아 종묘사 에 가져 가 같은 종류를 사다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 둥지 밑에는 두꺼운 浮織布를 깔고 위에다 흙을 덮고 솔잎을 두껍게 덮어두어야 잡초가 나지 않는다는 거다. 조지아주의 흙은 황토가 대부분이고, 인건비가 비싸므로 웬만한 것은 손수 해야 되는데 지금은 그런 일 안 하니 오히려 편하다 했다. 평소 정원수나 꽃에 대해 관심이 많은 터라 흥미 있게 들었고 다소의 궁금 증도 풀렸다.   아침의 연못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어른들이야 가고싶죠...아들 때 문에 못 가는 거죠" 하면서 확실한 직업만 있으면 사 계절이 뚜렷한 애틀 랜타가 살기 좋은 곳이라면서 1월에 한번쯤은 눈을 볼 수 있다한다. "이곳 사람들은 뭘 해서 생활하는지 궁금합디다?" 했더니 가볍게 웃으며 거기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처음에 언어 때문에 힘들지 않았나요?" "많이 힘들죠 캘리포니아 살다 애틀랜타 처음와서 미국에도 사투리가 많아 표준어를 써도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았어요" 미국 와서 거의 한 달만에 처음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어 옆집 부인의 친절에 감사를 느꼈다. 이틀 후 저녁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옆집 사람과 마주쳤는데 지금까지는 근성으로 인사 정도 나누고 지나 쳤는데 이날 따라 전에 없이 계속해서 얘 기를 하는 것이었다. "날씨가 더워 힘드시지요?" 땀에 젖은 모습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위로하는 한 마디 건넸더니, "말도 마세요 날씨가 너무 더워 오늘은 일찍 들어왔습니다." 하고는 묻지도 않는 얘기들을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린이 놀이터 한국에서 목수 일을 20년 간 하면서 전국을 다녔는데 부산에도 얼마간 살 았다면서 건달생활을 하는 동안 부인을 만났는데 淑大를 나온 터라 건달인 자기를 부모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LA에서 살 때는 장모를 수년간 모시고 있은 적도 있었고 이제는 제일 좋은 사위로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에 살 때 하도 큰집에 자주 드나드니 부인이 형님이 살고있는 미국으 로 가자고 간곡히 권해서 오게 되었는데, 형님은 이십 몇 년 전부터 미국 와서 잘 살고있다고 했다. 미국 와서 한 때는 이천 도자기를 수입해서 재미를 보기도 했는데,갈수록 수입하는 사람들이 많아 져서 그만 두었다고 한다. 다시 목수 일을 했는데 지금도 LA에 가면 자기에게서 기술을 배운 사람이 많이 있다고 했으며, 미국의 주택은 대부분 1,2층으로 나무를 많이 사용 하여 목수가 하는 일이 많아 돈도 많이 번 적도 있었다며, 2년 전 당뇨병 악화로 인해 현장에서 쓰러져 삼일 동안 혼자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 뒤 얼마동안 아무 일도 못하고 지내는 동안에 집도 팔고 고생했는데, 나이 오십이 되도록 마누라 고생 안 시키려고 그런 어려운 중에도 부인에게 밖 에 나가 돈을 벌게는 않았다는 걸 강조하듯이 말을 했는데 아내 사랑하는 마음이 좋게 들렸다. 얼마 전부터 건강이 회복되어 멕시칸 몇 데리고 주택공사를 한다고 했다. 같은 내용의 얘기를 해도 부인과는 달리 말의 표현이 미화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얘기를 하는데, 다소 과장되기는 해도 성격이 활달하고 단순해 보 이는 남자의 말에는 순수한 인간미와 한국사람 특유의 인정이 있어 보여 좋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예전과는 달리 한인들이 많이 모이는 '뷰포트'에는 사람들을 피해 일부러 안 나간다면서, 은근히 한 때는 한인들이 모이는 곳에서 어깨 힘 주고 다녔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말을 했다.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고 오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얘기를 했다싶어 들어가 라는 인사를 하는데, 부인이 나오면서 인사를 한 뒤 "언제 귀국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보름쯤 남았습니다" "우리 아저씨 시간이 있으면 밖에 모시고 가서 대접이라도 해야 하는데,.." "말씀만 들어도 감사합니다." 하고 해여 졌다. 그로부터 열흘정도 지나 웨곤 차량 뒤에 박스형 츄레라를 달고 와 "한번 보시겠습니까?" 하면서 뒷문을 열고 목수 공구들을 구경시켜주었는데 짐칸 벽으로 온갖 공구들이 걸려있고 바닥에도 전기 톱 같은 큰 기계들이 차안 가득 들어있었다. "조지아에서는 제가 기계 제일 많습니다 약 15만 불 어치 됩니다" 그는 자랑하듯 말하고는 "곧 귀국하신다 면서요, 제가 시간이 있으면 밖에 한번 모시고 나가야 하는 건데..." 활달한 성격의 그는 허풍을 떨어도 소박하고 서민적 인정미가 있는 사람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