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같은 소녀
가로수의 수양버들이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던 이른봄 어느
날 오후 유난히도 피부가 흰 한 소녀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작은 언덕위의 집인데다 옆 빈터 바로 앞이 밭이라서 조금
떨어진 바닷가 모래사장이 보이고 양지바른 그곳에 나가 따스
한 봄볕을 쪼이며 멀리 확 트인 수평선을 바라보기도 하고 잠시
책을 읽기에는 참 좋았다.
그날도 아무런 생각없이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는데,하
얀 원피스를 입은 한소녀가 빈터에 서서 바다쪽을 보고 있었다.
자꾸만 그쪽으로 시선이가며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시선이 마주치면 소녀는 말없이 엷은미소를 지우곤 했다.
얼마를 지났을까 소녀는 말없이 옆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다음날도 오후가 되어 집옆 빈터에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기를 여러날이 지난 어느날 어린애들이 그곳에 서넛이 놀러
와서 고무줄 놀이를 하는데 아이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벙어리는 아니구나! 가까히서 보니 정말 예쁜 소녀는 백설공주가
저렇게 생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녀가 사라진 뒤 호기심에 아이들에게 소녀에 대해 물어보니
"저언니 여고생인데 몸이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다 며칠전에 집에
왔는데 학교에도 안 다니는 것 같아요" 라는 것이다.
아이들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한걸 눈치라도 챘는지 다음날은 내
옆으로 오더니 처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예쁜 얼굴못잖게 맑고 가냘픈 목소리의 소녀말을 듣는 순간 심장
이 멎는것 같은 충격을 참느라 한참을 멍하니 정신을 놓고있었다.
서울에 살았는데 일년전 이곳에와서 엄마와 둘이 살고있다고했다.
그리고 내가 오후만 되면 빈터에 나와 바다를 바라보거나 책을
읽고있는 모습을 창밖으로 보아왔다고 조용조용 얘기를 하였다.
그날 이후 둘은 제법 가까워저서 빈터에 나가면 오래전 일이라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제법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문학소설
이야기를 많이 주고 받은 것 같다.
소녀의 이름은 오래전에 잊었지만 '백합같은 소녀'로 만 기억
하는 데, 소녀의 엄마도 상당한 미인이였다.
백합처럼 희고 청순한 소녀에게 처음으로 이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인지 어쩌다 소녀가 안보이는 날은 왠지 허전하기만 했다.
어느새 봄이가고 여름이 오고 있었는데, 바닷가에 사람들의 모습
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 어느날 옆집 소녀의 집에서 너무도 슬픈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이후 소녀의 모습은 다시는 볼 수없었으며 며칠 뒤 소녀의
엄마가 빈터에서 무엇인가를 태우는 모습이 보였다.
한없이 허전하고 소녀의 해맑은 웃음띤 모습이 떠올라 빈터에
나가지를 않고 창 밖으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그해 여름을
그곳 바닷가에서 보내다 가을이 오기전에 그곳을 떠났다.
팔을베고 눈을 감으니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