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靑波 作品/寺刹.관광.맛집

사찰순례 (영주 부석사.안동봉정사.제비원)

靑 波 2001. 9. 21. 22:54
    성지순례 (浮石.鳳停.燕尾寺) 추석을 열흘정도 앞둔 9월21일 부석사 들어가는 길에는 벌써 누렇게 익은 은행들이 수없이 떨어져 있었다. 이곳 주민들이 떨어진 은행을 줍고 있었 는데 주워보니 지독한 냄새가 났다. 부석사는 범어사보다 2년 앞선 문무왕 16년(서기676년) 2월 의상스님이 창 건하여 우리나라에 화엄(華嚴)을 정식으로 펼쳐 화엄종의 중심도량으로 삼 았다는데, 부석사에는 국보18호인 무량수전과 조사당(국보19호) 외에도 많 은 국보와 보물, 문화재 등이 있다고 했다. 석룡(石龍)은 창건과 관련된 것으로 현재 무량수전 밑에 묻혀 있는데 일제 시대 절을 개수할 때 거대한 석룡의 일부가 발견되었으며 자연적인 용의 비늘 모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일본인이 용의 꼬리를 세부분으로쪼개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선비화는 의상이 열반에 들기 전에 평소 사용하던 지팡이를 꽂아 놓았더니 살아난 것이라 하는데, "이 지팡이에 가지와 잎이 날 것인데 이나무가 말 라 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으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당나라로 유학을 간 의상스님이 登州(등주)해안에 도착하여 어느 불자 집 에 며칠간 머물렀는데, 그 집의 딸인 선묘(善妙)낭자가 스님을 보고 사모 의 마음이 생겨 청혼을 했는데 스님이 감화시켜 보리심을 발하게 하였다. 선묘는 이때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이 불도를 성취하게 도우겠 다."는 원을 세웠고, 의상스님은 종남산 지엄(智嚴)스님을 찾아가 화엄학 을 공부하였다. 수년이 흘러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돌아오는 길에 선묘의 집에 잠시 들러 지난번 베풀어 준 편의에 감사를 표하고 뱃길이 바빠 지체하지 못하고 배 에 올랐다. 선묘낭자는 스님에게 전하려든 법복과 집기 등을 담은 상자를 들고 선창으 로 달려갔으나 배는 이미 떠나가고 있었다. 상자를 멀리 던져 스님께 전하 고는 다시 서원(誓願)을 세워 몸을 바다에 던져 스님이 탄 배를 보호하는 龍이 되어 험한 파도가 일면 배를 잡아 주며 보호하여 무사히 新羅로 돌아 오게 하였다.
            
      그 뒤로도 용으로 변한 선묘는 스님의 뒤를 따라다니며 지켜주었는데, 화 엄을 펼칠 땅을 찾아 영주 봉황산에 이르러 절을 지으려 했다. 그런데 500명 도둑의 무리가 그 땅에 살고 있어 절 짓는 걸 방해를 하자 용은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의 무리를 위협함으로 도둑때 가 신기함에 감화되어 방해를 중단하였다. 도둑들은 순한 일꾼이 되어 절 짓을 도와 사찰을 창건할 수 있었다 하여 절 이름을 부석사로 하였으며, 무량수전 뒤에 지금도 부석이라는 바위가 있다. 동행한 스님이 오래전 이 곳 부석사에서 사미승으로 있었기에 부석사 유래 를 자세하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불교에는 이러한 신통한 얘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동행한 스님의 집전으로 예불도 올리고 경내를 둘러 보며 기념사진촬영도 하였다.
    범어사 불교대학 29기 사찰순례 영주 부석사
      절 살림이 어려워 쌀을 지게에지고 장에 팔러 가면 공양미로 들어온 좋은 쌀이라고 쉽게 팔렸다는 스님의 이야기에는 눈시울이 뜨거워 졌으며 그 곳에서 멀지 않은 소수서원의 선비들이 절에 찾아 와"대사!" "대사..!"하 면서 주지스님을 찾았다는 얘기에는 웃음이 나왔다. 부석사를 내려와 소수서원 넓은 마당 한곳에 자리를 하고 여럿이 둘러앉아 준비해 간 점심공양을 했는데 그 맛이 너무 좋아 두어 공기씩 들었는데 스 님도 기분이 좋으신지"정말 맛있는 공양입니다."면서 한 공기 더 청하기도 하였다. 안동의 봉정사는 역시 의상스님이 서기682년(신라 신문왕 2년)에 창건하여 화엄강당을 짖고 제자들에게 화엄을 전했다고 한다. 영국 에리자베스 여왕이 안동에 왔을 때 가장 한국적인 건축물이 보고 싶 다기에 국보15호인 극락전을 보게 했더니 감탄을 하였다는데, 우리가 갔 을 때는 아쉽게도 수리중이라 가려져있어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극락전은 高麗 중기에 건립하여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 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다.
    안동 봉정사 이행반
      鳳停寺 창건 설화로는 의상스님이 道力으로 종이새(鳳)를 만들어 날렸는 데, 새가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鳳停=새가 앉은)라 했다고 한다. 봉정사에서 멀지 않는 곳에 영남산 燕尾院(제비원)에 마애석불(보물115호) 이 있는데, 암벽에 몸채부분을 선각하고 그 위에 머리부분을 따로 조각하 여 얹은 거대한 불상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름난 석공에게 조각을 하게 하였는데 그의 제자가 조각 솜씨가 스승보다 뛰어나서 샘이 난 스승이 제자가 절벽에 사다리를 딛고 높이 올라서서 열심히 조각을 하고 있는데 사다리를 치워버렸다. 그러자 그 제자는 한 마리의 제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는 전설에 의 해 이곳의 地名을 燕尾院(즉 제비원)이 되었다 고 전해온다.
        이밖에도 임진왜란(1592년 선조 25) 때 명장 李如松 이 재상인 柳成龍과 이 앞을 말을 타고 지나가다 말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마애불에 게 공손히 예불이 올린 뒤에야 지나갔다는 전설도 전해 오고 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도록 긴 旅程을 指導法師로 同行하여 여러 이야기와 說明을 하면서 차 안에서도 지루하지 않게 애써주셨던 日光스님의 勞苦에 眞心으로 感謝를 드립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辛巳年 九月 靑波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