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임제록 14. 텅 빈 것이 진실하다

靑 波 2003. 3. 8. 08:04

    임제록 14. 텅 빈 것이 진실하다 삼세 시방에 부처와 조사가 나타나는 것은 다만 법(法)을 구해서일 뿐이며, 지금 도를 배우는 여러분도 다만 법을 구할 뿐이다. 법을 얻어야 비로소 끝마치게 되고, 법을 얻지 못한다면 여전히 5악도를 윤회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법인가? 법이란 마음법[心法]이다. 마음법은 모양이 없어서 시방세계를 관통하고 눈앞에 드러나 작용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믿음이 부족하여, 이름과 말로써 알아차리고 문자 가운데에서 구하며, 뜻으로 불법(佛法)을 헤아리니, 하늘과 땅 만큼이나 어긋나는 것이다. 마음법은 범(凡)에도 들어갈 수 있고 성(聖)에도 들어갈 수 있으며, 깨끗함에도 들어갈 수 있고 더러움에도 들어갈 수 있으며, 진(眞)에도 들어갈 수 있고 속(俗)에도 들어갈 수 있다. 요컨대 그대가 진속범성(眞俗凡聖)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에 진속범성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지, 진속범성이 이 사람에게 이름 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석가세존이 깨달은 것을 일컬어 법(法)이라 한다. 그러므로 법을 불법(佛法)이라고 한다. 이 불법은 바로 마음이다. 마음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인연따라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사물을 가리켜 마음이라 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사물이 곧 마음이라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지금 이렇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가운데 마음이 드러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마음이 있고 그 밖에 따로 사물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물은 마음 위에서 마음으로 말미암아 드러난다고 해야 한다. 사물은 마음 위에서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사라진다. 그러나 마음은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사물의 변화를 통하여 생겨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마음을 파악할 수가 있다. 변화하는 가운데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다.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이 별개로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식(意識) 속에서는 변화하는 것처럼 나타나지만, 마음에 계합하여 스스로 체험한 상황에서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더욱 진실이고 근원임을 확신하게 된다. 변화하는 것은 모양이 있다. 그 모양이 눈에 보이는 모양이든 귀에 들리는 모양이든 손에 잡히는 모양이든 코에 냄새로 감지되는 모양이든 생각으로 생겨나는 모양이든 의식 속에서 드러나 변화하는 것은 모양[相]이 있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것은 모양이 없다. 모양이 없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 것이다. 즉 모양 있는 것은 무상(無常)하게 변화하는 것이요, 모양 없는 것은 변화에 대하여 말할 수가 없다. 모양은 지각기관(知覺器官)을 통해서든 내면의 느낌을 통해서든 생각을 통해서든 알려진다. 즉 알려지는 것은 모두 모양이 있으며, 모두 무상하게 변화하는 것이다. 매 순간 순간 변화하며 흘러가는 눈앞의 모양이나 느낌이나 생각의 바탕에는 흘러가지 않고 변화하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무엇이 있다. 이것은 마치 비유를 들면 물결이 물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다. 다양한 물결이 쉼 없이 흘러 지나가지만, 물결의 바탕이 되는 물은 늘 그렇게 있을 뿐이다. 늘 그렇게 있지만 물결로 드러나지 않으니 모양으로서 알려지지는 않는다. 마음도 그와 같다. 무상하게 변화하는 모양으로 나타나는 의식의 아래에 그 의식이 나타나는 바탕이 되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은 경계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텅 빈 허공이라고도 하고 실상(實相)은 무상(無相)이라고도 한다. 선 공부란 텅 빈 이 바탕을 체험하고 맛보아서, 텅 빈 이 바탕이 진실한 것이고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무상하고 허망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의심 없는 믿음을 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