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임제록 11. 오직 하나일 뿐

靑 波 2003. 3. 4. 08:02

    임제록 11. 오직 하나일 뿐 마음은 모양이 없어서 온 우주를 관통하니, 눈에서는 본다 하고, 귀에서는 듣는다 하고, 코에서는 냄새 맡는다 하고, 입에서는 말한다 하며, 손에서는 쥔다 하고, 발에서는 걷는다 한다. 본래 한 개의 깨끗하고 밝은 것이 나누어져 18계의 경험세계를 이루므로, 하나의 마음도 이미 없다면 이르는 곳마다 모두 해탈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그대들이 항상 치달려 구하는 마음을 쉬지 못하고 저 옛 사람의 부질없는 인연과 경계를 숭상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나의 견처에서는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를 자르며, 십지보살은 천박한 놈과 같고, 등각보살과 묘각보살도 족쇄찬 놈이며, 아라한과 벽지불은 변소간의 똥과 같고, 깨달음과 열반은 나귀 매는 말뚝과 같다. 어찌하여 이와 같은가? 그대들이 3아승지겁 동안 공(空)에 통달치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장애가 있는 것이다. 만약 참된 도인이라면 결코 이와 같지 않아서, 인연따라 오래된 업을 녹여 없애고 자재하게 옷을 입으며, 가고자 하면 가고 앉고자 하면 앉을 뿐 한 생각이라도 부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다. 왜 그러한가? 옛 사람이 말하기를, [만약 업을 지어서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부처가 바로 삶과 죽음의 큰 조짐이다]라고 하였다. 오직 이 한 개 마음이 있을 뿐, 달리 아무것도 없다. 눈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경계는 이 마음이 나타내는 변화일 뿐, 다른 어떤 것도 없다. 이 한 개 마음은 이름만 있고 정해진 모양이 없으니 마음이라는 이름은 허망한 것이다. 마음에 정해진 모양은 없으나 모든 인연법이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마음이 허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일하게 진실한 실재는 마음 뿐이다. 우리가 무엇을 파악하고 알아차리는 방법은 눈으로 색깔과 모양을 보거나 귀로 소리를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보거나 피부로 감촉하거나 감각과 관념과 욕망을 의식하거나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알아차리는 것들은 전부 서로 서로 구별되는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각각 다른 이름이 붙어 있다. 우리의 경험을 이루는 것은 모두 이러한 이름과 모양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이름과 모양을 가장 실재적이라고 여기고, 이름과 모양을 벗어난 그 무엇을 말하면 그것은 관념적이고 허망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름과 모양이야말로 이름 없고 모양 없는 것의 활동으로 매 순간 순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서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지 못하고 늘 변화의 와중에 있는 유동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바로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이름과 모양의 경계는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유동적인 것으로서, 이렇게 이름과 모양을 만들어내는 활동이 없다면 이름과 모양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이름과 모양은 이런 활동에 의하여 바로 지금 우리 눈 앞에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 활동에는 어떤 고정된 이름이나 모양이 붙을 수가 없다. 이름과 모양으로 구별되지 않으니, 활동만을 본다면 활동은 전체가 하나로서 분리될 수 없다. 오직 실재적인 것은 이 활동 뿐이고, 이 활동에 의하여 나타나고 있는 이름과 모양은 비실재적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물과 물결의 관계와 같다. 물결은 오직 물의 움직임일 뿐이고 달리 어떤 존재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물결을 본다. 물결들은 다양한 모양을 따라 구분되고 이름 붙여진다. 그러나 물결은 물의 움직임일 뿐으로서 허망한 것이다. 실재를 알려면 물결이 아니라 물을 알아야 하듯이, 공부인은 이름과 모양으로 구분되는 경계가 아니라 지금 바로 그러한 경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 움직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