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절실하게 갈망하라
오늘날 불법(佛法)을 배우는 자는 반드시 참되고 올바른 견해
(見解)를 구해야 한다. 만약 참되고 올바른 견해를 얻는다면,
삶과 죽음에 물들지 않고 가고 머무름에 자유로와서, 수승(殊
勝)함을 구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수승함에 도달할 것이다.
도 배우는 이들이여!
옛부터 훌륭한 스님은 모두 사람을 구해내는 길을 가지고 있
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이는 것은 다만 여러분이 남
에게 속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용하고자 하면 바로 사용하고,
또다시 주저하며 의심하지는 말라.
마음공부가 시작되는 시점은 의식(意識)의 구속에서 풀려나는
때이다. 그 이전의 공부는 알음알이로 찾고 느낌에 의존하며
의지로 밀고 나아가는 것으로서 모두 의도적이고 조작적인 유
위행(有爲行)이니, 의식의 일일 뿐 마음의 일은 아니다.
이러한 의식적 행위는 공부라기 보다는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것으로 아직 길을 찾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마음공부의 시작은 길을 찾은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이제 공부라는 노력을 통하여 나아가야 할 길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선 지나야 할 중요한 관문은 길을 찾는 것
이다.
마음공부의 길을 찾는 것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다.
범부들은 의식이라는 꿈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이 꿈이 무
상하고 허망하여 믿을 수 없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여기에서 깨
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도 꿈에서 깨어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깨어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깨어남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하여 깨어난
다는 가르침을 찾는다. 그러나 그러한 가르침을 받는다고 하여
도 그들은 깨어남을 여전히 꿈 속의 일과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한 번도 깨어남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악몽을 꾸는 경험을 돌이켜 보자. 사나운 짐승이 다가오는
꿈이다. 저기에서 무서운 이빨을 보이며 짐승은 다가오는데
다리는 원하는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짐승은 점점 다가오고 두려움은 더욱 더한다.
이때쯤이면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 꿈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하여 얼른 깨어나고 싶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써도 꿈에서
깨어나질 않는다. 이제 짐승은 코앞에 다가와 무서운 입을 쩍
벌린다. 두려움이 극에 달하여 절박한 심정에서 나도 모르게
크게 고함을 지른다. 바로 그 순간 홀연 잠에서 깨어난다.
마음공부에서 길을 찾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현재 의식 속에서 깨어남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하여야 깨어날
수 있다고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그 이해에 따라 어떤 방법을 사
용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식이라는 꿈 속의 일로서 실제
깨어남에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
오직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깨어남을 갈구하는 것만이
의식 속에서 의식이 아닌 깨어남의 체험을 가져다 준다.
깨어난 뒤에 보면 깨어남과 의식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지만,
깨어나기 전에 의식적으로 이해한다면
깨어남이란 의식적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아직 의식 속에 있는 사람은 깨어남에 대하여
어떤 상상도 하지 말고 그저 깨어남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서
막연하게 그러나 절실히 그 깨어남을 갈망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 갈망이 충분히 익어서 때가 되면 어떤 뜻밖의 기회에 문득
깨어남의 체험을 하게 된다. 그때야 그는 이 체험이 전혀 뜻
하지 못한 새로운 것이면서도 너무나 당연하고 편안한 것으로서
자신이 막연히 원해온 바로 그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리하여 의심과 갈망이 사라지고 편안함이 남는 것이다.
그때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의식적 삶도 깨어남과
별개의 것이 아님을 비로소 알고
늘 사용하는 그것을 그대로 사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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