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쉬지 못하는 병
지금 배우는 자가 불법(佛法)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 병이
어디에 있는가? 그 병은 스스로를 믿지 않는 곳에 있다.
그대들이 만약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면, 곧 허둥
지둥 일체의 경계(境界)를 쫓아다니며, 온갖 경계에 끄달려
서 자유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만약 순간 순간 치달려 구하는 마음을 쉴 수
만 있다면, 바로 조사·부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존재의 실상(實相)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남김 없고 왜
곡됨 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지금 이대로가 여여(如如)한 것이고 여법(如法)한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다시 더하거나 덜하거나 고쳐야 하는 것은 없다.
존재의 실상은 모양이 아니므로 완전하냐 불완전하냐 하는
문제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 이대로인 존재의 실상을 바르게 보지 못하는 우리 의식
(意識)의 밝지 못함[無明]이 문제이다.
의식에는 왜 존재의 실상을 보는 밝음이 없는가? 그것은 의식
이 욕망을 따르기 때문이다. 욕망을 따르기 때문에 지금 이대
로를 바로 보지 않고 허망한 망상을 쫓는다.
망상을 쫓으므로 실상에는 밝지가 못한 것이다.
욕망은 지금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므로,
원하는 바를 향하여 반드시 의식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한다.
의식적 조작을 통하여 만들어내는 허상에서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의식적 조작은 과거에 경험한 의식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나 일단 조작한 것은 바로 진부한 것이 되어버리므로
금방 싫증을 낸다. 이처럼 욕망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욕망에 의한 의식적 조작은 멈출 줄을 모른다.
욕망에 지배된 의식은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경계의 노예
노릇을 하며 새로운 주인을 찾아서 끊임 없이 떠도는 가련
한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욕망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떠돌이 신세를 면할 길은 없다.
어떻게 욕망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밖으로만 쫓아가던 발길을 잠시 멈추고 밖으로만 보고 있는
눈길을 잠시 돌려서 자신을 돌이켜 보는 것으로 간단히 욕망
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가 있다.
도대체 문제의 발단은 어디에 있는가?
자신이 본래 불완전하여 불만족스런 것이 문제인가,
자신이 불완전하여 불만족스럽다고 판단하여 자기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밖으로 만족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내는 의식이
문제인가?
스스로를 불완전하고 불만족스럽다고 판단하는 의식이 없다면,
본래 우리에겐 완전함 불완전함도 없으며 만족도 불만족도 없다.
불완전함을 불만스러워 하고 완전함을 동경하여 추구하는 힘
드는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별하여 취하고 버리는 의식의 손아귀만
벗어난다면 다만 쉴 뿐이고 달리 할 일은 없다. 애써 해야 할
일이 없으므로 편안하다. 이 편안한 것이 본래 자기자신이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것이 바로 자기의 본래 존재이다. 우리가 조금만 더 깊이 살펴
보면, 무엇을 추구한다고 하여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외부의 모양 있는 경계 위에서는
온갖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낼 수가 있지만, 우리 자신의 존재
에는 하등의 차이나 변화가 올 수 없다.
그러므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여 자신의 존재에 변화가
온다고 여기는 의식은 모양으로 나타나는 경계를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즉 무상하게 흘러가는 오온·십팔계에 집착하고 의지하여
그것을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이 착각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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