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임제록 9.만 가지를 일으키는 하나

靑 波 2003. 3. 2. 07:59

    9. 만 가지를 일으키는 하나 여러분, 삼계는 안락하지 못한 것이 마치 불타는 집과 같아서, 그대들이 오래 머물 곳이 못된다. 저승사자는 언제든 한 순간에 귀천과 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대들이 조사나 부처와 다름이 없고자 한다면, 다만 밖으로 구하지 말라. 그대들 한 생각 마음 위의 깨끗한 빛은 그대 집 속의 법신불이며, 한 생각 마음 위의 분별 없는 빛은 그대 집 속의 보신불이며, 한 생각 마음 위의 차별 없는 빛은 그대 집 속의 화신불이다. 이 세 가지 몸은 바로 그대들 지금 눈 앞에서 법을 듣는 사람이니, 다만 밖으로 치달려 구하지 않기만 하면 이러한 효용이 있다. 경전과 논서에 의지하는 사람은 세 가지 몸을 지극한 도리로 여기 지만, 나의 견처(見處)에서는 그렇지 않아서, 이 세 가지 몸은 다만 이름일 뿐이요 또 세 가지 옷일 뿐이다. 옛 사람은 말하기를, [불신(佛身)은 뜻에 의지하여 성립하며, 불국토(佛國土)는 바탕에 근거하여 논한다]라고 하였으니, 법성(法性)의 몸과 법성의 땅이 빛과 그림자임을 분명히 알겠다. 여러분, 그대들이 저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노는 사람이 바로 모든 부처가 나오는 본래의 원천임을 안다면, 모든 곳이 그대들이 돌아가 머물 곳이다. 팔만대장경은 그 가치가 어디에 근거하여 발휘될까? 나무판자에 한자 한자 애써 조각한 글자에서 그 가치가 나오는 것일까? 한자 한자 조각하는 장인의 노력에서 그 가치가 나오는 것일까? 그 판자에 잉크를 묻혀 찍은 책에서 그 가치가 나오는 것일까? 그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서 그 가치가 나오는 것일까? 읽고 외우고 이해하고 따라 행하는 곳에 그 가치가 나오는 것일까? 팔만대장경의 가치가 나오는 근거는 여러 가지가 없다. 항상 오직 하나일 뿐이다. 이제 이 하나를 알고자 한다면, 눈을 크게 뜨고 큰 소리로 읽어 보라. 팔-만-대-장-경-. 그래도 모르겠다면 눈을 감았다 다시 떠 보라. 그래도 모르겠다면 손가락을 오무렸다가 펴 보라. 그래도 모르겠다면 읽던 글을 내려 놓고 부엌으로 가 물 한 잔을 마셔라. 그래도 모르겠다면 스스로의 빰을 한 대 치기 바란다. 바로 지금 눈을 떠서 보고, 입을 열어 혀를 움직여 말하고, 손가락을 오무렸다 펴고, 물을 들어 마시고, 빰을 때리는 이 하나 뿐이다. 이 하나가 바로 온갖 종교와 철학과 문학을 만 들어 내기도 하고 살려 내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수많은 부처와 보살과 중생이 나오는 곳이 바로 이 하나이다. 그러나 이 하나는 보이는 모양도 아니고 들리는 소리도 아니고 잡히는 물건도 아니고 생각되는 관념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보고 듣고 붙잡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모두 이것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것 하나를 알면 보고 듣고 붙잡고 생각하고 말함에 막힘 없이 자재하지만, 이것 하나를 알지 못 하면 보고 듣고 붙잡고 생각하고 말함에 스스로 모양과 소리와 물건과 관념과 이름에 가로막히게 된다. 이것은 마치 노끈도 없는데 스스로 묶여서 부자유스럽게 되는 것과 같으니 그야말로 불쌍한 노릇이다. 지금 당장 눈 앞에서 활발하게 움직여 만상(萬象)을 토해내고 삼키는 이 하나에 통하는 것이 좋다. 이 하나에 통한다면 지금 여기서 이대로 즉시 아무런 탈이나 문제가 없을 것이고, 더 이상 아무런 노력도 더하거나 아무 것 도 찾지 않아도 불만족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 탈이 나고 문제가 따라다닐 것이며 항상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지만, 불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