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옛 사람들
실록의 오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어버이날은 며칠 지났지만 고향마을에서
오래 전 고향을 떠난 이들과 他地로 시집간 사람들을 초청해서, 나이 드신
어르신들 모셔놓고 '경노 위안 잔치'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어릴 적 함께 자
랐던 정겨운 고향사람들을 만날 기대감을 잔뜩 안고 고향을 찾았다.
무룡산 끝자락 蓮岩땅, 산기슭에 초가삼간 옹기종기 모여 살며, 여름이면 산
으로 소 먹이러 다니던 신작로엔 옛 모습 찾을 길 없는 4차선 아스팔트 도로
로 변하고 초가, 기와집들도 이삼층 양옥집으로 바뀌어 도시로 변모한 고향이
지만 그 속엔 아직도 그 때 옛 사람들은 남아있다.
경노당 건물 앞 넓은 공터에 천막을 치고 마을 어르신들과 몇 년 또는 많게는
이삼십 년 만에 다시 보게 되는 떠났던 고향의 옛 사람들이 모여앉아 초청한
각설이의 말장난을 들으며 웃고들 있었다.
그리 많이 모인 것 같지는 않았으나 인사를 나누는데,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권하는 대로 옆에 준비해준 뷔페음식으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였다.
많은 고향의 옛 사람들을 만나겠지 하는 기대감은 많지 않은 참석에 조금은 섭
섭한 느낌이 들게 하였다.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 옆에서 일러주지 않으면 모를 사람들도 많았는데, 하
나같이 너무 늙어버린 듯 했다.
무대는 설치되지 않았으나 음악과 민속놀이 패도 초청하여 흥겹게 놀고 있는데,
왠지 예전에 보았던 활기찬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향 마을엔 거의 명창이라 할 정도로 장기 꽹과리 등을 잘 다루고 노래 잘 부
르시던 어르신들이 여러 분 계셨는데, 지금은 거의 떠나고 올해 96되신 한분이
생전에 계신다지만 너무 연로하시어 그 때 옛 가락을 들을 수 는 없었다.
고향 마을엔 팔순이 넘은 어르신은 몇 분 안 계시는데, 그나마 행사장에 나오
신 분도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아,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케 하였다.
행사를 주최하는 마을 동생들이 노래를 한곡 권하는데, 내가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는 '울고 넘는 박달재'인데 하필이면 그 노래를 남녀를 가리지 않
고, 어찌들 많이 부르는 통에, 울며 헤진 부산항을 한곡 불렀다.
해 마다 줄기만하는 고향의 정든 모습들을 오래 도록 건강한 모습 변지 않았으
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09년 5월 고향에서 靑 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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