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서운 記億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어느 여름 저녁 무렵에 이 날은 소를 몰
고 온 아이들이 왠지 많지않았다.
팔 밭골은 탄광 입구에서 부터는 도로를 벗어나 계곡을 따라 재
를 넘는 지름길이 있는 골짜기인데, 팔 밭골 깊숙한 오른쪽은
마을 공동묘지로 가는 길이고, 왼쪽 계곡을 따라가면 재를 넘어
亭子가는 지름길인 삼각지점에 마을 누나 둘과 셋이 있었는데
이날따라 부슬비가 오는데다 안개까지 끼여 조금은 무서운 생각
이 들기도하고 싫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큰길을 두고 하필 깊은 골짜기인 이곳으로 시커먼 옷차
림에 역시 검은 모자를 쓴 인상이 험상궂게 생긴 한 사내가 올
라오더니, "너희들 여기서 뭐 하는데?" 하고 물었다.
"소 먹이려 왔는데요" 대답을 하였더니
"재를 넘는 길이 어느쪽이야?"
"저 쪽! 왼쪽으로 가면 되는데요" 하고 재를 넘는 길인 계곡을
가르쳐 주니까, "잘 모르겠으니 같이 좀 가자!" 하는 게 순간
무서운 생각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였다.
당시 공비(빨찌산)들이 가끔씩 나타난다는 때라 위협을 느끼
고 마을 누나들과 같이 앞장서서 얼마를 걷는데, 수상한 사내
가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두리번 거리
며 살피는지 어린 생각에도 어떻게든지 이곳을 도망가야 겠다
는 생각을 하다 순간 묘안이 떠 올랐다.
배를 만지면서 좁은 길 옆으로 슬슬 비켜서니까, "왜 그래!"
"배탈이나서 배가 아파서요" 하고 꾀를 부렸더니, 잠시 눈치
를 살피고는, "빨리 따라와!" 하고는 나를 비켜 앞장 서 비탈
길을 서둘러 올라가는데, 옷자락 밑으로 총구가 삐어져 나오는
게 보였다.
길옆에 쪼그리고 앉아 용변을 보는 체 하는데, 어찌도 무서운
지 머리가락이 쭈빗 서면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면서 사내는 뒤를 한번 힐끔 돌아보고는 바
삐 사라저갔다.
수상한 사내가 보이지 않는데도 겁이 나서 한참을 일어설 수가
없었는데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야 살금살금 일어나 산
아래로 내려오는데, 금방이라도 뒤에서 목덜미를 낚아챌 것 만
같았다.
산모퉁이 하나를 돌아 와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숨에 뛰어
단숨에 골짜기를 벗어나 논에서 일을 하는 마을 어른들에게 알
리고 나서 집까지 뛰면서 틀림없는 빨치산 (共匪)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큰 소 한 마리 팔면 논을 두어 마지기를 살수 있던 그 당시에는
산기슭 아래 살았으므로 소를 방목하기 좋은 자연 여건이라 집
집마다 소를 길렀는데 지금은 아무도 소를 기르지 않는 듯했다.
그 때는 일이 얼마나 많았으면 열 살도 되지않는 어린아이들도
모두 산과 들에나가 일을 해야만 했는데, 몇년전 형님의 말씀이
'예전에 비하면 요즘 농사일은 십분의 일도 못된다.'
故鄕에 가서 예전에 소를 먹이러 다니든 먼지나든 자갈길이 넓
은 아스팔트길로 바뀐곳을 차를 몰고 가면서 주말이면 길게 늘어
선 자동차들을 보면 오래 전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일들이 감회
가 새롭게 느껴진다.
어린 나이에 그 토록 놀라고 무서웠던 기억의 그 곳에는 4차선
도로공사가 몇 년째 이루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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