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사진(映畵)과 辯士
우리 마을의 울산탄광은 6.25 이전 까지만 해도 상당히 활발하게 유연탄인
갈탄을 채광하고 있었는데, 가끔은 여러 가지 행사를 하였다.
내가 영화를 처음 본 것도 어느날 밤에 어른들을 따라서 탄광 광장에서
인데, 당시의 흑백 무성(無聲)영화를 활동사진이라 했다.
광장 앞뜰에 흰 광목 천을 치고 광장 뒤쪽에 영사기를 차려 놓았는데,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모여 그리 넓지 않는 광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잡음이 심한 스피커를 통해 辯士의 멋들어진
대사를 들으며, 쥐 죽은 듯 조용하게 활동사진을 보았다.
너무 어릴 적 일이라 자세히는 기억할 수 없지만, 영화의 대략 줄거리는
어두운 밤에 시녀가 등불을 들고 흰 소복을 입고 머리까지 흰 장삼을 쓴 여인이 뒤를 따르고....
어떤 귀공자의 사랑방을 찾아가 얘기를 나누며 놀다, 닭우는소리가 들리면 여인은 어디론가 어둠속으로 사라지는데, 그러던 어느날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게 되고, 귀공자는 아쉬움이 남은 듯 그 여인의 뒤를 몰래 따라가는데 어느 페가인 큰 집 별채로 들어간다.
문틈으로 여인의 행동을 살피는데, 소복한 여인이 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하고 도망가려는데, 뒤에서 옷자락을 잡아 당기니 겁
먹은 도령은 벌벌떨며 발버둥을친다. 실은 문틈에 옷자락이 걸린줄도
모르고 무서워 소릴 지르고....
화면이 비치는 광목 천이 바람에 흔들리는 통에 화면이 물결치듯 흔들리니
한 층 더 공포분위기를 느끼게 되고, 비가 오듯이 화면이 번쩍 번쩍 거리고,
변사의 목소리는 애절하기 그지없으니, 어린 마음에 몹시 무서웠는데,
구경하든 사람들도 소리를 지르며 무서워 한 기억이난다.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는 자~알 자~알 하고 스피커에서 찌지 직 소리가 들리
는 듯 하더니 난데없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필름 타는 모습이 보이
면서 필름이 끊겨 버리면 한 동안 전기 불이 환하게 켜지고, 구경꾼들은
웅성웅성 했던 그 無聲映畵는 그 후 이십 년도 더 지난 뒤, 어느 책을 보니
1920대 후반에 만들어졌다는“ 牧丹○○”라는 우리나라 초창기의 영화라는
걸 알았다.
그 후 6.25 전쟁, 휴전이 되는동안 탄광은 강원도의 무연탄 생산으로 폐쇄 되었지만, 無聲영화 수 없이 쏟아져나와 학교 운동장이나, 물이 마른 하천에 천막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얼마의 관람료를 받으며, 가끔 볼 수가 있었다.
보물선 같은 외국영화라 던지 신라의 달밤 등 수 많은 전쟁영화가 나오는가
하면, 여름 밀짚모자에는 영화 필름을 반으로 쪼개 두르고 팔았다.
문화 시설 이라고는 全無한 시골에서는 순회하면서, 야외에서 보여주던 활동사진과 멋들어진 변사의 대사는 화재꺼리가 되었으며, 아주 인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