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여인
따스한 봄날 천불사 노천 부처님 주위에 빨간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사진 촬영하느라 감각. 망원렌즈를 부지런히 바꿔 가며
촬영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뒤쪽에서 어떤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진사 아저씨! 사진 좀 찍어 주세요?"
뒤를 돌아보니 법당 뜰아래에서 어느 한 여인이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난 사진사 아닌데 요" 하고 돌아서는데,
"사진 값 드리면 안 되겠어요?" 하면서 밉지 않는 얼굴로 미소를 띠
우며 가까이 오는데, 보아하니 곱상한 얼굴에 작은 듯한 키에 남자
구두를 싣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는 여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람하고 같이 왔는데, 오해받을 건데요"
"알고 있어요, 부인은 법당에서 법문 듣고 있잖아요" "허허......!"
사진 몇 장 찍어 준다고 설마 오해하겠어요?”
더 이상 거절을 할 수 없어 여인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가까히서 보니 꽤 잘생긴 얼굴에 남자처럼 짧은 머리며 얼굴에 화장
은 아예 하지 않은 모습이 싱싱하고 풋풋한 과일처럼 생기가 있었다.
사진 몇 장 찍고 나서, 여인은 자기 집 주소를 알려주면서 사진을
부쳐 달라기에 "아주머니 그르지 말고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연락을
할 게요" "아! 그게 좋겠네 요" 하면서 집 전화번호를 일러주었다.
점심 공양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여인은 아내와 나를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아내에게 그 여인 얘기를 했더니,
"당신 기분 좋았겠네" 짧게 한 마디 하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안 가려는 사람을 "절에 장미꽃이 만발했던데, 당신은 사진이나 찍
어 세요" 하며 졸라서 함께 갔다가, 그 여인을 만났든 것이다.
며칠 후 사진을 찾아와 보니 신통찮으면 그냥 버리려 했는데, 사진
이 괜찮아서 전화 연락을 했다.
반가워하며 기꺼이 우리 동네 다방으로 약속한 시간에 나왔다.
처음 절에서 볼 때보다 는 달리 머리도 미장원에 갔다 온 듯 했고
얼굴엔 엷게 화장도 한 모습이 사뭇 달라진 모습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사진을 받아 본 여인은 만족한 듯 퍽 기뻐하면서,
"사진 찍는 실력 대단한 데요!" 듣기 좋게 칭찬부터 하면서,
"사진 값 얼마나 드리면 됩니까?"
"내 사진 비삽니다, 돈은 그만두고 커피나 사 세요" 여인은 연방
기분이 좋은 듯 "그럼 제가 점심 식사 대접까지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저는 여자라도 남자처럼 하고 다녀요 신발도 남자게 편해요"
"아주머니는 말씨까지 남자 같은 데요" 생김새는 자그마한 체격에
여자답게 예쁘게 생겼는데, 차림새와 말투는 남자 같고, 얘기도
시원시원했다.
이날은 시간도 있고 해서 다방을 나와, 식사하는 동안에 많은 얘기
들을 했는데 절에서 처음보고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남인데도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든 사이처럼 온갖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하였다.
춘천에 살았는데, 학창시절부터 말광랑이로 행동하고 다녔고, 女軍
將校시절 휴가 오는 열차 안에서, 사병이 장교에게 인사 안 한다고
기합을 주었든 게 인연이 되어, 사귀게 되어 결혼한 것이 지금의 남
편이며, 몇 년 전부터는 화물 운수회사를 차려 자신이 운영하고 있다
고 했다.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은 절에 잘 다니는데, 언젠가는 해인사
절에 갔더니, 어느 젊은 스님이 자기에게 절 밖에서 만나 달라 해서,
절 아래 있는 다방에서 만났는데, 승복을 벗고 일반인처럼 차려입은
젊은 스님은 자기에게 있는 돈을 맡아서 관리를 해 달라면서, 한 달
에 한두 번 자기와 만나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면서,
"스님들 중에도 이상한 사람이 다 있어요"
하면서 그 이후로는 해인사 절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한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 찍는 게 좋아서, 카메라 가방 하나 달
랑 메고는 며칠씩 훌쩍 떠나, 사진을 찍고 다니다 보면 간혹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이있어 그로 인해 알게 된 여인들과 재미
있는 일들이 더러 생기기도 했는데, 상대방에서 접근을 해 오는 경우
대체로 깊은 호감을 갖지 못하고 말았든 것 같다.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나 였지만, 어쩐지 선뜻 호감이 느낄 수가 없었으니..
내가 먼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한 처지였다면, 상황은 달라 졌을 텐데,
묻지도 않는 남녀 사이의 여러 얘기들을 스스로 하는 여인의 감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 날 이후 두 번 다시 만 난적이 없었으니,
남녀의 사이란 말로써는 표현하기 어려운 묘 한 데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보아도 괜찮은 사람이다 싶으면서도, 다시 연락해 달라는 그
여인을 다시 찾지 않은 이유를 알듯 하면서도 확실히 알 수는 없는 일로
남게 되었다.
사진과 얽힌 여인은 그 전에도, 홍도에 갔을 때 있었는데, 그때 역시
지금처럼 헤여 지고 말았다.
나 자신이 너무 순진한 탓인가? 그저 말동무가 되는 친구로 지내면 될
텐데, 헤여 진 뒤 섭섭해 하고 막상 마주 대하면 그저 덤덤하고, 탐탁
하지 않게 여겨지니 더 이상의 만남이 이어지기 어려운게 당연하다...
청파의 팔을베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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