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아함경 2. 正覺

靑 波 2002. 10. 9. 13:10
    2.정각(正覺) 이 긴 수행 기간은 내 관점에서 본다면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출가의 단계이다. 오래 된 경전은 자주 "집에서 나와 집없는 사문 이 되었다."는 말을 쓰고 있다. 그것은 가정 생활을 버리는 것과 함께 가사를 걸치고 사문으로서 살아감을 뜻하는바, 그 속에는 적어도 두 가지 포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 하나는 풍족한 가정 생활의 포기요, 또 하나는 고귀한 사회 생활의 포 기이다. 고타마의 가정 생활은 부유하고 행복했으며, 그 사회적인 신분은 크샤트리아에 속해 있었다. 만약 마음만 있었다면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모든 것을 자진하여 버렸다는 것은 쉽지 않은 포기였음이 분명하 다. 유럽의 불교 학자가 고타마의 출가를 번역하면서, 자주 크나큰 포기(the great Renunciation)라는 말을 쓴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크나큰 포기'에 의해서 그는 우선 가정과 카스트 (caste ;사회 계급)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둘째 단계는 여러 도인들을 찾아 공부한 기간이다. 오래 된 경전에는 아라라 카라마(Alara-Kalama)와 웃다카 라마푸타(Uddaka-Ramaputta)가 그의 스승이었다고 나와 있다. 그들은 두 사람 다 이른바 육사 외도(六 師外道 ; 붓다 당시의 여섯 명의 사상가. 그것이 정도(正道)가 아니라 하 여 불교 쪽에서 이렇게 부르는 것.)에는 들어 있지 않으나, 그들 또한 그 당시 마가다 국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새 사상가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낡은 사상의 계보에 속하는 바라문(바라문을 가르킴이니, 인도 고대의 정통적인 종교. 절대자인 브라만과 자아인 아트만의 합치를 주장했 다.)을 찾았다는 기록은 전혀 안 보이므로, 그가 어디까지나 새로운 사상 의 조류 속에서 호흡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혼자의 힘으로 길을 개척해 가고자 결심하기에 이르렀 다. 그것 또한 보리수 밑의 정각에 이르는 필연의 과정이었다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정각을 향한 길이 곧바로 열린 것은 아니었다.그의 앞 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고개가 가로놓여 있었다. 스승의 곁을 떠난 고타 마는 꽤 오랫동안 고행에 의해 목적을 달성해 보려 애썼다. 그는 여러 가지 고행을 했다. 또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것을 행했다. 그러나 뛰어난 경지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손발은 겨 릅처럼 바짝 야위어 갔다. 뱃가죽은 등에 닿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깨 달음에 이르는 데는 아마 다른 길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 렀다. 고행이 정각에 이르는 정당한 방법일 수 없음을 간파(看破)했던 것 이다. 그는 드디어 고행을 버리고 우유로 쑨 죽을 먹고 또 밥도 먹었다. 그것은 매우 중대한 단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행에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 고 믿었던 고대 사회에서 그 불합리성을 확인하고 그로부터 탈출한다는 것 은 오늘의 우리가 상상조차 못할 만큼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껏 그에 대해 찬탄해 마지않던 사람들도 그가 고행을 중지한 것을 보 고는, 타락했느니 사치해졌느니 하며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 왔다.그런 속 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체력을 회복하여 마가다 국의 여기 저기를 순회한 다음, 우루베라의 네란자라 강기슭에 이르러 그 보리수 밑에 풀을 깔고 앉았다. 그로부터 일 주일 후 그는 그 자리에서 크나큰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후세의 불교인들은 그가 깔았던 풀을'길상초(吉祥草)'라 부르고, 그 앉았 던 자리를 '금강좌(金剛座)'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그가 여기에 앉은 다음부터 대각을 성취하기까지의 기간은 그리 길지는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 하면 미망 즉 가려져 있던 것들은 이미 차례 차례로 제거되고 말아, 그 자리에 앉은 사캬 족의 아들 고타마 의 눈을 가리는 것이라고는 이제는 아무것도 없었던 까닭이다. 오래 된 경전은 흔히 이 사실을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겨"라고 표현하고 있거니와, 이리하여 가려진 것들이 제거됨으로써 활짝 열린 눈앞에 존재 가 그 진상을 드러내 보일 준비는 이미 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보리수 밑에서의 정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알고자 하 는 사람은 오직 저 결정적인 순간에만 넋을 빼앗겨서는 안 되리라. 오히려 눈을 돌려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어떠한 장애물이 그의 눈으로부터 제거되었는지를 고요히 생각해야 할 줄로 아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