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아함경3. 보리수 밑에서 생각. 2

靑 波 2002. 10. 14. 23:32

 

    3.보리수 밑에서 생각.2 그 내증을 가만히 맛보고 고요한 즐거움에 잠기면서도 그는 갑자기 이상한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만약 자기와 같은 사상을 지니고 있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어딘가에 있다면, 그에게 찾아가서 함께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아무 데도 없는 것을 어쩌랴.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의지할 것이라고는 스스로 깨달은 법(진리)밖에는 없지 않은가! 그것을 객관적으로 표현하여 누군가의 이해를 구하는 것, 그것만이 고타마 에게 남은 단 하나의 길이었다. 전도의 문제, 즉 설법의 문제가 떠오르게 되었 던 것이다. 여기에서 이 장(章)의 첫머리에서 소개한 2절의 운문을 되새겨 주시기 바 란다. 거기에는 고생 끝에 겨우 얻은 이것을 어이 또 남들에게 설해야 되 랴. 라는 구절이 있었다. 붓다는 설법의 문제를 앞에 놓고 우선 주저했음 이 명백하다. 이것 또한 후세의 불교인들의 상식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지리라. 왜냐 하면 그들은 붓다가 중생 제도를 위해서 출가했다 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기와 결과를 엇바꾸고 있음이 분명하다. 붓다가 출가를 감행했을 때, 그 어깨에 걸머지고 있던 것은 분명히 자기의 문제, 자기의 고민이었다. 최근의 정밀한 연구로 밝혀진 것은 "많은 사람 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라는 문구가, 바꾸어 말하면 중생 제도를 목적 으로 표방하는 말이 비로소 경전에 나타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라는 점 이다. 최초의 설법이 베풀어지고 제자들도 이미 60명으로 불어나 전도를 위해 그 들을 처음으로 떠나 보낼 때, 붓다의 말씀 속에 이 구절이 비로소 나타났 던 것이다 . 이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출가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드 디어 크나큰 해탈에 이르렀을 때에도 아직 이 문제는 상정되어 있지 않았 다는 것이 된다. 그것이 갑자기 설법의 형태로서 문제가 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니, 붓다의 마음이 먼저 부정 쪽으로 기울어졌던 것도 당연했는지 모 른다. 그리고 이것이 그 게의 뜻이기도 하다. 같은 경에서는 또 그때 세존의 마 음은 침묵으로 기울고 설법으로는 기울지 않았다. 고도 말하고 있다. 그 주저함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앞에든 운문의 후반 부분의 내용이 다. 만약 법을 설한다 해도 사람들이 과연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이 걱정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것은 붓다가 깨달은 사 상의 내용이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세상의 상식을 뒤엎은 그것, 심심(深甚)미묘 정세하니 어찌 알리오. 이 렇게 어려운데도 세상 사람들은 탐욕과 분노에 사로잡히고 격정과 무명 에 덮여 있다. 그렇다면 내가 기껏 설해 보았자 나만 지치고 말리라, 그것이 붓다의 심정이었던 것이다. 설법이 중요한 문제가 되면서도 이렇 게 붓다의 마음은 쉽사리 그쪽으로는 기울지 않았다. 그것을 뒤집어 마침내 설법의 결심으로까지 이끌고 간 소식을 이 경은 신화적인 수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른바 범천 권청의 설화가 그것이다. 범천(梵天)이란 만유의 근원이라는 범(梵), 즉 브라만(Brahman)을 신격화 한 인도의 신이다. 그것이 불교에도 섞여 들어와서 교법 수호의 신으로서 자주 경전에도 나타나거니와, 지금도 붓다가 설법을 주저하고 있음을 안 범천은 그래서는 세상이 망하리라고 걱정한 나머지 급히 붓다 앞에 나타 나서 권해 마지않았다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법을 설하시옵소서. 이 세상에는 눈이 티끌로 가려 짐이 적은 사람도 있사 옵는바, 그들도 법을 듣지 못한다면 망하지 않겠 나이까? 그들은 법을 듣는다면 필시 깨달음에 이르오리다." 그래서 붓다는 다시 한 번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그때 붓다의 눈에 비친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경전은 연꽃에 비유하여 아름답게 서술 하고 있다. 못 속에는 온갖 빛깔의 연꽃이 핀다. 어떤 것은 아직도 흙탕 물 속에 잠겨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수면 위에 고개를 들고 아름답게 피어 있다. 진흙 속에서 나왔으면서도 그것에 조금도 물들지 않 은채 아주 맑은 꽃을 피운다. 그것과 같이 세상 사람들도 가지각색임을 관 찰한 붓다는 마침내 설법을 결심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 이제 감로(甘露)의 문을 여나니 귀 있는 이는 들어라, 낡은 믿음 버리 고.붓다가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은 불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만일 그 사실이 없다면 오늘의 불교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의 내용이 설법의 형식을 통해 객관화되었다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이다. 왜냐 하면 이것 없이는 불교가 성립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런 설법의 결심도 그 보리수 밑에서 차차 익어 갔음을 보았거니 와, 붓다는 여전히 그 밑에 앉아서 움직이려고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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