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아함경 4.첫 설법(初轉法輪) 2

靑 波 2002. 10. 18. 23:35
    4. 첫 설법(初轉法輪) 2 얼마 가지 않아 붓다는 한 사문을 만났다. 경전은 그의 이름을 사명외도 (邪命外道 ; 고사라가 시작한 종교. 모든 것은 운명이요, 인간의 의지력은 아무 작용도 하지 못한다고 보았다.)인 우파카(Upaka)라 전하거니와, 그는 붓다의 얼굴을 보자 말을 걸어 왔다. "존자여, 당신의 얼굴은 참으로 광명에 넘쳐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에 의 해 출가했고, 누구를 스승으로 모셔 가르침을 받았습니까?" 그것은 붓다가 그 깨달은 바를 이야기할 예기치 않은 기회가 되었다. 경전은 여기에서도 붓다의 대답을 운문으로 기록해 놓았다. 나는 일체에 뛰어나고 일체를 아는 사람. 무엇에도 더럽혀짐 없는 사람. 모든 것 사리(捨離)하여 애욕을 끊고 해탈한 사람. 스스로 체득했거니 누 구를 가리켜 스승이라 하랴. 나에게는 스승 없고, 같은 이 없으며 이 세상 에 비길 이 없도다. 나는 곧 성자요 최고의 스승, 나 홀로 정각(正覺) 이루어 고요 롭도다. 이제 법을 설하려 카시(迦尸)로 가거니 어둠의 세상에 감로(甘露)의 북을 울리리라. 아직 젊은 붓다가 자신 만만하게 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소리를 들은 우파카는 아연 실색하고 말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라는 아이러니한 말을 남긴 채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가 버렸다고 한다. 모처럼의 첫 기회가 헛되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붓다는 다시 여행을 계속하여 마침내 미가다야(鹿野苑)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곳도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의 비구들은 붓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환영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문헌[율장대품] 은 그때 그들이 한 말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보라! 저기에 나타난 이는 고타마이다. 그는 고행을 버리고 사치에 떨 어진 사람이다. 인사도 하지말고, 일어나 마중도 하지말고, 의발(衣鉢) 도 받아 주지 말아야 하리라. 그러나 자리만은 펴 주자. 앉고 싶거든 앉 게는 해야지." 막상 붓다가 다가오자 그들은 일어나서 맞아 주었다. 의발도 받아 주고 발을 씻을 물도 떠다 주었다. 역시 친구로서의 우정이 남아 있었던 것이 리라. 그러나 붓다가 그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려 하자 그들은 완고히 듣 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앞서 붓다가 고행을 포기한 것을 보고, 그가 타락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훌륭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으 리라고는 도저히 믿지 못했던 것이다. 옥신각신한 끝 에 붓다가 말했다. "그럼, 너희는 예전에 내 안색이 이렇게나 광명에 넘쳐 있는 것을 본 적 이 있는가?" 안에 훌륭한 정신을 지닌 사람은 그 안색도 빛나게 된다. 고대 인도사람들은 그것을 믿었다는 많은 문헌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다섯 명의 비구들도 고타마의 안색이 예사가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러면 어디 그가 말하는 것을 들어나 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하여 경전이 '여래소설(如來所說)'이라고 부르는 최초의 설법이 베풀 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붓다가 45년에 걸쳐 행했던 설법의 수효는 몇 천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설법은 모두 '대기 설법(對機說法)'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기근(機根 ; 진리를 받아들이는 중생의 소질. '근기'라고도함.) 에 따라, 또 문제에 따라 거기에 어울리는 내용이 설해진 까닭이다. 그런 중에서 오직 한 번만 예외가 있었다. 그 예외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설법 이다. 여기서는 먼저 설하고자 하는 가르침의 내용이 마련된 다음에 "이것을 빨리 깨닫는 이는 누구냐?" 고 해서 설법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런 뜻에서 볼 때 붓다가 그 깨달은 내용을 가지고 자진해서 설한 것은 이 첫 설법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팔리어 경전의 편찬자가 첫 설법의 내 용을 전하는 경전에 '여래소설'이라 이름을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믿 어진다. 또 한역의 [아함경]에서는 이 경을 '전법륜(轉法輪 ; 佛法의 '수 레바퀴를 굴린다는 것이니, 곧 붓다의 설법)이라고 불렀거니와, 그것도 같은 생각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붓다는 많은 것을 설하셨으나, 이야말로 여래가 설하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 경밖에는 없다고 본 것이리라. 그 정도로 이 설법이 갖는 뜻은 큰 것임이 확실하다. 그 설법 그것을 후세 사람들은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는 엄숙한 표현 으로 부른다. 이제 미다가야에서 다섯 명의 비구를 상대로 하여 설해지 게 되었다. 그 앞 부분의 내용이 이 장(章)의 첫머리에 인용한 일절 이 었던 것이다. 그것은 먼저 두 극단적인 입장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되었다. 그 하나는 쾌락주의의 입장, 즉 온갖 욕망에 깊이 집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또 하나는 금욕주의의 입장, 스스로 고행을 일삼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돌이켜 본다면 그것들은 모두 붓다 자신이 몸소 체험한 생활 방식임에 틀림없다. 일찍이 가정에 계셨을 때 온갖 욕망에 묻혀 있던 이가 바로 그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것을 붓다는 출가 즉 '크나큰 포기'의 감행으 로 넘어설 수 있었다. 허나 출가한 그는 다시 고행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여기서도 고행에 열중하던 붓다는 차츰 불합리성을 간파할 수가 있었다. 결국 두 극단적인 입장에 대한 비판은 바로 그 자신의 과거에 대한 반성 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제 새로이 택한 입장으로서의 중도(中道)와 그 위에서 전개된 사상 체계로서의 네 가지 진리(四諦)가 계속해서 설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