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아함경 5. 四聖諦

靑 波 2002. 10. 20. 23:41
    5. 네 가지 진리 (四聖諦) "여러분이여, 모든 동물의 발자취는 다 코끼리의 발자취 속에 들어온다. 코끼리의 발자취는 그 크기가 동물 중에 으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 분이여, 모든 착한 진리는 다 네 가지 성제 안에 포섭된다 그 네 가지란 고(苦)의 성제, 고의 발생의 성제, 고의 멸진(滅盡), 의 성 제,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이다." ([中部經典] 28 象跡喩大經. 漢譯同本, [中阿含經] 30 象跡喩經) (중부경전) (상적유대경)(한역동본) (중아함경) (상적유경) 여기에 든 '코끼리 발자취로 비유한 경'이라는 이상스런 이름을 가진 경전 이며, 이 경의 주인공은 붓다의 으뜸가는제자라는 사리푸타(舍利弗, Sariputta)이다. 그가 자주 스승인 붓다를 대리하여 붓다의 젊은 제자들에 게 스승의 가르침을 해설했던 일이 여러 경전에 나타나 있거니와, 여기서 도 그는 스승이 설한 '네 가지 성제'를 설명하기위해 그 첫머리에 코끼리 발자취의 비유를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비유는 아마도 코끼리가 많은 인 도 특유의 것이리라. 뭍에서 가장 큰 그 동물의 발자취는 물론 매우 커서, 다른 동물의 발자취는 모두 그 속에 들어가 버린다. 그래서 그는 가장 포 괄적인 것을 코끼리의 발자취에다 비유한 것이겠다. 그리고 사리푸타는 그것에 의해 붓다가 설한바 온갖 가르침 속에서 차지하 는 '네 가지 성제'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경([中部經典]63 摩羅阿小經. 漢譯同本, [中阿含經] 221 箭喩經) 에 의하면 붓다는 마룬캬(Malunkya)라는 제자를 상대로 다음과 같이 설한 적도 있다. "그러므로 마룬캬여, 내가 설하지 않은 일은 설하지 않은 채로 수지(受持 ;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지니는 것.)함이 좋고, 또 내가 설한 일은 설 한대로 수지함이 좋으니라. 그러면 마룬캬여, 내가 설한 것이란 무엇이던가? '이는 고(苦)이다.'라 고 나는 설했다. '이는 고의 발생이다.'라고 나는 설했다. '이는 고의 멸 진이다.'라고 나는 설했다. 또 '이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설했다. 마룬캬여, 왜 나는 그것들을 설했던가? 마룬캬여,그것들은 정말 도움이 되 며, 범행(梵行 ; 청정한 행위. 욕망을 끊는 것.)의 기초가 되며, 적정 , 증지 , 등각 , 열반에 이바지 하느니라 그러기에 설했음을 알라." 마룬캬라 불리는 이 제자는 오늘날의 말로 하면 철학 청년이라고나 할까? 이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인간은 죽은 다음에도 존재하는가 못하는가, 또는 영혼과 육체는 동일한가 동일하지 않은가, 당시에 유행하던 이런 문 제를 논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붓다는 전혀 그런 문제에 대해 서는 언급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그것을 불만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 젊은이가 어느 날 붓다를 찾아와서 그 불만을 털어놓았을 때, 그에게 '화살의 비유'를 들어 친절하게 설명한 다음, 마지막에 가서 힘을 주어 한 말씀이 이것이었다. 거기에서 붓다는 "내가 설하지 않은 것은 설하지 않 은 채 수지하라." 또 "내가 설한 것은 설한대로 수지하라."고 하여 매우 힘있게 끊어서 말하고 있거니와, 그러면 대체 붓다가 설한 것은 어떤 내용 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네 가지 성제'였다고 붓다 자신이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성제'는 붓다의 가르침의 중심 골격을 이루는 것이다. 이 사실은 저 다섯 비구를 상대로 설해진 이후, 그 생애를 통해 전혀 변함 이 없었다. 그러면 그것은 어떤 내용이었던가? '네 가지 성제'(cattari ariyasaccani)는 흔히 줄여서'사성제' 또는'사제' 라고 일컬어진다. '제'는 sacca(Pali) 혹은 satua(Skt.)의 역어로 '진리' 를 뜻하는 말이거니와, 그것은 아울러 '엄숙한 단언'을 뜻하기도 한다. 따 라서 여기에서는 오히려 '엄숙하게 진리를 말씀한 단언적 명제'라고 받아 들이는 편이 그 뜻에 더 가까울 것으로 생각된다. 붓다는 아마도 그 생애를 통해 이것을 숱하게 되풀이해서 설했으려니와, 이제 여러 경에 나타난 바를 검토할 때, 가장 간명한 형식은 앞서 인용한 마룬캬에게 설명해 주던 그 양식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고(苦 : 괴로움)이다." "이는 고의 발생이다." "이는 고의 멸진(滅盡)이다." "이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 '여래소설(如來所說)'이라고 불리는 첫 설법에서는 이것이 더 상세하게 나 온다. 아마도 처음으로 내세우는 것이라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던 것 같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성제이다. 생(生)은 고 이다. 노(老)는 고이다. 병은 고이다. 죽음은 고이다. 시름, 근심, 슬픔, 불행, 번민은 고이다. 미 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고이다. 욕심나는 것을 얻지 못함은 고이다. 인생의 양상은 고 아닌 것이 없다." (人生八苦)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발생의 성제이다. 후유(後有 ; 과보(果報))를 일어나게 하고, 기쁨과 탐심을 수반하며, 모든 것에 집착하는 갈애(渴愛 ; 욕망에 빠지는 것.)가 그것이다. 그것에는 욕애(欲愛 ; 탐내는 생각을 일 으켜 무엇을 욕구하는 것. 주로 性慾.)와 유애(有愛 ; 개체를 존속시키고 자 하는 욕망.)와 무유에(無有愛 ; 명예, 권세에 대한 욕망.)가 있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멸진의 성제이다. 이 갈애를 남김 없이 멸하고, 버리고, 떠나고, 벗어나 아무 집착도 없게되기에 이르는 것이 그것이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다. 성스러운 팔지(八 支)의 도(道)가 그것이니,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 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니라." 1) 고의 성제 2) 고의 발생의 성제 3) 고의 멸진의 성제 4) 고의 멸진 에 이르는 길의 성제 이전부터 불교인들은 이것을 간략히 하여 '고(苦), 집(集), 멸(滅),도(道)'의 사제(四蹄)라고 했다. 둘째 것을 '집'이라고 한 것은, 한역(漢譯)에서는 예전에 '발생'을 '집기 (集起)'라고 번역했던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