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靑波 作品/追億의 蔚山

옛 친구를 追憶하며

靑 波 2007. 7. 18. 10:02
 
    옛 친구를 追憶하며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 사이로 흐르는 달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고향생각이 나면서, 옛 친구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生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7~8년 前으로, '율리 산장' 에 고향 친구들 열댓이 모여서 낮부터 저녁때가 되도록 어린 시절 얘기며, 살아 가는 日常들을 소탈하게 나누면서 人生에 있어 가장 좋은시절이라 할 수 있는 不惑의 中年을 즐기고 있을 때다, 그 곳을 나와 몇몇은 돌아가고, 십여 명이 울산의 모 나이트클럽에서 얼마간 즐겁게 놀면서도, 나는‘運轉해야된다’는 핑계로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다. 친구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이제 蓮岩이 가까우니.." 하면서 兵營의 어느 술집에 들려 서너명이 둘러 앉아 온갖 잡담을 나누며 술을 마시다, 시간이 지나 그 곳 친구들은 집으로 보내고 나서, 둘이서 거나하게 취해 일어서면서, "이제 그만 마시고, 집에 가자 내 차로 바래다줄게......." "이번에는 내가 한잔 살게, 새벽에 가야 음주단속에 안 걸리지..." 하면서, 生은 내 팔을 잡고 지금은 사라져 버린 병영 역 앞 작은 맥주홀에 기어이 끌고 갔을 때가 밤 11시경은 되었던 것 같다. "어이 裵 社長 여긴 내 단골집이야! 오늘 싫건 마시고 새벽에 가자..." 실은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운전을 해야겠기에, 적당히 요령을 부리며, 술을 많이 마시질 않았는데도, 조금씩이지만 낮부터 마신 탓에 주기는 있었다. "우리 형님하고 너거 큰 형님하고 친 형제같이 지낸다면서..." 이 때 生은 술이 많이 취한 상태였다. 지나고 보니 당시에 生은 이미 자신의 건강이 안 좋다는 걸 알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生의 형님과 큰 형님은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 아래 윗마을에 살면서 6.25전쟁 당시에는 함께 군대 가서 최전방에서 같이 근무하기도 했고, 어머니들은 함께 東萊 보충대로 아들 면회를 다니기도 한 각별한 사이였다. 그 후 生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친아들처럼 어머님께 대하면서 지냈는데 아마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나서 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후 祭祀 때가 되면 祭官으로 지금까지도 참석을 하신다. 둘은 난생 처음으로 너무도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옆에서 권하는 아가씨 들과 어울리면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도 추면서 몇 시간을 놀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술이 거나하게 취해 있었고, 아가씨들도 보이지 않고 生과 둘이만 있었던 것 같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 兵營은 蔚山에서는 변두리로, 그리 혼잡한 곳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처럼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야~ 이니 나야 인자 게 안타 마 가자...!" 生은 거의 늘어진 상태였으나, 그는 투박한 사투리로,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운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취중에도 나름대로 물을 마시기도 하고, 세수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며, 술을 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生의 집이 있는 華峰에 갈 때는 쏟아지는 잠을 억제하느라 갖은 애를 썼으나, 친구를 내려주고 蓮岩 큰 집으로는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방으로 들어가는데 아랫방에서 새벽잠을 깬 형님께서, "釜山 안 내려갔더냐…….?" 하시면서 놀라는 기색 이었다. 이튿날 늦게 일어난 나에게 형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 4시가 넘도록 어디서 누구하고 그렇게..... 취해서 어째 왔노...?" 이 나이되도록 그 날처럼 술이 취해 운전을 한 적은 한번 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생각이 든다. 그후 일년이 지났을까, 生은 몹쓸 병으로 영혼을 달리했다는 소식이 전해 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토록 착하고 좋은 친구였는데........., 당시에는 사업을 한답시고, 무엇이 그리도 바빴는지, 장례식에도 참석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친구야~ 그 땐 너무 미안했다! 이해 해주게, 그리고 아무 걱정 없는 좋은 곳 에서 편안하게 잘 지내시게!' 친구야! 열흘 전에 친구형님 모시고 北京여행을 다녀왔다. 아직 한 번도 해외여행을 못 하셨다 하시기에, 간신히 권해서 만리장성이보고 싶다 하시기에, 북경으로 함께 갔단다. '천안문과 자금성'을 보시고는 너무도 감탄하면서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며, 작은 일이지만 친구를 대신할 수 있는 게 나 자신도 너무 흐뭇했다네. 자금성의 웅장함을 둘러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시길래, 자금성 후원을 두 바퀴나 돌면서 구경을 했는데, "와~ 좋다! 대단하다! 너거 형님 여기 구경했겠나.....?" "형님 해외여행이라면 많이 다녀서 이 곳 뿐 아니라 미국까지 다녀왔습니다..." 워낙 인정이 많으신 분이라 혼자 보는 게 미안하신 듯 여러 번 같은 얘기를 하시는 것을 보고 속으로 '참 잘 모시고 왔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배갈을 여남은 병사서는 절반은 호텔에 와서까지 일행중 할머니들에게 나누 어 주기도 하셨다.
 
  
     날씨가 무척 더운 날, 만리장성을 오를 때는 너무 숨이 차고 힘이 들었지만, 
     연신 감탄하시는 형님의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며, 친구생각을 하기도 했다네. 
     그렇게 건강하시던 형님도 이제는 너무 힘들어 하시길래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
     내가 쓸 때 없는 얘기를 늘어놓았나보다.
     세월이 흐르는 물(流水)과 같다더니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이 안타깝기만 
     하다.  좀 더 좋은 곳으로 한 번 더 모시고 가야 할 텐데.....
     친구야!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 그 동안의 회포를 풀 날이 있겠지....
                   2007년 7월 일  靑 波  裵晟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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