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화엄경 43. 한량없는 轉法輪. .. 열반

靑 波 2008. 8. 23. 23:50

 
    한량없는 轉法輪 "불자들이여, 보살 마하살이 어떻게 여래. 응공. 정등각의 법륜 굴림[轉法輪]을 알아야 하는가. 여래는 마음의 자유자재한 힘으로 일어남도 없고 굴림도 없이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이 항상 일어남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세 가지 굴림으로써 끊을 것을 끊고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이 치우친 소견을 떠났음을 알기 때문이다. 욕심의 틈과 틈 아닌것을 떠나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의 공한 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말 없이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이 말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끝까지 적멸하게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이 열반의 성질임을 알기 때문이다. 온갖 문자와 언어로써 법륜을 굴리나니, 여래의 음성은 이르지 않는곳이 없기 때문이다. 소리가 메아리임을 알고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의 진실한 성질을 알기 때문이다. 한 음성 속에 모든 음성을 담아 법륜을 굴리나니, 마침내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남김이 없고 다함이 없이 법륜을 굴리나니 안팎에 집착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문자와 언어는 미래겁이 다하도록 말해도 다할 수 없듯이,부처님의 전법륜 1)도 그와 같아서 모든 문자로 잘 정리하여 표현한다 할지라도 다할 수 없다. 1)轉法輪 ; 부처님의 교법을 법륜이라 하고, 교법을 설하는것을 전법륜이라 함. 곧 부처님이 설법하여 중생을 널리 제도 하는것. 여래의 법륜이 다 모든 말과 글자에 들어가 있지만 사실은 머무는 데가 없다. 여래의 음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처소, 모든 중생, 모든 법, 모든 과보 속에 두루 들어가 있지만 머무는 데는 없다.모든 중생의 갖가지 말이 다 여래와 법 륜을 떠나지 않는다. 말과 음성의 실상이 곧 법륜이기 때문이다. 보살 마하살은 여래의 전법륜을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또 보살 마하살이 여래가 굴리는 법륜을 알려면 여래의 법륜이 생긴 곳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래는 모든 중생의 마음과 행과 욕락이 한량없는 차별을 따라 여러 음성으로 법륜을 굴린다. 여래. 응공. 정등각에게 삼매가 있으니 이름이 끝까지 걸림 없고 두려움 없음이다. 이 삼매에 들어 바른 깨달음을 이룬 낱낱 몸과 입에서 중생의 수효와 같은 온갖 음성을 내고, 음성마다 여러 음성이 갖추어져 여러 가지 차별로 법륜을 굴려 모든 중생들을 기쁘게 한다. 이와 같이 법륜을 굴리는 것을 알면 부처님 법을 순종함이요, 이와 같이 알지 못하면 순종함이 아니다. 보살 마하살은 이와 같이 부처님의 전법륜을 알아야 하나니, 한량없는 중생계에 두루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량없는 열반 "불자들이여, 보살 마하살이 어떻게 여래. 응공. 정등각의 열반을 알아야 하는가. 여래의 대열반을 알려면 근본 自性을 알아야 한다. 眞如의 열반처럼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내지 實際1) 의 열반과 법계의 열반과 허공의 열반과 법성의 열반처럼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열반은 생겨나는 일도 없고 벗어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법이 생겨남도 없고 벗어남도 없다면 멸함이 없을것이다. 여래는 보살을 위해 여래의 구경 열반을 말하지 않으며, 그 일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여래가 그 앞에 항상 있음을 보게 하려는 것이며, 일념 속에 과거와 미래 부처님들의 모습이 원만하여 모두 현재와 같음을 보게 하며, 둘이라든가 둘이 아니라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 보살 마하살은 모든 생각에 집착을 아주 떠났기 때문이다. 여래는 중생들에게 기쁨을 내게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들에게 사 모함을 내게 하려고 열반을 보인다. 그러나 여래는 참으로 세상에 출현함 도 없고 열반도 없다. 왜냐하면 여래는 청정한 법계에 항상 계시면서 중생의 마음을 따라 열반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1)實際; 허망을 떠난 열반의 깨달음. 비유를 들면, 해가 떠서 온 세상을 두루 비칠 때 깨끗한 물이 있는 그릇에는 어디나 해의 그림자가 두루 나타나지만 오거나 가는 일이없고, 한 그릇이라도 깨지면 거기에는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여래의 지혜 해도 그와 같아서 법계에 나타나지만 앞도 없고 뒤도 없다. 모든 중생의 깨끗한 마음에는 부처님이 나타나지 않는데가 없어, 마음의 그릇이 깨끗하면 부처님 몸을 항상 볼수 있고, 마음이 흐리거나 그릇이 깨지 면 볼 수 없다. 만일 열반을 통해서 제도할 중생이 있다면 여래께서 곧 열반을 보이지만, 실제에서는 여래는 나는 일도 없고 멸하는 일도 없고 열반에 드는 일도 없다. 보살 마하살은 여래. 응공. 정등각의 대열반을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불자들이여, 여래의 몸은 일정하게 있는 곳이 없어 實도 아니고 虛도 아니지만, 부처님의 본래 서원한 원력으로써 중생이 제도를 받을 만하면 나타나는 것이다. 여래는 하량없고 거림 없는 구경 법계와 허공계에 머무시는데, 진여 법성은 생도 없고 멸도 없는 실제지만, 중생들을 위해 때에 따라 나타난다. 본래의 서원으로 쉬지 않고, 모든 중생과 모든 세계와 모든 법을 버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