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전도(傳道) 3
이에 세존은 그들 사캬 족 사람들을 밤중까지 가르치고 인도하고 격려하
고 기쁘게 해준 다음, 존자 아난다(阿難)에게 이르셨다.
"아난다여, 너는 나를 대신하여 카피라바투(Kapila-vatthu)의 사캬족 사
람들을 위해, 그들이 도(道)를 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시 법을 설해 주려
무나. 나는 등이 아프다. 잠깐 누워야 겠다."
아난다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리하여 세존은 옷을 넷
으로 접어서 깔고, 발에 발을 포갠 다움, 정념(正念), 정지(正智)를 지니
신 채 오른쪽 겨드랑이를 아래로 하고 누우셨다.
([中部經典] 53 有學經. 漢譯同本, [雜阿含經] 43:13 漏法)
(중부경전) (유학경)(한역동본) (잡아함경) (루법)
붓다 고타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가 그의 일기 속에서 한 말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신과 인간의 관계는 전혀 성질을 달리한다.
인간은 오래 함께 살아서 깊이 알게 되면 될수록 그 사이는 더욱더 가까
워진다.
그러나 신과 인간의 관계는 그와 전혀 반대이다. 인간이 신을 사랑하면 사
랑할수록, 신은 더욱 무한한 것이 되고, 인간은 더더욱 작은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신과 함께 장난하며 놀 수도 있을 듯이 생
각했다. 자란 뒤, 내 열정을 바쳐 그를 사랑한다면 신과의 교섭도 실현되
려니 꿈꾸었다. 그러나 다시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나는 신이 얼마나 무한
한 존재인지, 신과 인간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불교도인 우리가 보기에는 사정은 아무래도 그 반대일 것만 같다.
붓다와 우리의 관계는 인간의 관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붓다에게 다가가서 그 분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붓다는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 존재가 될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의심할 바 없이 붓다 또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 이였던 까닭이다.
이 장(章)의 첫머리에 인용한 일절은 붓다가 카피라바투의 성 밖, 니그로
다(Nygrodha)나무로 에워싸인 정원에 계신 데서 시작된다.
마침 그 때 사캬 족 사람들은 새 회당을 지어, 그 낙성식에 꼭 붓다가 오
셔서 처음으로 입장하는 이가 되어 주십사고 청하게 되었다.
기쁘게 응낙한 붓다께서는 낙성식에 참석하시고, 밤에는 그 회당에서 늦게
까지 사캬 족 사람들을 위해 설법을 하셨던 것이다.그 다음이 앞에 인용한
대목이거니와, 붓다는 피곤했던 것일까. "나는 등이 아프다. 잠깐 누워야
하겠다."고 말씀하고, 설법을 아난다에게 맡기신 다음 물러가 주무셨다는
것이다.
"나는 등이 아프다." 붓다의 이 말씀은 애처롭다.그러나 어떤 기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왜냐 하면 붓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가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붓다는 인간의 숙명이라고나 할 생로병사를 두 어깨에 걸머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출가도 감행한 것이기는 하였다. 그것 역시 그가 인
간 이외의 아무것도 아님을 증명해 주는 것이겠다.
그러나 '생로병사'라 할 때 그것은 어느 정도 추상화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에 의해 느껴지는 붓다의 인간성 역시 추상성을 면하지
못한다.그런데 지금 붓다는 "나는 등이 아프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씀은 매우 애처롭지만, 그것에 의해 직접 붓다의 육신에 접하고 있는
듯한 생각 마져 든다.
붓다의 현신(現身 ; 육체를 지닌 현제의 몸)에 관한 경의 서술이 이상한
매력으로 관심을 자극해 온다. 이를테면 [상응부 경전]22:87에 보이는 바
카리(跋迦梨)에 관한 대문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붓다가 라자가하(王舍城)의 교외에 있는 베루바나 정사(竹林精舍)
에 머물고 계시던 때의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때 한 비구가 어느 옹기장이 집에서 앓고 있었다. '바카리'가 그 의 이
름이었다. 그의 병은 매우 중해서 도저히 회유될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간호해 주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나는 이제 죽어야 할 몸이다. 만일 붓다를 다시 한 번 뵈옵고 인사드릴
수 있다면 한이 없겠다. 그러나 이 몸으로는 정사까지 갈 수 없으니, 미
안하지만 베루바나에 가서 여기까지 행차해 주실 수는 없겠느냐고 붓다께
여쭈어 주었으면 고맙겠다." 이 말을 전해들은 붓다는 기꺼이 옹기장이네
집을 찾아갔다. 바카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려 들었다.
"바카리야, 고요히 누워 있어라. 일어날 필요는 없다."
붓다는 굳이 그를 눕게 하고 그 머리맡에 앉았다. 바카리는 힘없는 목소
리로 말했다. "붓다여, 저는 가망이 없나이다. 병이 악화되기만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소원이오니, 얼굴을 우러러 뵈오면서 붓다의 발에 정례(頂
禮 ; 이마를 땅에 대는 경례)하도록 하여 주시기 바라나이다."
그때 붓다는 힘을 주어 이렇게 말씀했다고 경전은 기록하고 있다.
"그만 두라, 바카리야. 이 썩을 몸을 보아서 무엇하겠다는 것이냐? 바카
리야, 법(진리)을 보는 사람은 나를 볼 것이요, 나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보
리라."
그것은 참으로 엄한 말씀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서 붓다는 자기에
게 예배하겠다는 청을 물리치고, 오직 진리를 파악하려 힘쓰고, 진리만을
의지함이 옳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 불교의 본질이 엄
존 한다고 하여야 되리라.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썩을 몸을 보아 무엇
하겠다는 것이냐?"고 한 붓다의 말이 너무도 이상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이다.
또 이를테면 장부 경전16이나 [대반열반경]은 노쇠한 붓다에 대해 이런 서
술을 남기고 있다.
"아난다여, 나는 노쇠했다. 나이가 이미 팔순이 아니냐? 비유하자면 아
난다여, 낡은 수레는 가죽끈으로 얽어맴으로써 겨우 움직일 수 있거니와
내 몸도 또한 가죽끈으로 얽어맨 수레 같으니라." 이 경이 말하고 있는 것
은 붓다의 마지막 전도 여행과 그 고요한 죽음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한역에서는 [유행경(遊行經)]이라고 했고, 팔리어의 동본에는[대
반열반경(Mahaparinibbana-suttanta)]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크나큰 죽음의 경'이라는 정도의 뜻이다. 그것에 의하면 라자가하에서 마
지막 여행길을 떠난 붓다는 갠지스 강을 북으로 건너, 베사리 근방인 베루
바나 마을(竹林村)에서 우안거(雨安居 ; 인도에서는 장마철이 길므로, 이
동안은 외출을 금하던 것. 4월 16일부터 7월15일까지 석 달 동안)에 들어
갔다. 그런데 거기에서 붓다는 장마와 습기 때문이었는지 무서운 병이 나
서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그러나 붓다는 그 고통을 잘 견디어 냄으로써 가까스로 병을 극복할 수 있
었다. 그리하여 오래간만에 집 밖으로 나가 응달쪽에 앉아서 바깥 공기를
즐기고 있던 참에, 아난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하신 말씀이 이 일절 이었
다.
경전 속에는 곧잘 수레바퀴의 비유가 나온다. 설법하는 것을 "법의수레
바퀴를 돌린다.(轉法輪)."고 하고, 훌륭한 정치를 하는 이상적인 제왕을
'전륜 성왕(轉輪聖王)'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낡아빠진
수레를 들어, 붓다는 자기의 몸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수레가 오래 되어서 못 쓰게 되면 그것을 가죽끈으로 얽어매어서 사용했던
모양이다.
노쇠한 붓다는 그런 수레와 똑같다고 자기의 몸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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