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아함경 8. 눈 있는 이는 보라

靑 波 2002. 11. 5. 07:29
    8.눈 있는 이는 보라 "위대 하셔라 대덕(大德 ; 지혜와 덕망이 높은 중. 본래 봇다를 일컫던 말이나, 후세에서는 일반 승려의 존칭으로 쓰였다.)이시여, 위대하셔라 대덕이시여. 이를테면 넘어진 것을 일으키심과 같이, 덮인 것을 나타내심 과 같이, 헤매는 이에게 길을 가르치심과 같이, 또는 어둠 속에 등불을 가 지고 와서 눈 있는 이는 보라고 말씀하심과 같이, 이처럼 세존께서는 온갖 방편을 세우시어 법을 설하여 밝히셨나이다. 저는 이제 세존에 대해 귀의하옵나이다. 또 그 법(가르침)과 승가(僧伽 ; 불교의 교단)에 대해 귀의하옵나이다. 원컨대 오늘날로부터 시작하여 목숨을 마칠 때까지, 세존께 귀의 하옵는 신자로서 저를 받아들여 주시옵기 바라나이다." ([相鷹部經典] 42:6 西地人. 漢譯同本, [中阿含經] 17 伽彌尼經) 상응부경전 사지인 한역동본 중아함경 가미니경 이런 대문이 아함부 경전의 도처에서 보인다. 그것은 대개 붓다의 가르침 을 듣고 귀의하게 된 사람들이 이른바 우파사카(優婆塞, upa-saka ; 재가 신자인 남자.)로서 그 신앙을 고백하는 말이다. 그것을 여기에 인용한 것은 그것을 통해 붓다의 사상, 더 구체적으로 말하 면 그 설법의 성격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최초의 설법만 제외하고는 45년에 걸친 붓다의 설법 은 모두가 대기 설법이었다고 한다. 문제와 사람과 장소 때에 따라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가르쳤던 까닭이다. 어떤 때는 제자들과 함께 갠지스 강의 기슭에 서서 소 떼를 이끌고 물을 건너가는 목동을 가리키면서, 현실의 이쪽 언덕(此岸)으로부터 이상의 저 쪽 언덕(彼岸)에 이르기 위한 방법에 대해 말씀한 적도 있다. '차안, 피안'의 개념은 이렇게 하여 성립하였던 것이다. 또 하루는 물건을 훔쳐 도망친 여자를 찾고 있는 젊은이들을 만나, "도망 친 여인을 찾는 것과 잃어버린 자기를 찾는 일은 어느 쪽이 더 소중하냐?" 고 말을 건 적도 있다. 그 말을 들은 젊은이들은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으며 종내 붓다의 가르침을 받드는 비구가 되었다. 또 어느 날 새로 입문한 제자들을 이끌고 가야시사(象頭山)에 올라간 붓다 는 일망무제 하게 펼쳐진 세상의 풍경을 가리키면서, "보라, 모든 것은 타 고 있다." 고 설했다. 그들은 불을 예배하는 이른바 事火外道에서 불교로 개종한 사람들이었으므로 "모든 것은 타고 있다."고 말씀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꺼야 한다."는 말이 그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가 있었 다. '불이 꺼진 상태' 즉 열반이 영원한 평화의 경지를 가리키는 불교 용 어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하루는 브라만(婆蘿門) 한 명이 나타나서 갖은 욕설을 퍼부은 적이 있다. 그러나 붓다는 침착하게 말했다. "브라만이여, 그대가 내주는 음식을 손님 이 안 먹는다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그것은 물론 주인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욕설 또한 자기에게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임기 웅변! 자유 자재! 붓다의 대기 설법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붓다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그것들을 일관하는 뚜렷 한 성격이 있었다. 입신자 들의 고백문이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넘어진 것을 일으키심과 같이"라는 말은 전도(顚倒)한 것을 바 로잡는다는 뜻이다. '전도'란 어떤 판단을 할 때 순서가 엇바뀌고 진상을 오해하는 일이다. 작은 것을 크다고 하는 것도 그것이다. 추한 것을 아름 답다고 여기는 것도 그것이다. 변화하는 것을 불변, 영원한 듯이 아는 태 도도 그것이다. 후세의 불교인들은 '사전도'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상(常),낙(樂),정(淨), 아(我)의 전도를 말한다. 첫째 상(常)전도는 무상한 세상이나 사람을 영원한 듯이 생각하는 일이며, 둘째 낙(樂)전도는 이 괴로운 인생을 즐겁다고 여기는 일이다. 셋째 정(淨)전도는 이부정한 것을 깨끗하다고 잘못 아는 일이며, 넷째 아(我)전도는 이 무아인 존재를 내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