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아함경 8. 눈 있는 이는 보라 2

靑 波 2002. 11. 10. 07:30
    8.눈 있는 이는 보라 이런 착각을 없애고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의 중요 한 일면이었다. "넘어진 것을 일으키심과 같이"라는 말에는 이런 뜻이 포 함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덮인 것을 나타내심과 같이"는 앞에서도 언급한 불교의 진리관을 표현한 말이다. 어떤 경에서 붓다는 이런 비유를 설한 적이 있다. "여기 통 안에 물이 있다 하자. 그 물이 불에 데워져 부글부글 끓고 있다 든지, 또는 이끼나 풀로 덮여 있다든지, 바람이 쳐서 물결이 일고 있다든 지 한다면, 그 통 안의 물은 사물의 모습을 여실히 비칠 수 있겠는가?" 물론 비칠 수 없다고 대답하여야 한다. 여기서 붓다는 만약 우리의 마음이 탐욕이나 노여움으로 뒤덮여 있을 경우에는 여실히 대상을 지견(知見)할 수 없지 않느냐고 대답을 유도해 갔다. 이렇게 '여실 지견'을 방해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복(覆)이라고 한다. 그런 것이 제거되고 맑은 마음으로 객관을 대할 때, 일체의 존재는 그 진 상을 드러낸다. 이것이 불교의 진리관이다. 최초의 설법에서도 붓다의 태도는 이미 나타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하나는 두 가지 극단, 즉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를 비판한 말속에 나온 "무익하다"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또 하나는 그것들을 비판한 다음 중도(中道)를 주장하면서 "적정, 증지, 등각, 열반에 이바지한다"고 말 한 것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붓다의 실용 주의(Pragmatism)를 발견하는 것이다. 붓다가 고행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한 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물 속에 잠겨 있는 젖은 나무를 보고, 좋은 찬목(鑽木 ; 마찰 하여 불을 일으키는 나무.)을 가지고 와서 '내가 불을 일으키리라, 빛을 내게 하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中部經典 36 薩遮迦大經) 중부경전 살차가대경 젖은 나무라면 아무리 마찰시켜도 불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그것과 마찬 가지로 아무리 고행을 해 보았자 그것으로는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고행 을 포기하게 된 붓다의 합리주의적인 생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합리주의적인 정신이야말로 붓다의 생애를 일관했던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이 장의 첫머리에 소개한 대문을 [상응부 경전] 42:6 '서지인' 이라는 제목의 경에서 인용했던 것이지만,그 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붓다의 교 화 태도도 전해 주고 있다. 그것은 붓다가 나란다 마을의 파바리캄바라는 숲 속에 머물렀던 때의 일이 다. 이웃 마을의 촌장인 안반다카푸타(刀師子)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아마도 그는 붓다의 명성을 듣고 있었던 모양이어서, 이런 것을 물었다. "대덕이시여, 서쪽에서 온 브라만들은 물병을 높이 처들든지,화환을 달든 지, 물에 들어가 목욕하든지, 화신(火神)에게 공양을 드리든지 함으로써, 죽은 사람을 천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대덕께서 도 역시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 지금도 종교에서 신비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거니와, 그도 그런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붓다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이렇게 반문했다. "그러면 촌장에게 내가 한 가지 물을 것이 있다.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 보라.어떤 사람이 깊은 호수에 바위를 던졌다 하자. 그때 여러 사람들이 몰려와서 '바위야, 떠올라라. 바위야 떠올라라.' 하며 기도했다고 하면 어찌 되겠는가. 그 바위는 기도의 힘으로 떠오르겠는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누구나 아니라고 할 수밖에는 없으리라. 여기서 붓 다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촌장이여, 이것을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여기에 남을 죽이 고, 도둑질을 하고, 거짓말을 하는 따위 온갖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있다 치자.그 사람이 죽었을 때 여러 사람이 몰려와서 '이 사람 이 천상에 태 어나게 해 주십소서.' 하며 합장하고 기도했다면 어떻겠는가. 그는 그 기 도에 의해 천상 세계에 태어나게 되겠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촌장은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 게 대답하고 있는 동안에 어느 사이엔지 그를 가리고 있던 낡은 의식이 벗겨져 나가고, 그의 마음에는 한 가닥의 광명이 비쳐 왔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이 장의 첫머리에 인용한 말을 하면서 재가 신자가 될 것을 맹세했다는 것으로 이 경은 끝나고 있다. "어둠 속에 등불을 가지고 와서 눈 있는 이는 보라고 말씀하심과 같이"라 는 말은 이런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말해 두어 야 할 것이 남아 있다. 그것을 다음 장에서 서술 해 보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