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결

나눔의 쉼터/中要 6 經典集

아함경 6.전도(傳道)

靑 波 2002. 10. 25. 23:45
    6.전도(傳道) "비구들아!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 을 불쌍히 여기고,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아,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 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진리, 가르침)을 설하라. 또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설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에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惡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 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아,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베라 의 세나니가마(將軍村)로 가리라." [相應部經典] 5:5 係蹄(2). 漢譯同本, [雜阿含經] 39:16 繩索) (상응부경전) (계제) (한역동본) (잡아함경) (승삭) 여기에 든 일절은 이른바 붓다의 '전도 선언' 이라고 불리는 대문이다. 그것은 붓다가 아직 미가다야(鹿野苑)에 머물고 있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붓다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가르침을 받은 끝에 출가하여 제자가 된 사 람의 수효가 불어나서 60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붓다는 그들을 전도 하러 떠나 보냄으로써 이 새로운 진리를 널리 세상에 펴고자 결심했던 것 이며, 그리하여 그들을 모아 놓고 타이른 말씀이 이것이었다. 이 '전도 선언'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첫째 부분은 전도의 정 신을 말씀한 대목이다. 거기에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 하여."라는 말씀이 나온다. 나는 앞에서 재래 불교도들의 상식을 뒤엎고, 붓다가 출가한 동기는 중생 구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의 인 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붓다의 출가는 결 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 셈이 되었던 것이며,그 혜택은 멀리 오늘 의 우리에게까지 미치고 있음이 사실이겠다. 그러나 이것을 근거로 하여 붓다가 출가한 동기가 중생 구제에 있었다고 한다는 것은 결과를 가져다가 동기로 삼는 것이어서, 붓다의 출가의 진상 과는 거리가 멀다고 아니할 수 없다.그리고 아함부의 경전들이 이점에 대 해 얼마나 신중한 표현을 취하고 있는지를 주목해야 될 것이다. 거기에서는 출가에 대해서나 수행에 대해서나, 그리고 정각(正覺)이라든지 최초의 설법에 대해서까지도 중생 제도와 결부시키는 것 같은 표현은 전혀 쓰지 않고 있다.그러다가 이 전도의 선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많은 사람 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라는 말이 나오고, 또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인천이란 인간계와 천상계의 사람들이라는 정도의 뜻이니, 많은 사람들이라 는 말과 함께 중생(衆生), 즉 모든 생물을 가리킨다. 생각건대 붓다가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라고 말씀하기 까지의 거리는 매우 멀었다. 그러나 일단 확신을 가지고 전도를 떠나라고 말했을 때,거기에 나타난 전도의 정신은 일체의 제한을 넘어서 모든 생물 에게까지 미치는 것이었다. 붓다는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또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오직 모든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해 가라고 타일렀다.그것은 참으로 붓다 다운 전도의 선언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정신을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이 대목의 마지 막 말씀 즉 "둘이 한길을 가지 말라."는 구절이다. 내가 이 구절에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전도선언'때문 이다. 그는 앞에서도 인용했듯이 "이방인의 길로 가지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태복음 10:6)고 말했던 것이다. 또 다른 복음에는 열 두 제자를 불러 둘씩둘씩 보내시며 (마가복음 6:7)라고 나와 있다. 나는 이것을 그것에 비교하여 하나를 높다 하고 다른 것을 못하다 할 생각 은 전혀 없다. 다만 이 둘을 비교함으로써 그 하나만 읽어 가지고는 좀처 럼 밝혀지지 않던 뜻이 명확한 형태로 눈앞에 떠오름을 느끼게 하고자 하 는 것뿐이다. 예수는 그때 다음과 같은 말도 하고 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公會)에 넘겨주겠고, 저희의 회당 에서 채찍질하리라." 전도하러 떠나는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고도 가르쳐야 했다. 거기에는 도저히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이 있었다. "둘씩 둘씩 보내시며" 라는 표현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겠다. 그리고 이런 것과 비교해 볼 때 "둘이서 한 길을 가지 말라."는 붓다의 말씀의 뜻도 스 스로 명백해진다. 여기에는 박해의 예상이란 조금도 없었음이 확실하다. 오직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가는 것이니까. 또 사람들이 그들 을 공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도 생각되어 있지 않다. 오직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이 법은 설해지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런 전도의 정신은 붓다의 전 생애를 일관하여 실현되었을 뿐 아니라, 또 수천 년에 걸친 불교의 역사를 통해 지속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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