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함경 11. 연기(緣起) 2
붓다는 일체 존재의 발생을 이 공식으로써 풀어 간 것임에 틀림없다.
이를테면 보리수 밑에 있었을 때, 붓다는 자기의 과제와 대결하면서 "무슨
까닭에 노사(老死)가 있는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노사가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했다고 한다([상응부 경전]12:10). 이미 그런 사고방식이 연기
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려니와, 여기에서는 존재의 발생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니 "말미암아(緣) 생긴다."는 말을 줄여서 '연생(緣生)의 공식'이라
해도 좋을 줄로 생각한다.
또 하나의 부분은 그 후반의 것으로 다음 같은 말로 되어 있다. "이것 없
음에 말미암아 저것이 없고, 이것 멸함에 말미암아 저것이 멸한다."
붓다 자신이 이 공식을 사용한 보기를 살피건대, 역시 보리수 밑의 명상에
서 "무엇 없는 까닭에 노사(老死)가 없는가? 무엇이 멸함으로 말미암아 노
사가 멸하는가?"를 생각했다고 한다. 이것 또한 연기설에 의한 사고법이며,
멸한다."는 말을 줄여서 '연멸(緣滅)의 공식'이라고 해 도 좋을 것으로 안
다. 이리하여 전반과 후반을 합친다면 '연생, 연멸의 공식'이 되겠으나,
그것을 다시 줄여서 나는 '연기의 공식'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연기의 공식이란 결국 이런 공식에 의해 모든 존재의 발생과 소멸
을 생각해 가는 일임에 틀림없다.
여기에서 다시 한걸음 나아가, 더 직접적으로 연기의 원리가 붓다에 의해
어떻게 설해졌는지를 생각할 때,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상응부 경전]
12:20 '연(緣)'이라는 제목의 경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더없이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왜냐 하면 연기란 무
엇인지에 대해 붓다가 직접 정면에서 이야기한 경전은 아함부의 여러 경
중에서도 이것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것은 붓다가 사바티(舍衛城)의 교외에 있는 제타(祇陀) 숲의정사 즉 기
원 정사에 계시던 때의 일이거니와, 붓다는 자진해서 비구들에게 "오늘은
연생의 법에 대해 설하고자 한다."고 말문을 떼었던 것이다.
비구들은 필시 긴장한 표정으로 붓다의 다음 말씀을 기다렸을 것으로 생
각된다. 그때 붓다가 설하신 말씀을 경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비구들아, 연기란 무엇인가? 비구들아, 생(生)이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노사(老死)가 있느니라. 이 사실은 내가 세상에 나오든 안 나오든 법으로
서 확정되어 있는 바이다. 그것은 상의성(相依性)이다.
나는 이를 깨닫고 이를 이해하였다. 이를 깨닫고 이를 이해하였기에 이를
가르치고, 선포하고, 설명하고, 나타내고, 명백히 하여,'너희 는 마땅히
보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이 설명 속에는 세 가지 중요한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그 하나는 연기의
성격에 대한 언급이다. 그것은 계시도 아니고 영감도 아니며,더구나 붓다
가 발명한 도리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붓다의 존재 여부와는 관계없이
예로부터 이제까지 엄연히 정해져 있는 법칙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 원리가 본래 존재 사실 자체임을 말하는 것이겠다. 그런 뜻을
다른 곳에서 붓다는 '오래 된 기(古道)'에 비유해서 그것이 원래부터 존재
하는 것이라고 말씀한 적도 있다.
([상응부 경전] 12:65 성읍) 그러면 그것에 대해서 붓다는 어떤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둘째 사항인바, 붓다는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가르치
고, 선포하고, 설명하는 구실을 맡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오래 된길'의 비유를 가지고 말한다면 붓다는 다만 그 오래 된 길을 발견
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 길을 정비하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가
게 할 뿐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그리고 셋째 것은 이 원리의 구조에 관한 사항이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
리가 알고 싶은 당면 문제이거니와, 이에 대해 두 군데에서 언급되어 있음
을 발견하게 된다. 그 하나는 "생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노사가 있다."는
구절이다. 이는 연기설의 구체적인 보기라고 해도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것은 상의성"이라고 한 구절이다. 극히 짧은 말이기
는 하나, 그것이야말로 이 원리의 구조를 표현한 소중한 자료라고 하지 않
을 수 없겠다.
'연기'라는 말이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뜻임은 이미 언급했다.
이것을 팔리 어의 원어에서 따져 보아도 역시 Paticcasamuppada,즉 '조건
에 말미암은 발생'이라는 뜻이 된다. 일체의 존재는 모두가 그럴 만한 조
건이 있어서 생겨났다는 것, 홀연히 또는 우연히 또는 조건 없이 존재하
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이것이 연기 사상의 내용이다.
또 그것을 뒤집어서 말한다면 일체의 존재는 그것을 성립시킨 조건이 없어
질 때 그 존재 또한 없어져 버린다는 것, 따라서 독립, 영원하여 불변하는
것이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연기 사상이다.
그것을 하나의 원리로 추상화시킨다면 '조건에 의한 발생'이요, 그것을 약
간 현대식으로 말하면 '관계성'이 될 것이며, 과거의 불교인들은 흔히 이
것을 '인과성'이라고 했거니와, 이제 붓다는 '상의성'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고대인 중에는 그런 추상적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
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붓다의 제자들도 그 예외는 아니었던지,
한 경전([상응부 경전] 12:67 노속)에 의하면 코티카라는 제자도 그것이
아무리 해도 이해되지 않아서 친구인 사리푸타에게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사라푸타여, 그것은 대체 어떻게 이해하여야 되겠는가?"
그것에 대답하면서 사리푸타는 한 비유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친구여, 이를테면 여기에 갈대 단이 있다고 하자. 그 갈대 단은 서로
의지하고 있을 때는 서 있을 수가 있다. 그것과 같이 이것이 있음으로써
그것이 있는 것이며, 그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있는 것이다.그러나 만약
두 단의 갈대에서 어느 하나를 치운다면 다른 갈대 단도 역시 넘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없으면 그 것도 없는 것이며, 그것이
없고 보면 이것 또한 있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인은 그들보다 훨씬 추상적인 이해에 뛰어나다고 보아야겠으나, 그래
도 연기의 원리가 잘 이해되지 않는 분이 있다면 이 비유를 곰곰이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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