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바이욘사원. 코끼리테라스
문둥이 왕. 코끼리 테라스
타 프롬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사각형의 광장이 나타났다.
왕의 연설을 듣거나 전장에서 승리하여 돌아온 군인들을 왕이 환영한다거나,
나라의 큰 행사를 관람하는데 쓰였던 코끼리 테라스는 350미터 길이의 웅장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코끼리 테라스의 오른쪽으로는 문둥이 왕의 테라스가 자리 잡고 있다.
문둥이 왕의 테라스아래 굴은 프랑스 점령당시 복원 작업 중 발견되었다는데,
속으로 들어가면 벽에 조각되어있는 내용이 왕을 비롯해 문둥이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둥이 왕의 테라스에 오르면 머리가 깨진 상태로 앉아 있는 나상이하나
보이는데 이는 모조품이다. 진짜는 머리통이 온전한 모습으로 프놈펜의 국
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나병으로 죽은 야소바르만 왕의 모습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복원 작업을 한 곳은 이끼가 끼지 않아 사암의 원래색인 듯 붉은색으로 나
타나 있다.
문둥이 왕 테라스를 지나 오른쪽으로 웅장한 코끼리 상들이 옆으로 줄을
선 모습의 거대한 조각상들이 있고 광장의 중앙부분 계단 위 단상으로 보
이는 곳에서 왕이 연설을 하던 곳이라고 전해진다는 것이다.
코끼리 테라스의 옹벽은 온통 코끼리로 장식되어 있으며 코끼리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놓은 코끼리 행진이 테라스의 양쪽 끝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십장생의 조각들도 보인다. 단상 뒤쪽으로 돌로 만든 커다란 성 같은 곳
에는 복원 작업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코끼리 테라스를 지나 바이욘사원 동문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거대한 사원의
웅장함에 먼저 놀라게 된다.
바이욘 사원에는 54개의 탑과 200개의 얼굴상이 조각되어있으며, 바이욘사원은
앙코르 톰의 중심지에 위치해있고, 앙코르와트보다 거의 100년 후에자야바르만
7세가 세웠다.
자야바르만 7세는 직계 왕손이 아니라 방계였다. 그는 1170년 경 똔레쌉호수로
쳐들어온 참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왕이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당시의 지배계급을 형성은 대부분 힌두교에 그 뿌리를 둔 제사장들과
귀족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대승불교를 들여온 것도 비슷한 연유였을 것이다. 카스트(사성계급)를 인정하는
힌두교의 교리로는 민중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에 적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야바르만 7세는 스스로를 관세음보살로 자칭하면서, 동남아에서는
보기 힘든 대승불교를 권장하는 한편 많은 빈민구제 시설들을 건설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도 있다.
그는 1183년 경 실권을 가진 왕이 되었는데 그의 치세에서 바욘 사원, 앙코르 톰,
쁘리아 칸, 니악 뽀안, 따 쁘롬 등 지금도 인기있는 유적지인 근사한 사원을 모두
세웠다.
그는 1200년대 초 그토록 앙코르 왕국을 괴롭혔던 참파국을 복속 시켰고, 태국
북부 지역도 다스렸으며 현재 라오스 의 비엔티안 부근에서도 그의 비문이 발견
될 정도로 세력을 확장했었다.
정확한 국경선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넓은 지역을 통치했으며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끝없이 뻗어나간 도로였다.
자야바르만 7세는 탁월한 군사력, 정치력, 그리고 자신을 관세음보살과 일치
시키며 신격화시킬 정도로 능력 있는 왕이었으며 앙코르 왕국을 번영시킨 위
대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이런 그의 치세도 그가 죽고 나자 사그라지고, 종교는 다시 힌두교로
바뀌며, 국력은 급격하게 쇠퇴하게 되었다.
급기야 15세기 중엽에는 지금의 프놈펜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앙코르 제국의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된다.
앙코르의 미소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웃는 얼굴상이 여러 곳에서 볼 수있다.
커다란 돌 조각들을 쌓아올린 모습이 하나로 된 우리나라 마애불상과는 판이
하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사원 안 곳곳에 스님들이 불상 앞에 써 향을 한 줌씩 권하며 참배를 권하고있다.
바이욘 사원은 관람할 때는 주의해서 걸어 다녀야지 다소 좁고 위험한 계단이
많은 곳이다.
대개 바이욘 사원을 먼저보고 타프롬으로 빠져나간다는데, 가이드는 무슨 생각
에서인지 코스를 거꾸로 잡았으며, 바이욘 사원에서는 너무 서두르는통에 마음
놓고 사진을 찍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 다소 불만스러웠다.
바이욘은 앙코르 유적지 중에서 불교 사찰로는 가장 큰 규모이며, 볼거리가 많았다.
바이욘 남문은 길이 아주 좁아 대형 버스는 통행이 어려워 보였는데, 우리나라의
기아자동차 미니버스가 빠져나오기에는 안성맞춤이였다.
丙戌 설날 - 靑 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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