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앙코르와트(Angkor Wat)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톰에서 남쪽 1.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데, 앙코르 왕조
는 890년경 야소바르만 1세가 수도를 앙코르로 옮긴 때부터 13세기 초까지
앙코르의 왕들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끝 부분에서 북쪽으로 윈난까지, 또
베트남에서 서쪽으로 벵골만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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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앙코르와트가 있는 앙코르는 크메르 왕조의 중심지인 동남아시아 역사
상 가장 크게 번성하고 발달한 왕국이었으며, 당시 앙코르에는 백만에 가까
운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해자의 다리를 건너면 높이 7미터나 되는 성벽을 가진 정문이 보는 이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왼쪽으로 보면 옛날 우리나라의 규장각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라고 하나 확실 지는 않지만, 앙코르왕국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장서각을 지나면 큰 못이 나온다. 모든 구성은 대칭으로 되어있어 좌우
의 모습이 같게 이루어져있다.
이 못의 거울 같은 수면에 비치는 앙코르와트의 모습은 또 다른 장관이다.
이곳의 왼쪽에는 현재 승려들이 기거하는 사찰이 있고, 큰 연못에 붉은
수련꽃이 너무도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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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에서 위대한 건설과 축조는 300년이 넘게 계속되었는데 이들의 종교
는 시바 신과 비슈누 신을 섬기는 힌두교에서 점차 관세음보살신앙이 자리
를 잡았다.
앙코르와트는 모두 3개의 기단으로 나뉘어 진다. 첫 번째 기단에는 아름다
운 벽화가 새겨져 있고, 목욕탕 등이 들어서 있다.
마지막 세 번째 기단에 오르면, 각 변으로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중앙에 우뚝 솟은 탑까지는 213미터이다.
정면에서 보면 탑이 3개 밖에 보이지 않지만, 옆에서 보면 제3기단의 모서
리에 1개씩, 그리고 가운데 가장 높은 탑 1개가 서 있다.
이런 모습을 갖추고 있는 앙코르와트 사원은 1868년 프랑스 탐험가 헨리
모하트가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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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이후 14세기까지, 크메르 민족의 독특한 문화양식으로 전성기를 이룬
고대국가 앙코르, 타이의 침략으로 4백 년간이나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던
불가사의한 역사를 지닌 곳이기에 앙코르와트는 신비감마저 느껴진다.
열대밀림지역의 폐허에서 아름답고, 웅장한, 거대한 석조유적이 발견될 것
이라고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앙코르와트가 이토록 유명세를 타게 된 데에는 세부적인 조각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웅장한 규모 (동서로 약 1,500m, 남북으로 약 1,300m의 터에 높이
65m의 중앙 탑을 중심으로 지어진 웅장한 석조 건물)면에서도 많은 사람
들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중앙 탑은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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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돌을 깔아 놓은 참배 로에 들어서면 중앙사원의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원은 웅대한 방추형의 중앙 탑과 탑의 동서남북에 십
자형으로 뻗어 있는 행랑, 그것을 둘러싼 삼중의 회랑네 모서리에 우뚝 솟
은 거대한 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건축 구성은 입체적이며 중앙이 약간
높게 되어 있다.
앙코르와트(앙코르=왕성함. 와트= 寺院이란 뜻)한때 동남아를 지배했던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 왕조가 12세기 초에 건립한 사원이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이나 왕족이 죽으면 그들의 신과 같아진다는 믿음이 있
었기 때문에 왕들은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다.
앙코르와트도 앙코르 왕조의 전성기를 이룩한 수리아 바르만 2세가 브라만
교 주신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해 건립한 거대한 힌두교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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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원의 건축양식은 인도의 영향을 약간 받긴 했지만 건물의 형태나 석조
장식 등에서는 그들만의 앙코르 특유의 기법을 보이고 있다.
특히 760m에 이르는 회랑 벽의 부조, 제2회랑 안의 돌로 조성한 우물, 제3
회랑 내부의 화려한 십자형 수랑과 탑 등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구조물이다.
벽화, 조각 등 불교 미술품이 가득 차 있어 사원 전체가 불교 미술의보고로
되어 있다.
구성은 힌두교 사회의 계급제도와 인도 부다가야 오 탑 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되며, 구조를 살펴보면 황토 흙으로 쌓은 위에 두꺼운 사암을
붙인 뒤 조각은 표면에 새겼으며 세부 장식에는 인도적인 것과 그렇지 않
는 것이 서로 교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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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문양도 간혹 있다.
지금의 캄보디아는 아시아의 불교문화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앙코르와트 사원의 거대성과 미묘한 불상의 미소를 한 번보고 눈
을 감고 명상에 잠기면 누구든지 무아의 경지에 빠져든다.
1층 회랑 800m의 벽면을 가득 채운 부조는 라마야나 이야기, 천당과 지옥
이야기 그리고 크메르 역사를 사실적 기법으로 새겼다.
2층 회랑에는 불상 조각상이 많았고 불상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3층 중앙은
수미산 극락세계를 표현해 탑 속에도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가이드는 바이욘 사원에 비해 나름대로 설명을 자세히 잘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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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앙의 탑으로 오르려면 70도 가파른 좁은 돌계단을 올라야하는데,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훨씬 더 위험하므로 아주 조심을 해야 한다.
중앙 탑 수미산 극락세계에 모셔진 부처님께 불전을 놓고 참배를 올릴 때는
무한한 기쁨을 느끼게 했다.
최소한 4~5시간 이상은 관람해야할 것을 어찌도 서두르는 통에 앙코르 톰
과 앙코르 와트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오전 11시 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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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엠립으로 나오면서 1975년부터 78년 까지 4년간 크메르루즈군의 200만
양민학살을 자행한 한 곳의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13~15세의 크메르루즈군은 너무도 잔인하게 양민을 학살한 장면들과 수
많은 해골을 모아 탑을 건립해둔 곳에서는 공산당의 포악한 참상에 치가
떨려 아예 사진은 찍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당시의 크메르루즈군의 학살로 현재 국가의 지도계
층이 무너진 상태며, 캄보디아 발전을 50년 뒤로 후퇴시켰다는 것이다.
또다시 황토 길을 4시간 넘도록 달려 국경지대 포이펫으로 갈 것을 생각하
니 머리부터 아파오는 느낌이다.
丙戌 설날 청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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